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서피스(Surface)’는 이제 브랜드로도, 제품으로도 자리를 잡았다. 서피스의 시작은 언제일까? 2012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아이디어의 출발은 테이블 컴퓨터인 ‘플레이 테이블’이었다. 무려 2001년의 일이다.
키보드와 마우스로 입력하는 컴퓨터 대신 화면을 만져서 원하는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다. 지금의 서피스와는 비슷한 듯 다르지만 ‘포스트PC’를 고민하던 당시로서는 성공 여부를 떠나 컴퓨터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셈이다.
세상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PC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품, ‘서피스’로 이어졌다. 플레이 테이블의 아이디어부터 현재 서피스의 디자인을 맡고 있는 스티비 바티시(Steven Bathiche) 서피스부문 부사장을 지난 8월 2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직접 만나 서피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좀 흘렀지만 더 늦기 전에 인터뷰를 풀어놓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플레이 테이블의 기억을 되짚었다. 스티비 바티시 부사장은 이 아이디어를 직접 냈고, 빌 게이츠도 이에 관심을 가졌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터치스크린과 가구가 결합된 기기다. 그는 플레이 테이블을 만들고 관련 논문을 썼는데, 그 제목이 바로 ‘서피스 컴퓨팅’이었다는 이야기다.
“언젠가 기술이 허락하는 미래에는 모든 것이 스마트한 컴퓨터가 되고, 또 모든 평평한 면이 컴퓨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테이블이나 벽 등 컴퓨터는 공기 같은 우리의 주변 환경이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 개념을 ‘서피스 컴퓨팅’이라고 생각했지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에 서피스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 이해가 됐다. 그리고 그 개념과 디자인 철학은 단순히 태블릿 형태의 서피스 프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서피스 스튜디오’ ‘서피스 북’ ‘서피스 랩톱’ 그리고 최근의 ‘서피스 고’까지 이어진다. 벽이 컴퓨터가 된다는 개념은 홀로렌즈를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홀로렌즈는 실제 세상과 디지털 세상을 하나로 모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플레이테이블과 서피스 역시 세상과 디지털을 묶으려는 시도였습니다. 홀로렌즈, 그리고 혼합현실은 머리에 쓰는 기기가 전부가 아닙니다. 실제 세상과 디지털을 연결하는 컴퓨팅의 한 방향일 뿐입니다.”
윈도우8는 좋은 기회였다. 세상은 터치스크린에 익숙해졌고, 컴퓨터로 손의 움직임을 담으려고 했다. 터치는 가장 직관적인 입력장치였다. 물론 윈도우8과 첫 서피스는 진통을 겪긴 했지만 그때 잡은 방향성은 지금의 서피스와 윈도우10에도 이어지고 있다.
서피스에 오랜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서피스의 화면 비율은 태블릿이든 랩톱이든 3:2다. 흔치 않은 화면이다. DSLR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이 비율이기에 사진을 보기는 좋다. 하지만 서피스가 사진만을 위한 기기는 아니다. 스티븐 바티시 부사장은 서피스를 세로로 세우며 “내가 결정한 화면”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서피스가 펜 컴퓨터이기 때문’이다.
“16:9 화면은 영화를 보기 위한 비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보다 종이처럼 세로로 세워서도 쓸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16:9는 세우면 너무 길고 좁은 화면이 나옵니다.”
애초 서피스의 탄생에는 펜이 밀접하게 붙어 있었다. 컴퓨터는 가로 화면이 중심이지만 펜은 노트처럼 세로로 쓰는 비중이 높다. 우리가 종이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원노트를 비롯해 펜에 친화적인 앱들도 세워서 쓰는 것이 더 낫다. 익숙하고 더 넓은 공간을 만들어주자는 의도의 결과물이 3:2의 화면이다. 그런데 펜 컴퓨팅은 과연 PC와 잘 맞을까? 윈도우는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가 편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많은 부분이 달려 있습니다. 키보드와 마우스가 편한 일이 있지만 반대로 펜이 더 편한 작업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입력 장치도 필요 없이 화면만 떼어내서 책이나 영상을 보고 싶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을 기기 하나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서피스 프로’의 목적입니다. 더 전문적인 디자인과 역동적으로 펜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서피스 스튜디오를 쓰면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와 PC를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달라지고 있다. 윈도우가 찬밥이 됐다고 보는 시선도 있지만 여러 움직임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 그리고 컴퓨팅을 바라보는 시야가 더 넓어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서피스 시리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지금 이 순간 대중화되길 원하는 컴퓨터의 형태다. 이 컴퓨터를 설계하는 스티븐 바티시 부사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철학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인물이다.
