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1년, 자동차 부품업계에 다소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자동차 부품 제조사 이래CS가 한국델파이 지분 42.3%를 인수한다는 것이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이래CS의 자본은 603억 원, 한국델파이는 3629억 원으로 6배가 넘는 회사를 인수한 셈이다. 정확히는 이래CS가 2011년 초 한국델파이 인수를 위한 자회사 이래NS를 설립했고, 이래NS가 한국델파이 지분을 인수했다. 2015년에는 이래CS가 한국델파이 지분 50%를 추가로 인수했고, 사명도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으로 변경했다.
한국델파이의 전신은 1984년 대우그룹과 GM이 합작해 설립한 대우자동차부품과 대우HMS다. 1989년 두 회사가 합병해 대우기전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IMF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GM 측은 지분을 델파이에 넘겼다. 델파이는 1999년 GM에서 분사한 부품업체다.
2000년 초, 대우기전공업은 사명을 한국델파이로 변경했다. 당시 한국델파이의 지분은 델파이가 50%, 대우자동차 24.99%, 기타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25.01%를 소유하고 있었다. 2008년 대우자동차청산법인을 중심으로 한국델파이 지분 매각이 결정됐고, 2011년 이래CS가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의 지분 7.7%를 제외한 다른 대우 계열사들의 지분(42.3%)을 매입했다. 2015년 추가로 인수한 지분 50%는 델파이의 것이었다.
# 이래그룹의 한국델파이 인수 과정
이래CS는 이래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2010년 연결기준 이래CS의 매출은 1410억 원 수준이지만 한국델파이의 2010년 매출은 1조 원이 넘기에 이래CS의 한국델파이 인수가 특이하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시 한국델파이 인수전에는 갑을그룹, KTB-신한PE 컨소시엄 등이 참여했다. 이래CS는 대우인터내셔널과 컨소시엄을 맺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이래CS-대우인터내셔널 컨소시엄과 KTB-신한PE 컨소시엄은 인수가로 2300억 원가량을 제시했지만 갑을그룹은 2000억 원을 제출해 탈락했다. 당시 한국델파이 노동조합은 이래CS-대우인터내셔널 컨소시엄을 지지했다. 이래CS 측이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우리사주를 통해 노조를 경영에 참여시킨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래CS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지분 인수에 성공했다. 이래CS는 금융권에서 자금을 대출하는 한편 한국델파이 직원들이 우리사주 형태로 이래CS에 자금을 지원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래CS는 2015년 약 800억 원에 델파이의 한국델파이 지분 50%마저 인수했다. 보유 자산이 많지 않은 이래CS는 한국델파이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사모펀드운용사 자베즈파트너스를 통해 300억 원의 투자금을 모집했다.
# 인수 후 닥쳐온 위기
이래CS가 한국델파이 지분을 매입한 후인 2012년, 한국델파이의 매출은 1조 2303억 원, 영업이익은 233억 원이었다. 2013년(매출 1조 2494억 원, 영업이익 304억 원)에도 좋은 실적을 이어갔지만 2014년(매출 1조 1418억 원, 영업손실 147억 원)부터 위기가 닥쳤다. 2016년에는 매출이 1조 원 아래로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옛 한국델파이)의 실적 하락이 한국GM 사태와 연관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의 한국GM 의존도는 50%가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이 어려워진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은 2014~2017년 직원 연봉을 동결했고, 2015년에는 400여 명을 구조조정했다.
