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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땅 뺏겼다?' 부동산 특조법 피해 실태

등기 미비 조상 땅 등기 간소화 특별조치 너무 허술해 악용…피해회복은 어려워

2018.11.02(Fri) 17:04:49

[비즈한국] 부산에 거주하는 A 씨는 오랜만에 고향인 여수를 찾았다가 동네 주민을 통해 황당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조부에게 물려받은 자신의 땅을 최근 B 씨와 C 씨가 소유하게 됐다는 것이다. B 씨와 C 씨는 A 씨의 땅과 인접한 토지의 소유자다. A 씨가 이들에게 뺏긴 땅은 등기만 되어 있지 않았을 뿐, 마을 사람 모두가 ‘그 땅은 A 씨의 것’이라 말하는 곳이었다. A 씨 부친의 묘지가 있고, 주민들이 돈을 내고 농작물을 경작하기도 했다. 

 

A 씨가 이들을 찾아가 따져 물었으나 B 씨와 C 씨는 “모두의 땅이 미등기 상태라 부동산을 찾아오고자 함께 묶어 등기한 것일 뿐”이라며 “곧 돌려줄 테니 걱정 말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얼마 후 B 씨는 사망했고 C 씨는 D 씨에게 토지를 매매했다. A 씨는 두 눈 뜨고 땅을 뺏긴 꼴이 됐다. 지난 2월 땅을 찾으려 소송을 시작했으나 현재 승소 확률이 낮아 민사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부동산 특조법의 허점 때문에 자기 땅을 뺏긴 이들이 적지 않다. 토지 측량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연합뉴스


B 씨와 C 씨가 남의 땅까지 한데 묶어 등기할 수 있던 것은 부동산 소유권 이전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부동산 특조법)의 허술함 때문이다. 부동산 특조법은 부동산 소유권 보존등기 또는 이전 등기를 미처 하지 못한 부동산 실소유자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 등 등기제도가 미비했을 때 조상이 매매하거나 오랜 기간 실소유해온 토지를 정식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등기 과정을 간편화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부동산 특조법은 일정 기간에만 효력이 있는 한시법으로 1978년, 1993년, 2006년, 3차례 시행됐다. 2008년 국토교통부(당시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년 6개월간 부동산 특조법으로 토지 113만 건과 건물 1만 9000동에 대한 소유권 이전 등기가 완료됐다.  

 

취지에 맞게 혜택을 본 경우도 많지만 법을 악용해 남의 땅을 빼앗은 이들도 적지 않다. 대대로 내려오던 재산을 한순간에 빼앗긴 사람들은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 서류 세 장이면 끝…‘부동산 특조법’의 허술함

 

등기 과정을 간편화한 법률이라지만 부동산 특조법은 그 정도가 예상을 넘어선다. 부동산 특조법으로 토지 등기를 하려면 신청서, 보증서, 확인서, 세 가지 서류만 준비하면 된다. 

 

A 씨의 법률대리인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는 “신청서 작성 후 보증서에 보증인 3인의 날인을 받으면 된다. 이 보증서를 지자체에 제출하면 자판기처럼 지자체장 도장이 찍힌 확인서가 나온다”고 말했다. 류 변호사의 설명대로라면 누구라도 보증서만 첨부하면 땅주인이 될 수 있다. 

 

보증서에 날인하는 보증인은 지자체에서 지정한다. 시·구·​읍·​면장은 동·​리별로 보증인을 3~6인 이내로 위촉한다. 그런데 보증인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 ‘부동산 소재지 동·​리에 계속하여 1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자 중 신망이 있는 자’로 명시되어 있다. 

 

류 변호사는 “보증인을 만나보니 그저 동네에 오래 산 어르신 중 한 명”이라며 “보증서를 가져오면 객관적 자료 등을 확인하지 않고 도장을 찍어주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만난 보증인 3명 중 2명은 보증인 위촉 후 추가적인 교육도 받지 않았다. 확인서 발급 전 지자체가 보증인으로부터 보증취지를 확인한 후 현장조사를 하는 과정도 생략됐다. 

 

류 변호사는 “보증인 3명 중 2명은 본인들의 도장을 다른 한 명에게 맡겨 놓아 1명의 보증인이 3명의 날인을 모두 하는 등 관리가 매우 허술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특조법 제출 서류 중 하나인 보증서. 보증인 3인의 날인을 받으면 된다. 사진=대한민국 전자관보 캡처

 

# 뺏긴 땅 찾기 위해 등기말소 청구소송… 대부분 패소  

 

‘남의 땅’을 자신의 땅으로 이전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이렇게 뺏긴 땅을 주인이 다시 찾는 과정은 험난하다. 한번 등기된 등기사항에는 추정력이 주어져 과정에 문제가 있다 해도 민사소송인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청구를 해야 한다. 류 변호사는 “등기 추정력을 번복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 대부분이 패소해 땅을 찾지 못한다”고 말했다. 

 

등기 추정력을 번복시키기 위해서는 해당 토지가 본인 소유였다는 것을 입증하고, 보증서 및 확인서의 위조를 입증해야 한다. 류 변호사는 “이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다”면서 “진정소유입증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 특조법을 제정한 것인데, 그것을 다시 입증하라고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보증서 및 확인서의 위조를 입증하는 과정도 녹록지 않다. 보증인이 허위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보증인 성실의무 위반으로 형사 처분 대상이 된다. 때문에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한다. 류 변호사는 “부동산 특조법으로 사기를 당해 땅을 뺏긴 사람을 보호하는 제도가 전무하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법원에는 부동산 특조법 소송이 끊이지 않는다.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만사3단독 담당 계장은 “현재 맡은 부동산 특조법 관련 소송이 350~400건”이라며 “특조법이 10년 단위로 시행되다 보니 대부분 입증할 수 있는 서류가 없어 원고 측이 패소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국회에 부동산 특조법이 발의됐으나 보완, 추가된 내용은 없다. 피해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사진=박은숙 기자

 

# 피해 사례 넘쳐나도 법률적 보완은 나 몰라라

 

최근 부동산 특조법 시행 추진 움직임이 또다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과 4월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부동산 특조법을 국회에 발의했다. 유 의원은 “미등기 토지 및 건축 소유자들이 부동산 소유권을 보호받고 재산권도 행사할 수 있도록 특별조치법 시행이 필요하다”고 제정안이 갖는 의의를 밝혔다.

 

유 의원 측 관계자는 “현재 법안이 법사위에 상정된 상태”라며 “아직은 법사위 통과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시행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부동산 특조법에서 보완, 추가된 내용이 있는지 물었으나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법조계에서는 법안이 발의될 경우 피해자가 늘어날 것을 염려하고 있다. 류 변호사는 “부동산 특조법의 허점을 아는 이들이 많아진 만큼 또다시 같은 법률이 시행되면 이제는 선착순 땅 찾기가 된다”라며 “차라리 이런 법은 없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보증인 기준이 엄격해져야 하며 보증서 제출 후에도 중간 심사 단계가 추가돼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보증인 자격 요건에 공인중개사 자격증 소유자를 추가하는 등 정확한 기준이 더해져야 한다”며 “보증서 제출 후에도 중간심사기관이 2개 이상 추가돼야 공정한 심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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