[비즈한국] 한국 노동시장의 여건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2018년 9월 취업자 수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단 4.5만 명 늘어나는 데 그쳤고, 특히 15~29세 실업률은 8.8%를 기록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실업의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경기가 나빠지며 실업률이 급등했다면, 이는 ‘순환적’ 실업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하하거나 혹은 재정지출을 늘리는 등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이 필수다. 그러나 만일 실업의 원인이 ‘구조적’이라면 정부의 경기부양정책도 큰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베스트셀러 ‘당신이 경제학자라면’의 작가 팀 하포드는 구조적 실업이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로 헨리 포드의 실험을 든다. 1914년 포드자동차는 하루 작업시간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이면서도 임금을 기존의 두 배 이상인 일당 5달러로 인상했다.
일당 5달러의 정책을 도입하기 전 해인 1913년, 포드자동차 공장에는 5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필요했지만 고용된 사람은 1만 3500명에 불과했습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통에 이를 대체해야 했던 겁니다. 노동자의 평균 근속 기간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중략)
근원적인 문제는 포드자동차의 노동자들이 일에서 느끼는 불행감이 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시간은 길고 작업은 지루했으며 임금은 형편없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게으름을 피우거나 무단결근을 하고, 작업 현장에서 관리자와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며 심지어 생산을 고의로 방해하는 행위까지 했습니다. (중략)
포드가 ‘높은 임금’ 정책을 채택한 후 세 가지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첫째, 생활 수준이 나아진 노동자들이 안정된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가족을 잘 먹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략) 둘째, 노동자들은 포드자동차에 감사함과 의무감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따라서 자동차 만드는 일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셋째, 포드의 일당 5달러 정책은 노동자들에게 갑자기 잃을 것이 많이 생겼음을 의미했습니다. (중략) 따라서 노동자들에게는 열심히 일하고 지시를 따라야 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중략)
그리고 진짜 성공은 노동생산성의 극적인 향상에서 나타났습니다. 포드는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했지만,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책 207~209쪽
포드의 일당 5달러 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고임금을 지급함으로써, 더 높은 생산성을 유발하는” 임금 정책을 효율임금(Efficiency Wage)라고 한다. 생산성이 높은 사람에게 더 높은 임금을 주는 게 아니라, 일단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생산성의 향상을 유도하는 정책인 셈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효율임금’ 정책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구조적 실업을 만들어낸다.
포드가 일당 5달러 정책을 시행하는 순간, 포드의 노동자들은 더 이상 일자리를 쉽게 옮길 수 있는 시장, 즉 고전학파의 교과서에 나오는 (가격 기능이) 완전한 노동시장에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포드의 노동자들은 심하게 불완전한 노동시장의 운 좋은 쪽에 있었습니다. (중략)
하지만 효율임금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수준보다 높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중략) 즉 상업적인 논리를 고려할 때, 정확히 효율임금은 더 많은 구직자와 더 적은 일자리를 의미하게 됩니다. -책 209~211쪽
위 사진 속 인파처럼, 많은 사람들이 포드자동차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운 좋은 소수만 포드에 취직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고임금이 지급되는 일자리를 찾아 계속 대기하거나 혹은 다른 직장에 다니는 중에도 계속 ‘직업 탐색’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적 실업이 만성화된 나라의 대표가 스페인이다.
역사적으로 구조적 실업이 비교적 낮은 두 나라, 독일과 미국은 매우 상이한 접근 방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청년의 취업을 위해 정교한 견습생 제도와 훈련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자영업자에게도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계속 일하고 기술을 향상시키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미국식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다릅니다. 극단적인 유연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아주 간단하게 해고될 수 있으며, 이는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연히 장점도 있는데, 아주 간단하게 고용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고용의 사다리에 발을 올려 놓기가 용이합니다. (중략)
반면에 (노동시장이) 효과적이지 않은 나라도 많습니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의 지중해식 모델이 그것인데, 청년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도 종신계약을 한 사람들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표준 고용계약은 근무 1년마다 45일의 퇴직 수당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회사에서 8년 일하면, 실직했을 때 1년치 임금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그 결과 오래 근무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업은 신규 직원을 고용하는 것을 극도로 조심스러워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노동시장은 경직되었습니다. 실업률은 대단히 높게 유지되고 있죠. -책 222~223쪽
이 대목에서 잠깐 부연 설명하자면,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청년실업률이 대단히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경기가 회복되면서 스페인 청년 실업률은 30%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즉, 청년실업이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 때문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더 문제는 이러한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가 경제 성장에 심각한 저해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최근 경제의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지식경제’ 부문이다.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정보통신 업계의 비중 확대뿐만 아니라, 무형자산 투자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로머는 그의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요소로 R&D를 비롯한 무형자산 투자를 강조한 바 있다.
최근 발간된 흥미로운 책 ‘자본 없는 자본주의’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접어들면서 기계나 공장 등의 이른바 ‘유형자산’ 투자에 비해 R&D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등 ‘무형자산’의 투자 규모가 훨씬 더 커졌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가 지체되는 나라들이 많은데, 대부분은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이다.
아래의 그래프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측정한 노동경직성 지수와 유·무형 투자 비중을 비교한 것인데,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노동시장이 경직적인 나라일수록 무형 투자가 부진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이에 대해 ‘자본 없는 자본주의’의 저자 조너선 해스컬과 스티언 웨스틀레이크는 무형자산 투자가 근로자들에게 ‘작업방식의 변경’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고용과 해고의 규제가 더 심한 나라들이 유형자산에는 더 많이, 무형자산에는 덜 투자한다는 점이다. 노동시장의 원칙들이 투자 유형에 미치는 영향은 즉각적이다. 만일 직원 채용 및 관리가 진짜로 골칫거리라면 기업들은 기계에 투자하면 된다. 그러나 무형 투자에 미치는 효과는 정반대다.
새로운 무형자산은 노동자들에게 ‘작업방식’의 변경을 요구한다. 한 공장이 린 생산방식(Lean Process, 인력과 부품의 적시공급을 통해 재고를 줄이고 품질을 끌어올리는 도요타의 생산 시스템)을 시행한다고 상상해보자. 새로운 무형자산 투자는 위험이 따르며, 사업가들은 미래의 실패 가능성이 높은 일에 결코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유연성이 떨어지는 노동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애초부터 이런 식의 투자는 시작도 되지 않을 것이다. -책 54~55쪽
우리는 어느 쪽일까?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와의 연관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다양한 층위로 분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정규직·대기업 근로자들은 높은 임금과 안정적인 고용을 누리는 반면, 비정규직·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위협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 및 고용 여력을 가진 기업조차 인력채용보다는 기계장비 투자에 집중하며, 또 무형 투자보다는 유형 투자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물론 스페인 사례에서 잠깐 거론했듯,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실업률 상승의 모든 원인은 아니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될 때에는 경기를 부양하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구조적 실업을 유발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과 대응 역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 홍춘욱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2011년 명지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12월 한국금융연구원에 입사한 후 교보증권, 굿모닝증권에서 경제 분석 및 정량 분석 업무를 담당하며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을 거쳐, 현재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에서 투자전략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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