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노량진에서 컵밥을 먹으며 힘들게 공부하는 취업준비생에게 공사 정규직은 신의 직장이자 선망의 대상이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담당하는 서울교통공사도 그 중 하나다. 평균 연봉이 6791만 원에 달하고 정년도 보장된다. 올해 하반기 공개채용에 555명 뽑는데 3만 340명이 몰렸다. 경쟁률이 무려 54 대 1을 넘었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서 ‘고용세습’ 의혹이 불거져 취업준비생들을 분노케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15일, 자유한국당은 서울교통공사가 제출한 ‘친인척 재직 현황 조사’ 자료를 근거로 지난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무기계약직 1285명 중 공사 직원의 친인척(6촌 이내)이 108명이라며 이들의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했다.
공사의 정규직 전환방침에는 구의역에서 발생한 용역업체 직원의 안타까운 사고가 배경이 됐다. 지난 2016년 5월 28일 서울지하철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용역업체 직원 김 아무개 군(사고 당시 19세)이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김 군의 사고는 외주용역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서울시는 2016년 9월 스크린도어 안전 담당 외주 정비원 전원을 직영으로 전환했고, 지난 3월에는 이들을 포함한 무기계약직 전원(128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관련기사 [돈과법] 구의역 9-4 승강장,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다).
고용세습 의혹이 제기된 것은 바로 정규직 전환된 1285명 중 공사 직원의 친인척이 108명이라는 데 있다. 공사 측은 공사의 정규직 전환 방침이 2017년 7월 결정되었으므로 그 전에 입사한 직원 친인척들은 정규직 전환 방침을 몰랐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고 직후인 2016년 6월에 시민의 생명이나 안전에 관계된 업무는 전면 정규직화 추진 계획을 밝혔고, 구의역 사고 이후에 입사한 직원 친인척들은 65명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공사 측의 해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 공사 인사처장의 부인이 구내식당 직원으로 일하다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나 이를 숨기다 들통났고, 다른 간부의 아들 역시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해 정규직 전환되었으나 친인척 108명 명단에 들어가지 않은 사실도 보도가 됐다. 공사가 조사한 108명이라는 숫자는 이미 신빙성이 없어졌다.
서울시는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이 끝나는 23일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자유한국당은 서울교통공사에 이어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국토정보공사의 친인척 채용비리도 추가 제기하며 확전에 나섰다.
2018년 우리 사회의 주요 가치 중 하나는 공정사회 실현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사회 곳곳에서 불공정한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갈수록 어려워지는 채용시장의 불공정은 우리 미래를 갉아먹는 최악의 폐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원랜드, 주요 은행에서 불거진 채용비리가 우리 국민, 특히 취업준비생들의 가슴에 남긴 상처가 채 마르기 전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사에서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지금 공사뿐만 아니라 공사 노동조합도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고 있다. 정규직 전환 직원 중 우연히 기존 직원의 친인척이 다수 있었을 뿐 절차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 친인척 관계 조사가 시작되자 노조는 이를 거부하라고 조합원들에게 지시했다. 이 때문에 당시 설문조사 형태로 진행된 조사가 중단된 사실이 있다는 보도에 대해 노조는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동일 가치의 노동에는 동일한 대우를 하는 것이 헌법적 가치에 부합된다고 생각한다. 정규직과 동일 노동을 하는 기간제, 파견노동자 등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에 제도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번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은 국민에게 커다란 불신을 안겨주었다. 정규직 전환이 곧 직원들의 친인척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다.
지금 국회에는 노동계의 고용세습을 근절하기 위한 여러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일부개정 법률안’,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 등. 정치권에서는 서울교통공사 건을 단지 정쟁으로만 이끌 것이 아니라 위 법안들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불공정하게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박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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