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연이은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의 효과인지, 아니면 10월 초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주가 폭락 사태 때문인지는 정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한국 부동산 시장의 상승 탄력이 약화되었다.
최근 KB부동산이 발표한 ‘주간 KB주택시장 동향’(10월 22일)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4% 상승에 그쳤으며, 최근 상승세를 주도하던 서울도 상승률이 0.13%까지 떨어졌다. 참고로 수도권(0.11%)과 5개 광역시(0.05%)는 전주에 비해 상승한 반면, 기타 지방(-0.15%)은 오히려 떨어지는 등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여전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부동산 시장의 향방을 둘러싼 논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2018년이 2006년과 닮은 꼴이기에 고점이 이제 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한편, 2006년보다는 오히려 2003년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필자 역시 이 두 주장 사이에서 처음에는 첫 번째 주장이 맞다 싶었는데 ‘서울 아파트 마지막 기회가 온다(강승우 지음, 매일경제신문사)’를 읽은 다음에는 ‘판단 유보’의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의 주장이 (전체는 몰라도) 일부는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대목 위주로 간략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왜 2018년이 2003년과 비슷한 상황인지를 알아보자. 아래의 표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발표된 부동산 규제를 나열했다. 오른쪽 괄호 안에 최근 정부의 유사 규제가 시행된 연도를 기재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발표된 부동산 규제 중에 5개의 규제가 2017년부터 시행되었고 4개의 규제가 2018년부터 시행되었기 때문에 규제만으로는 2018년이 2003년과 닮았는지 2006년과 닮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책 32~33쪽
2002~2006년에 취해진 부동산 규제가 이렇게 많았고, 또 2017년 이른바 ‘8·2’ 대책이 2000년대 중반의 정책을 재현했음을 알고 매우 놀랐다. 그럼 저자 강승우 씨는 왜 2003년과 지금 상황이 닮아 있다고 주장하는 걸까?
아래의 그림에 표시된 두 개의 원인은 매매지수와 전세지수가 만난 선을 의미한다. 첫 번째 원에서는 2001년 1분기부터 2002년 2분기까지 2년 반 동안 매매지수와 전세지수가 교차된 채 동반 우상향한다. 그리고 2002년 3분기부터 두 지수는 디커플링된다.
두 번째 원에서는 2015년 2분기부터 2017년 2분기까지 9분기 동안 매매지수와 전세지수가 교차된 채 동반 우상향 길을 걷는다. 그리고 2017년 3분기부터 두 지수는 디커플링 된다.
전세 수요가 뒷받침되는 가운데 매매지수가 오르다가 투자 수요의 유입으로 두 지수가 디커플링되기 시작한 게 2002년 3분기와 2017년 3분기인 셈이다. -책 33~34쪽
무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2000년대 초, 그리고 2015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주택 구입’ 의사를 가진 사람들이 극도로 적었다. 그러나 완만한 속도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소득이 꾸준히 상승하는 가운데 점점 아파트 거주 수요는 증가했고 이게 결국은 주택 가격 대비 전세 가격의 비율을 70%까지 올린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셈이다.
물론 이때 서울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들은 꽤 합리적인 투자자라 할 수 있다. 높아진 전세 가격 영향으로 주택을 구입하기에 부담이 없었고, 앞의 표에 소개된 각종 규제가 시행되기 전이었으니 손쉽게 돈을 빌리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덤으로 낮은 금리가 그 선택의 부담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그런 2003년과 2015년 모두 실수요 뒤에 ‘투자 수요’가 후행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강승우 씨는 인구 요인에 주목한다.
재화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수요와 공급이다. 부동산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주택의 공급은 명확한 수치가 나와 있지만 수요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중략) 그런데 2015년 노무라 금융투자연구소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서울 아파트 시세와 결혼 10년 차 부부의 증가율 간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어 2018년까지 서울 집값 상승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 것이다.
노무라 금융투자연구소에 따르면 1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두 지표 사이에 상관관계가 매우 깊은데, 부부가 결혼 10년 차가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 때문에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거나 전·월세를 벗어나 내 집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런데 그 10년 차 부부 증감율이 2018년에 크게 줄어드는데,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결혼이 급감했던 것 때문으로 보인다. (중략) 공급은 어떨까?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 동남권(및 미사 신도시) 입주 물량만 정리해봐도 상당한 규모가 대기 중이다. -책 34~35쪽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2018년까지는 ‘결혼 10년 차 부부’의 증가 등에 힘입어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누리다 2019년에는 공급과잉 영향으로 일시적인 부진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될 것 같다. 그러나 2004년 잠깐 불황 이후 다시 강세장(2005~2008년)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2020년부터 서울지역 아파트 공급이 감소하고 또 결혼 10년 차 부부의 수요가 다시 늘어나며 상승장이 펼쳐질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물론 이 주장이 사실인지, 아니면 ‘아무 상관 없는’ 변수의 조합으로 꿰어 맞춘 억지 주장인지를 지금 상황에서 결론 내릴 수는 없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모든 이가 제각각의 전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 전망이 맞고 틀리는 것은 상당 부분 ‘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당장 최근의 주가 하락이 심각한 불황으로 이어질지, 더 나아가 정부가 특단의 공급대책을 마련해 2020년부터 3기 신도시의 ‘시범단지’ 청약이 시행될지 누가 알겠는가? 다만, 그동안 미처 생각 못한 부분을 짚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독할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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