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타트업 업계의 ‘풍운아’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창업자가 한국에 상륙한다. ‘클라우드 키친(Cloud Kitchen)’이라는 국내엔 생소한 이름을 들고서다. 아직까진 용어 정의가 모호하지만 해석하면 ‘공유주방’. 주방을 함께 쓰는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통 크게 빌딩 10개 이상을 구입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아니, 주방을 공유한다고? 벌써 머릿속에 난장판이 그려진다. 아무리 공유 경제의 선구자인 트래비스라고 해도 무슨 생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든 걸까? 혹시 우버에서 쫓기듯 나온 그의 잘못된 판단 아닐까. 성공 여부를 떠나 공유경제의 거물이 관심을 기울이는 사업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 공유주방(Commercial Kitchen)이란?
공유주방은 공유경제 개념을 바탕에 둔다. 냉장고, 오븐, 식품창고 등 시설비용이 높은 주방을 함께 쓰면 초기 투자 비용이 줄어든다. 한 사업자가 설비를 갖춘 주방을 마련해 여러 사업자에게 장소를 대여해주는 것이 기본 개념이다. 쉽게 말해, 요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창업 초기 비용을 낮춰주고 실패해도 타격을 최소화해준다.
공유주방 사업은 이미 미국에서 급격한 성장세다. 2013년 130여 개에서 2016년 200여 개로 늘어났다. 현재 1억 8670만 달러(2125억 원)의 시리즈 C 투자를 마친 ‘도어 대시(DOOR DASH)’, 주 정부와 협력해 규제 완화를 이끌어낸 ‘유니언 키친 DC(Union Kitchen DC)’가 있고, 음식업에 도전하기 위해선 공유주방을 거쳐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운영 방식은 공유오피스와 닮았지만 꼭 같진 않다. 공유오피스 사업은 공간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임대업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공유주방 사업은 교육과 컨설팅에 중심을 둔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쉽다. ‘갱생’까진 아니더라도, 공유주방 사업자는 음식의 맛과 사업성 평가를 돕고 유통 채널을 찾아준다.
# 푸드 엑셀러레이터로서의 공유주방
공유주방 사업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선 개념을 둘로 나눌 필요가 있다. 공유주방과 공유식당이다. 둘은 형태와 기능이 다르다. 공유주방은 말 그대로 주방을 함께 쓰는 형태고, 공유식당은 한 식당 안에 여러 주방이 존재해 공간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인다. 둘 다 공유주방(Commercial Kitchen)이라는 개념 아래 있다.
‘위쿡’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심플프로젝트컴퍼니는 국내 공유주방 사업 1세대이자 업계를 만들어 가는 스타트업이다. 2015년 시작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공유주방과 공유식당을 함께 시도하고 있다. 위쿡의 공유주방은 시간대별로 사용된다. 한 번에 두세 팀의 ‘푸드메이커’가 원하는 시간에 주방을 쓰고 음식을 제조·개발한다.
푸드메이커는 음식점을 창업하기 전 테스트 기간을 거치는 사람, 직장을 다니면서 부업을 하는 사람, 성게간장, 유기농 잼 등 희소한 가공품을 소량 생산하는 사람으로 이뤄져 있다. 현장 판매는 하지 않는다. 제조와 판매에 시간차가 있다는 특징 때문에 공유주방은 가공식품을 만드는 사람이 찾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공식품은 각자의 브랜드 혹은 ‘위쿡’의 이름으로 유통된다.
이때 심플프로젝트컴퍼니는 ‘백오피스’ 서비스를 푸드메이커에게 제공한다. 제품 피드백, 유통 경로 개척, 마케팅, 재무 분석 등 요리하는 행위 밖의 일을 대신 처리한다. 나아가 요리 개발 과정을 돕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심플프로젝트컴퍼니는 주방 사용료와 유통 수수료 등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지난 5월에 문을 연 ‘위베이커’는 공유주방 개념만 떼어낸 사례다. 제빵사에게 전문 주방을 제공한다.
# 임대업에 가까운 공유식당
다시 말하지만, 공유식당은 공유주방(Commercial Kitchen)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다만 주방을 함께 쓰지는 않는다. 한 사업자가 넓은 공간에 여러 주방을 마련하고, 개별사업자가 주방에 ‘입점’하는 형태다. 임대사업에 가깝다. 제조와 판매 시간차가 없기 때문에 음식점이 찾는다. 기존의 ‘푸드코트’ 개념과도 유사하다.
위쿡이 운영하는 공유식당은 ‘레스토랑형 공유식당’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각 주방에 여러 종류의 음식점이 입점해 그 자리에서 고객을 상대한다. 고객이 봤을 땐, 푸드코트와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주방에 ‘입점’한 개별사업자 입장에서 본다면, 임대료만 내고 주방을 사용하는 형태다. 초기 투자 비용이 확 낮아진다.
김기웅 심플프로젝트컴퍼니 대표는 “프랜차이즈 창업에 드는 평균 비용은 9251만 원이고 개인 창업은 6762만 원이다. 음식점은 1년 새 40%, 5년 새 83%가 폐업한다. 위쿡 공유식당을 이용하면 340만 원 정도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이 25%를 넘는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5월 생긴 ‘심플키친’은 공유주방 사업에서 공유식당 개념만 떼어내 운영한다. 배달과 연계된 픽업 전문 매장으로 ‘클라우드 키친’이다. 트래비스가 말한 그 클라우드 키친이다. 임태윤 심플키친 대표는 “임대료로 수익을 내고, 대량 구매를 통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배달 전문이기에 상권이 크게 중요하지도 않다. 좋은 조건에 임대해 재임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프랜차이즈 거대화와 스페셜리티 음식 수요 양극화에 필수
공유주방과 공유식당은 엄밀히 다른 개념이지만 함께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김기웅 대표는 “공유주방에서 음식 개발하는 사람 중 80% 이상 실패한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검증된 거다. 공유식당에 자리를 주면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라며 “창업 시도의 비용은 낮춰주고 시장 진입장벽은 높여 허수를 없애는 거다. 낭비되는 자원을 절감하는 사회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식품위생법 등의 기존의 규제가 발을 묶고 있다. 단적인 예로, 식품을 취급하는 사업장은 일정 수준의 설비를 갖춰야 하고, 한 공간에선 한 사업자만 즉석식품제조가공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공유주방에서 나온 가공식품은 실제로 공유주방 사업자의 이름으로 유통이 될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공유주방 사업자에게 돌아간다. 심플프로젝트컴퍼니의 경우, 푸드메이커가 만드는 제품을 위쿡 이름으로 팔아 후에 정산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
트래비스 캘러닉은 “한국은 배달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산업 규모도 크다. 하지만 제반 시설이 낙후돼 있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클라우드 키친’은 지점을 내고 싶은 고급 레스토랑 혹은 맛집의 ‘가상의 주방’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시 말해 맛집이 소규모 프랜차이즈화되는 것. 가령 지방에서 평소 맛볼 수 없었던 서울의 유명 레스토랑 스테이크를 배달로 만나보게 된다.
김기웅 심플프로젝트컴퍼니 대표와 임태윤 심플키친 대표는 공유주방의 전망에 확신을 보였다. 김 대표는 “앞으로 대형 프랜차이즈는 더 커지고, 스페셜리티(Speciality) 음식의 수요도 커지는 양극화로 간다고 본다. 그럴수록 공유주방은 더 필요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임 대표는 “창업에 돈이 많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다. 해외의 경우처럼 창업할 땐 공유주방으로 가는 게 당연한 문화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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