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상당한 수준으로 실질적인 카드 수수료 인하가 이뤄지도록 개선책을 강구하겠다.” 지난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한 말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3년간 적용될 신용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12월 최종 확정한다. 카드사가 벌어들이고 있는 수수료 수익을 1조 원 이상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카드사들은 더 내릴 여력이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현금 대신 카드 결제가 확대되는 가운데, 올해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영세 업체들의 경영 부담이 늘어나자 정부가 완화 장치 중 하나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에 이어 두 번째다. 12월 당정 협의를 거쳐 최종안이 발표된다.
가맹점 수수료는 카드사들의 핵심 수입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카드사 총 수익 중 적게는 45%에서 최대 82%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일반가맹점 기준 평균 수수료율이 0.01%포인트(p) 내려가면 수수료 수익이 430억 원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한다. 반대로 영세 업체 등 가맹점들은 같은 규모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폭을 돈으로 환산하면 약 1조 원이다. 금융당국은 카드사들이 수수료를 0.23∼0.25%p가량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카드사 신용판매액(일시불+할부) 규모는 한 해 430조 원인데, 앞서와 같은 비율로 내려가면 9890억 원이 빠진다. 지난해 8개 카드사의 수수료 수익 11조 6784억 원의 약 8.6%에 해당하는 규모다. 카드사 입장에선 적지 않은 타격이다.
여기에 31일 금융당국과 카드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개편방안으로만’ 1조 원을 인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불과 지난 30일까지만 해도 카드사들은 1조 원 가운데 7000억 원은 금융당국이 기존에 결정한 수수료 인하 조치에 ‘포함’된 것으로 이해해왔다. 올해 밴(VAN) 수수료, 우대수수료율 적용, 소규모 신규 가맹점 수수료 환급제도 등이 발표됐는데, 일부 제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내년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개편 방안에서는 카드사들이 인하해야 할 추가 수수료 감소는 3000억 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런 카드업계의 ‘바람’과 달리 정부는 기존 수수료 감소분 7000억 원에 이번 개편 방안을 통해 1조 원을 더 절감하겠다는 방침이다. 총 수수료 절감분이 약 1조 7000억 원이 된다는 얘기다. 이는 2015년 카드 수수료 조정 당시 추정 절감액 6700억 원의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 이슈 때문에 아직 내년 사업계획서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며 “2007년부터 최근까지 가맹점 수수료율을 내린 횟수만 11차례다. 더 이상은 내릴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금융당국의 수수료 인하 방침은 단호하다.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충분히 수수료 인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카드사 마케팅 비용이 가맹점 수수료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다. 카드사가 사용자에게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비용을 가맹점 수수료에서 가져다 쓴다는 얘기다. 실제 금감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사 마케팅 비용은 결산기준으로 6조 원을 넘었다. 전체 카드 수수료 수입 11조 7000억 원의 절반이다.
마케팅 비용은 카드 수수료율을 정하는 기준인 ‘적격비용’ 구성 항목 가운데 시장 환경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항목이기도 하다. 정부는 2012년 새 가맹점 수수료 체계를 도입하면서 수수료를 원가에 따라 산정하기로 했는데, 여기서 원가가 ‘적격비용’이다. 이 비용은 마케팅비, 자금조달비, 승인·매입비, 일반관리비, 조정비용, 위험관리비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마케팅비를 제외한 다른 항목들은 금리 변동 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복잡한 계산 없이도 ‘원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그렇다고 카드사들이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자체적으로 마케팅 비용을 줄이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정부가 “가로막았다”는 것. 카드사 마케팅 비용의 74%는 카드상품의 기본 부가서비스가 차지한다. 카드사들은 마케팅비를 줄여 수수료를 인하려면, 이 비용을 활용해 제공하는 부가서비스도 줄어들어야 한다고 항변한다.
부가서비스를 줄이려면 약관을 변경해야 하는데, 금융당국이 지난 2016년 카드상품 약관 의무 유지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인 이후 지금까지 카드상품 부가서비스를 축소하는 약관 변경은 승인된 것이 없다. 부가서비스는 카드 사용자가 가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만큼,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다.
결국 마케팅 비용에서 기본 부가서비스(74%)를 제외한 나머지 26% 안에서 낮춰야 하는데, 여기서도 카드사들은 난색을 표한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남은 선택지는 26%를 차지하는 ‘일회성 마케팅’ 비용이다. 무이자할부 서비스가 대부분”이라며 “지금 정부 계획대로라면 카드사들은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축소하고 현금서비스 등을 늘려 이자수익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단순히 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하는 과정에서 수수료율 구조 전반을 분석하고 개선하겠다는 방침은 반길 만하지만, 자칫 불똥이 소비자자들에게 튈 수 있다. 예상되는 부작용까지 고려한 대안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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