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 최초 관광 특구’인 이태원 상권이 하락세다. 이태원은 ‘서울 속의 외국’이라 불리며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2017년 4분기 중대형 상가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이태원 지역 공실률은 서울 도심(4.4%)의 3배가량인 11.8%다. 3분기 공실률인 19.1%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높은 수치다.
지난 15일 1시경 찾아간 이태원동 일대는 한산한 분위기였다. 월요일 오후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상인들은 길거리에 나와 하품을 했다. 이태원역 4번 출구에서 출발해 녹사평역 방면으로 3분쯤 걸었을까, 큰 건물 1층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2층엔 카페가 영업 중이었다.
바로 옆 옷가게 직원은 “그곳이 빈 지 오래됐다”며 “한때는 위층 카페가 아래층까지 사용했는데, 어느 순간 아래층을 비웠다. 높은 임대료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경기는 어떠냐”라고 묻자 그는 “이태원 상권은 서서히 나빠지고 있다”고 답했다. 정장용 맞춤셔츠를 제작하는 이 가게는 42년째 같은 자리에서 영업 중이다.
조금 더 걸어 골목으로 들어가 보니 나란히 붙은 세 점포가 모두 공실이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 들러 상권에 대해 물었다. 비좁은 사무실 안에 있던 직원 세 명은 모두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권이 좋지 않다는 기사가 나오면 더 나빠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바로 옆 환전소 주인은 “요즘 힘들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30분 정도 더 돌아다닌 결과 10곳이 넘는 공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길에서 만난 용산구 소속 ‘관광경찰’은 “우리는 밤늦게까지 활동하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상권의 활기가 떨어진 것은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죽옷을 파는 가게 주인은 한숨을 쉬며 “공실이 많은 건 한국 경기 전반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며 “미군이 빠지면서 조금 타격이 있다”고 덧붙였다.
경리단길로 넘어가자 ‘임대’ 팻말이 걸린 주택들을 볼 수 있었다. 영어로 ‘포 리스(For Lease)’로 쓰인 곳도 있었다. 다섯 집 걸러 한 집 정도로 비어 있었는데, 고급 부자재가 쓰인 건물이었다. 인근 다른 부동산중개업소 공인중개사는 “미군이 빠져서 공실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주택은 대략 10~20%로 공실이지만, 이태원은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의 수요가 많은 곳이라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며 “오랫동안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다면 임대료를 너무 높게 책정했거나 인테리어 등에 신경을 안 썼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권은 어떨까. 앞서의 공인중개사는 “상점이 많이 빠지고 있다”며 “근본 원인은 사업자가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300만 원 넘는 임대료를 내기가 벅찼을 것”이라며 “근래 이태원에 청년 창업자들이 많이 뛰어들었는데, 모두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했다”고 말했다. 이어 “임대료가 많이 오른 것은 아니지만 인건비와 마진 등 타산이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강조했다.
미군부대 이전이 이태원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묻자 그는 “미군이 나가서 이태원 경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경리단길에서 파는 추러스를 미군이 사 먹을 것 같으냐”며 “애초 이태원은 외부 사람을 대상으로 주말 장사하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부동산114 조성근 연구원은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임대료 때문”이라며 “최근 연남동, 익선동 등 이태원보다 매력적인 상권이 늘어 유동인구가 그쪽으로 빠진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태원만의 특색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미군부대 이전에 관해서도 “이태원은 원래 외부 인구를 대상으로 장사하는 곳”이라며 “상주인원인 미군이 상권 하락에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임대료는 이태원 상권의 확장을 가져왔다. 이태원 상권은 경리단길, 해방촌 등으로 계속 확장돼왔다. 한국감정원 상업자산통계부 추현진 대리는 “이태원 상권은 과거부터 계속된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원주민 이탈 현상)으로 계속 확장돼왔다. 이태원 전통 상권의 공실률이 올라가고 가게가 빠지는 것은 그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태원에서 50년 넘게 거주했다는 한 편의점 주인은 “편의점 건물이 어머니 것이라 임대료를 안 낸다. 임대료를 내야 했다면 나도 많이 어려웠을 것”이라며 “솔직히 인근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지금의 반만 받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재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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