2017년에는 이래그룹이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의 공조사업부를 분할해 이래AMS라는 법인을 신설했다. 이후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 존속법인의 지분 51%를 중국 상하이항천기차기전(HT-SAAE)에 매각했다. 당시 노조 측에서는 크게 반발했지만 회사가 위기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최근 이래AMS는 구동사업부를 물적분할한 후 신설법인의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다. 구동사업부는 올해 1조 원가량 수주를 받은 이래AMS의 핵심 부서다. 김인보 이래AMS 대표는 직원들에게 “투자자들은 우리 회사 전체에 대한 투자 의향은 없지만 수주 및 미래 발전 가능성이 충분한 구동사업에는 적극적 투자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며 “주주 이익을 위해 또 다시 회사를 분리한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래그룹 내부에서는 이래CS가 무리하게 회사를 인수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2010년 말 기준 이래CS의 부채는 798억 원이었지만 지난해 말에는 7574억 원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이 기대만큼의 실적을 내지 못해 부채 상환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 자산 매각은 자베즈파트너스의 투자금 회수가 목표?
김인보 대표가 언급했듯 이래그룹이 자산을 파는 이유가 주주들의 투자금 회수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베즈파트너스가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은 자베즈파트너스가 이래CS에 300억 원을 지원한 정도다.
그러나 이래CS와 자베즈파트너스는 그 이상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이래CS는 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바루크와 케난 두 회사가 각각 220만 5882주와 220만 5883주를 취득했다. 두 회사의 합은 441만 1765주. 당시 이래CS 발행주식의 총수가 2208만 765주였으니 두 회사는 이래CS의 지분 약 20%를 취득한 것이다.
바루크와 케난은 2015년 설립된 유한회사로 이래CS 지분 취득을 목적으로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의 초대 대표는 자베즈파트너스 상무 출신인 신경진 씨였고, 현재는 권철환 자베즈파트너스 대표가 맡고 있다. 또 두 회사의 서류상 주소지는 자베즈파트너스가 설립한 회사 이프리엠제1호 사모투자전문회사와 같은 곳이다. 따라서 두 회사는 사실상 자베즈파트너스의 자본으로 추정된다.
이 지분은 자베즈파트너스가 이래CS에 300억 원을 투자한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신주의 발행액은 주당 6800원으로 총 300억 2000원이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은 무의결권 기명식 상환전환우선주식이다. 상환전환우선주는 약속한 기간이 되면 발행 회사에서 상환을 받거나 발행 회사의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우선주를 뜻한다.
현재도 바루크와 케난이 이래CS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의결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베즈파트너스가 이래그룹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자베즈파트너스를 설립한 박신철 전 대표는 현재 이래AMS 전무로 재직 중이다. HT-SAAE에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 지분을 매각한 것도 박신철 전 대표가 주도했다고 전해진다.
이래AMS의 한 직원은 “사내 인트라넷에는 직원들의 사진 및 프로필이 있다”며 “그러나 박신철 씨는 사진도 없고 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고 해서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를 만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15년 8월에는 박신철 전 대표의 형인 윌리엄 박 씨(한국명 박현철)가 이래CS 기타비상무이사로 취임했다. 그는 자베즈파트너스 사외이사로도 등재돼 있다. 윌리엄 박 씨는 2018년 8월 이래CS 기타비상무이사에서 사임, 후임으로는 역시 자베즈파트너스 출신인 신경진 씨가 취임했다.
이래AMS 내부에서는 구동사업부 분할 매각도 자베즈파트너스 측이 주도한다는 말이 돈다.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이 기대만큼의 실적을 내지 못해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져서 일단 가능한 부분을 우선적으로 매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 내부에서는 구조조정 등을 우려해 반대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초 이래CS가 회사를 인수할 때도 노조에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이미 약속을 어겼다.
공교롭게도 자베즈파트너스는 최근 여러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다. 10월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마을금고가 자베즈파트너스를 통해 MG손해보험을 인수했는데, 새마을금고법 등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MG손해보험 인수 과정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깊숙이 개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철 전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다(관련기사 MG손보 매각 초읽기에도 대주주 자베즈의 정체는 ‘안갯속’).
‘비즈한국’은 이래CS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전화를 받은 이래CS 직원은 “담당 이사에게 보고 후 연락하겠다”고 했지만 연락은 없었다.
대구=박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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