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텔이 최근 9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공개했습니다. 일단 세 가지 칩이 먼저 출시됩니다. 가장 빠른 ‘코어 i9 9900K’와 그 아래로 ‘코어 i7-9700K’ ‘코어 i5-9500K’ 등 데스크톱 프로세서들입니다. 큰 소켓 대신 가장 대중적인 LGA1151 소켓에 최대 8코어, 16스레드까지 처리하는 등 거의 현재 가능한 기술의 끝을 짜내는 듯합니다.
결국 인텔은 또 다시 가장 빠른 데스크톱 프로세서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9세대 코어 프로세서가 성능을 끌어내는 방식은 조금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세서 반도체 기술의 가치관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반도체는 전자의 크기라는 명백한 물리적 한계가 있고, 이 때문에 언젠가 공정 자체의 기술적 장벽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은 오랫동안 있었지만 구조가 가장 복잡한 반도체로 꼽히는 인텔의 x86 프로세서는 10nm(나노미터) 공정에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 또다시 14nm 공정
묘하게도 인텔은 이번 신제품도 14nm 공정으로 만들었습니다. 14nm 공정이 처음 소개된 게 5세대 브로드웰 프로세서이니 벌써 5세대째 14nm 공정이 이어지는 셈입니다. 물론 8세대에서 캐논레이크 아키텍처가 소개되면서 일부 제품을 10nm 공정으로 찍기도 했지만 여전히 인텔의 주력은 14nm 공정입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14nm 장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만큼 14nm 공정 자체가 안정적이고, 심지어 세대를 거듭하면서 성능을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뭔가 10nm로 무리해서 넘어가지 않아도 아직 여력이 있다는 거죠. 물론 그만큼 10nm 공정이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텔의 자존심처럼 여겨지던 ‘틱톡’이나 ‘무어의 법칙’은 이미 빛이 바랜 게 사실입니다.
애플이 얼마 전 아이폰 XS를 발표하면서 7nm 공정으로 만든 ‘A12 바이오닉’ 프로세서를 내놓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늦게 프로세서 시장에 뛰어든 애플도 10nm를 넘어 7nm 제품을 만드는데,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 인텔이 10nm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두 프로세서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구조 자체가 다르고, x86 프로세서는 그 어떤 반도체보다도 복잡해서 미세 공정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실망과 안타까움이 겹치긴 합니다.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AMD는 ‘라이젠’ 프로세서로 10nm, 7nm 공정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늘 생산, 특히 미세 공정 때문에 공급을 맞추지 못하던 AMD로서는 오랜만에 어깨에 힘을 좀 주어도 될 것 같습니다. 라이젠 프로세서의 젠(Zen) 아키텍처가 그만큼 구조가 간단하고 확장성이 좋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텔로서는 멀티코어 프로세서의 중요한 부분이 각 코어 사이의 협업 효율을 높이는 데에 있습니다. 링 버스 아키텍처를 비롯해 코어와 코어, 캐시와 캐시, 메모리와 메모리 사이의 응답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이지요. 멀티 코어지만 한 덩어리로 설계, 생산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겁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인텔이 이 복잡한 구조를 10nm 공정으로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특히 새로운 프로세서가 그 어느 때보다 고성능에 수요가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고성능 프로세서일수록 전력을 많이 쓰고, 그만큼 전력 누설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곧 발열과 안정성에 연결되지요.
아마도 모바일을 제외하고 고성능 데스크톱용 10nm 공정 주력 제품은 내년 10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바라보게 될 듯합니다. 그 사이에 14nm의 한계를 모두 끌어다 쓰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성능을 높이는 것이 단순히 미세 공정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기술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 자연스러운 코어 수의 증가
지금 발표된 9세대 코어 프로세서는 사실 8세대 프로세서의 확장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건 성능 때문이겠지요. 코어 i9-9900K는 싱글 코어와 듀얼 코어로 작동할 때 터보 부스트로 최대 5GHz까지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코어의 개수를 이전보다도 더 늘렸습니다. LGA1151 소켓 안에 미세 공정의 변화 없이 코어를 더 늘린 것이지요. 프로세서 속 물리적 공간을 거의 최대한으로 끌어 쓴 셈입니다.
코어 i9 프로세서를 쓰는 이용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 코어 i7이나 코어 i5를 살펴보는 게 더 현실적이겠네요. 코어 i7에도 코어가 8개, 코어 i5에는 코어가 6개 들어갑니다. 코어 하나로 두 개의 스레드를 처리하는 하이퍼 스레딩 기술은 빠졌습니다.
아쉽지 않느냐고요? 하이퍼 스레딩이 있으면 좋겠지만 이전에는 4코어로 8개 스레드를 처리하고, 2코어로 4개 스레드를 처리하던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같은 물리 코어가 늘어난 것이니 다소 얄미운 정책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변화는 8세대 프로세서부터 이어져왔습니다. 하이퍼 스레딩으로 스레드 처리를 늘리던 것에서 실제 멀티 코어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것에 대비해 진짜 코어의 개수를 늘리는 것이지요. 10년 정도 듀얼코어를 주력으로 가져가던 인텔로서는 큰 변화인 셈입니다.
거의 1년 가까이 8세대 코어 i7 프로세서를 사용한 경험으로 보면 이전 세대보다 확실히 쾌적해졌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동안 못했던 것이 아니라 안 했던 것이라는 얘기지요. 게다가 그동안 인텔은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코어 수에 인색했습니다. 더 많은 코어가 필요하면 제온 프로세서를 쓰라는 전략이죠.
그런데 인텔은 왜 코어 수를 직접 늘렸을까요? 바로 경쟁 때문입니다. 코어 수를 내세워 바짝 따라오는 AMD와, 상대적으로 늦어지고 있는 미세 공정 개선을 풀어내는 방법, 그리고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게이밍용 고성능 프로세서 수요를 맞춰야 하는 모든 고민이 결국 코어 개수를 늘리는 것으로 연결되는 겁니다. 아끼던 것을 꺼내놓은 셈입니다. 경쟁이 흥미로운 이유지요.
어떻게 보면 최근의 제온 스케일러블 프로세서를 비롯해 9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보면 공정 미세화와 아키텍처 개선보다 설계의 지향점의 변화를 중심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통적으로 반도체에 트랜지스터를 많이 심는 방법보다 코어 개수를 늘리는 것과 AVX512처럼 프로세서의 연산 처리 방식을 바꾸는 제3의 기술 가치관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도체 공정보다도 이런 묘한 상황을 시장이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케팅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인텔답지 않은 듯도 합니다. 어쨌든 미세 공정은 그만큼 반도체 업계의 자존심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겠네요.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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