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나는 당신에게 차량을 제공할 수 없소. 카미노는 당신이 두 발로 온전히 걸어야 하는 길이니까.” 내 간곡한 부탁은 단칼에 거절당했다. 콧수염 관리에 인생의 절반을 쓸 것만 같은 스페인 아저씨는 주차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배가 볼록하게 나온 게 인심이 좋아 보였는데 생각보다 심지가 굳었다.
“X발.”
고개를 돌려 욕을 흘려보냈다. 오죽했으면 부탁했겠냐고. 하지만 너무 맞는 말이라 더 불평할 순 없었다. 이제 목적지까지 남은 1km는 온전히 내 두 발로 걸어야 했다. ‘콧수염 아저씨’가 말한 1km보다 훨씬 멀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금 차를 얻어 탈 유일한 기회를 놓쳤다.
카미노 가이드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마을에 와 있었다. 마을은 버려진 드라마 세트장같이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길을 잘못 들어서 3km쯤 돌아 이 마을에 도착했다. 목적지까지는 1km, 아니 족히 2.5km는 더 가야 했다. 문제는 왼쪽 종아리가 미친 듯이 아프다는 거였다.
정말 웃기게도 혼자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통증이 시작됐다. ‘십 리도 못 가고 발병 난다’는 노랫말이 떠오르는 걸 고개를 휘휘 저어 떨쳐내며 모른 척 걸었다. 아무래도 짐이 너무 무거웠다. 등산화가 불편해 슬리퍼를 자주 신다 보니 하중이 종아리로 그대로 전달됐다. 종아리 근육이 위아래로 잡아 당겨지듯 팽팽했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시작된 건 길을 잃기 바로 직전이었다. 마을이 눈앞에 보였다. 직선거리로 1km 정도. 그래, 그 정도는 참을 수 있겠다. 근데 바로 길을 잃었다. 그때 느꼈던 절망감의 크기는 내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였다. 포기하고 싶었다. 근데 포기하려면 저기까지 가야 했다. “악~~~~~~~” 소리를 질렀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 가장 큰 데시벨이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래 봤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오버페이스로 오후에 걷다 보니 혼자였다. 그래, 누군가가 있다면 길을 잃지도 않았겠지. 아무도 궁금하진 않겠지만 내가 느꼈던 절망감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 좀 더 덧붙여보자면 이랬다. 로그로뇨 이후 나는 리오하주에 들어왔다. 리오하주는 땅이 황토색으로 확연히 보일 정도로 비옥하다. 이곳에서 난 포도로 만든 포도주는 세계적으로 알아준다고.
나바레테에서 어제 저녁에 마신 포도주가 너무 맛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게다가 스페인은 와인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에 싸기까지 했다. 호기롭게 물통에 든 물을 ‘촥’ 버리고 포도주를 콸콸 부었다. 그렇게 하면 고독한 중세 순례자가 될 것만 같았나 보다. 아침 6시부터 오후 3시가 넘어갈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처음엔 낭만적이었지만 해가 등을 쪼아댈 때쯤 포도주는 저주와 같았다. 포도주는 마실수록 갈증이 난다.
12kg이 넘는 가방에, 절뚝이는 왼쪽 다리, 물통에 든 포도주. 신들의 전쟁에서 줄 잘못 섰다가 지구를 떠받치게 된 그리스 신화의 인물 아틀라스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아! ‘아구아’(Agua), 혹시 순례자 길을 걸을 계획이라면 이 단어를 꼭 알아두길 바란다. 그 이름 모를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물을 먼저 마셔야 했다. 식수대는 말라 있었다.
개가 짖는 집이 있어 문을 두드렸다. 백발의 할머니가 나왔다. 너무 급해 ‘물’이라고 말했다가 ‘워터’로 바꿨지만, ‘워터’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때 묻지 않은 곳이었다. 절실했던 내 무의식이 외운 적 없던 ‘아구아’라는 말을 기억 저편에서 찾아냈다.
할머니는 내 물통을 가져가 물을 채워줬다. 와인 맛이 나지 않는 거 보니 물을 담기 전에 잘 헹군 것 같았다. 물통에서 와인을 본 할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벌컥벌컥. 그때 마셨던 물이 내 인생에서 가장 시원했다. 실제로 시원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라시아스(Gracias)’ 대신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허리를 숙였다. 한국말로 해야 고마움을 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미노엔 노란 화살표가 수천 개 있다. 순례자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끄는 방향키다. 화살표만 잘 따라가면 문제없다. 화살표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길 잃기란 쉽지 않다. 어정쩡하게 떨어져 있거나 잘 표시 안 된 숲길이나 대도시도 있지만 그땐 앞뒤로 걷는 순례자가 훌륭한 나침반이 된다. 하지만 걷다 보면 온전히 혼자일 때가 있고, 그때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온다.
내가 방향을 잘못 잡은 갈림길은 흙길이었다. 나무에 표시된 노란 페인트를 화살표로 착각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매번 보던 화살표는 없었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갈림길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혼자 결정하고 책임지거나.
도박 같은 거지만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큰일 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겨서 본전일 땐 아무것도 바뀌지 않지만, 져서 큰일 나고 난 뒤엔 많은 것이 바뀐다. 고통이 수반되지만 그만큼 수확이 생긴다. 목적지인 시루에냐(Cirueña)에 마침내 도착해 씻고 누우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게 필요한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순례자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게 다 뜻이 있어서 벌어진 것이다.’ 순례길 위의 가톨릭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재미있게도 이 길을 걷는 비종교인도 종종 그런 말을 하곤 한다. 그런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만약 이 고행이 ‘설계’된 것이라면 그 주체는 하늘에 있는 엄마였을 거다.
많은 사람에게 그렇겠지만 엄마는 인생의 방향키였다. 갈 길을 안내해주고, 갈림길에 섰을 때 더 나은 길을 골라줬다. 엄마라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마음 편히 걸으면 그만이었다. 8년 전 엄마가 세상을 떴다. 암이었다. 노란 화살표가 사라지니 막막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 이후 내 선택은 갈림길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빠, 누나 혹은 주위 어른이나 친구가 걸어와 방향을 알려주길 기다렸다. 결정을 내리고 그 책임을 감당하기가 무서웠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가 아틀라스라고 여겨졌을 때 순간 나 자신을 다독였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 순간은 지나가고 침대에 누웠다.
내 결정으로 인한 책임을 오롯이 감당해낸 첫 순간이었다. 아주 사소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랬다. 이제 나는 내가 ‘아틀라스 상태’에서 5km 이상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위기의 순간에서 패닉에 빠지지 않고 정신을 차리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원래 계획했던 것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더라도 감당해낼 수 있다는 것, 큰일 나지 않는다는 것.
카미노는 그렇게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조금씩 꺼내주고 있었다.
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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