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음악과 디저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입가심하기에 적당하다는 것. ‘가토 드 뮤지끄(gâteau de musique)’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뮤지션과 디저트를 매칭해 소개한다.
분명 균형을 잘 잡고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왼쪽에서 거센 파도가 몰아친다. 맞아 그럴 수 있지. 강인한 나는 거기에 맞춰 조금 움직인다. 이번엔 오른쪽에서. 맞아 세상은 원래 이렇지. 잘 맞춰본다. 그랬더니 위에서, 그러더니 뒤에서, 이제는 방향을 가리지 않고. 균형은 사라지고 나도 사라진다. 왜 내가 공들여 잡은 균형은 아무도 보지 않고 각자 자신의 기준을 난폭하게 던져대는가. 화가 난다!
화가 날 때면 밀푀유를 먹자. 밀푀유는 바삭하고 두툼하게 구운 푀이타주 사이에 크림을 끼워 넣은 가토다. 푀이타주는 단단하고 크림은 부드러워 커트러리로 곱게 썰어 먹기 어렵다. 손으로 들고 먹는 것이 최선이다.
어째서 밀푀유인가. 단단한 푀이타주와 부드러운 크림은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양 극단의 요구와 닮았다. 크게 한 입 깨물어 와그작 씹어 먹으면 어금니로 분쇄된 푀이타주 사이로 부드러운 크림이 끼어들어 환상의 하모니가 찾아온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요구에 넝마가 된 내가 아름답고 현명하게 균형을 찾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입 속 밀푀유가 노래한다.
입 안에서 바삭 부서지는 밀푀유를 먹고 있으면 어떤 박자가 떠오른다. 드러머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드러머는 김간지다. 김간지는 드럼을 맛있게 두드린다. 드럼이 거대한 크런치 초콜릿이라면, 김간지는 그것을 먹는 거대한 입이다. 드럼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푀이타주를 찾았으니 크림을 찾을 차례다. 고민할 필요 없이 초록 검색창에 ‘김간지’를 치면 자동완성검색어에 ‘김간지X하헌진(김X하)’이 나온다. 찾았다!
김X하의 음악은 밀푀유를 먹는 과정과 같다. 푀이타주가 콰그작 씹히는 리듬감과 같이 김간지의 연주가 펼쳐진다. 부드럽게 스며드는 크림처럼 하헌진의 기타가 다가온다. 때론 푀이타주만 씹히거나 크림만 느껴지듯 그들의 연주 또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김X하를 들을 땐 푀이타주와 크림 외에 뭐라도 하나 무심하니 툭, 올라간 밀푀유를 골라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헌진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위 사진 속 밀푀유에는 가벼운 셩티크림과 솔티카라멜이 쇽 올라갔다.
악에 받쳐 밀푀유를 힘차게 씹고 홍차 한 모금 곁들이면 성난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게 다 뭐라고. 뭐긴 뭐야 먹고 살자고 하는 거지. 그래도 하루만 아무 일도 겪지 않고 살 수 있다면.
텅 빈 접시를 보니 왜 화가 났는지, 누구 때문에 화가 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뇌세포를 녹일 듯하던 고농축 스트레스가 기체가 되어 날아갔다. 난 나를 어찌할 바를 몰랐었는데 네가 나보다 낫구나. 네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하다.
고화질 뮤직비디오를 보며 음악을 들으니 물음표가 떠오른다. 김X하의 연주가 고스란히 전달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리코딩 기술의 문제일까 아니면 스피커가 문제일까. 5000만 원짜리 스피커를 사서 수력발전소가 만드는 전기를 찾아 이사를 가야 하는 걸까. 조금 더 쉬운 방법은 김X하의 공연을 직접 보는 것이 있다. 절충안으로 최근 나온 김X하의 라이브 앨범이 있다.
홍차까지 다 마셨다면 생업으로 복귀해야 할 테다. 양 극단을 오가는 스트레스로 뇌세포를 녹이는 대신 밀푀유를 야무지게 씹어 먹길 바란다. 김간지X하헌진과 함께.
필자 이덕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두 번의 창업, 자동차 영업을 거쳐 대본을 쓰며 공연을 만들다 지금은 케이크를 먹고 공연을 보고 춤을 추는 일관된 커리어를 유지하는 중. 뭐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10년째 답을 못하고 있다.
이덕 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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