“미래의 컴퓨팅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기기 간의 경험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틀어놓은 음악을 노트북에서 바로 이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컴퓨팅 경험은 연결되어야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고 싶은 컴퓨팅 환경은 모든 기기를 아우르는 경험이고, 인텔리전트 클라우드는 이를 묶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컴퓨팅이 컴퓨터라는 기기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리고 있는 인텔리전트 클라우드가 그렇다. 어떤 기기를 쓰든 원하는 경험을 이어갈 수 있는 그 자체가 컴퓨팅이고, 컴퓨터여야 한다는 의미다. 인텔리전트 엣지는 컴퓨팅을 처리하는 기기이고, 인텔리전트 클라우드는 이 모든 기기의 경험을 통합하고, 더 나아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용자가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환경을 바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어떤 일은 엣지에서 더 많은 컴퓨팅 파워를 요구하고, 또 어떤 것은 클라우드에 더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에 맞는 컴퓨터 환경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의 발전은 응답 속도와 대역폭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응용프로그램의 특성, 그리고 보안을 비롯한 환경들이 결국 기기를 결정할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윈도우는 더 이상 핵심 부문이 아니다. 오히려 최근의 조직 변화를 보면 서피스와 윈도우는 거의 비슷한 자리에 올라 있다. 서피스가, 그리고 윈도우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무엇일까?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를 만드는 이유는 컴퓨터의 새로운 경험을 개척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컴퓨터는 다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드웨어를 만드는 과정이 곧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입니다.”
윈도우8을 돌아보면 그의 이야기가 쉽다. 윈도우8은 당시 세상의 모든 유행을 다 끌어안았다. 하지만 급진적인 변화는 시장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윈도우에 기대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경험은 결국 윈도우가 가야 할 방향을 빨리 찾게 했고, 지금도 윈도우10을 적극적으로 진화시키는 발판이 되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드는 것에 대한 시선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애플도, 구글도 결국 각자의 주력 제품을 더 잘 만들기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들면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방향성도 크게는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조금 다르다.
스티븐 바티시 부사장은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사용자 경험을 제대로 만들어내면 그 결과가 곧 PC 생태계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 경험의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PC 제조사들에게 방향성을 주는 것이 곧 생태계를 더 풍부하게 하고 기기 제조사들에게도 명확한 방향성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애초 서피스의 등장에 적지 않은 PC 제조사들이 불편함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서피스가 완전히 자리를 잡고 가장 인기 있는 PC 반열에 오른 지금은 오히려 잠잠하다. 서피스는 랩톱 형태에서 정체됐던 PC 환경에 변화를 소비자 시장에 알렸고, 마이크로소프트 스스로도 이 기기를 통해 윈도우10의 방향성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PC 제조사 입장에서도 안드로이드 태블릿 등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사라졌다. 시장이 이제 윈도우 태블릿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서피스의 성장과 함께 제조사들의 폼팩터, 그러니까 PC 디자인에 대한 고민도 줄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습니다. PC 제조사들이 이 디자인을 따라서 만드는 것을 막지도 않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구글도, 애플도 아니지만 동시에 구글이면서도 애플입니다. 기술에 대해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적으로 깊이 들어가고, 또 동시에 생태계로서 매우 넓게 퍼져 나가도록 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밀접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스티븐 바티시 부사장과 헤어지면서 2012년, 처음 마이크로소프트가 서피스를 내놓던 순간이 떠올랐다. ‘도대체 왜 컴퓨터를 만들지?’라는 질문은 지금까지도 흐릿하지만 분명하게 이어져왔다. 회사가 속 시원하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서피스는 결국 제품과 결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안에는 명확한 아이디어와 철학이 녹아 있었을 게다. 서피스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단순한 ‘윈도우 단말기’가 아니었다.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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