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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조롱거리 노치'를 어떻게 대세로 만들었나

전면 디스플레이 위해 'M형 탈모' 선택…하드웨어-운영체제 직접 제작 특성화

2018.10.15(Mon) 17:17:48

[비즈한국] 지난해 이맘때쯤 애플이 소문 속의 ‘아이폰 X’을 출시했다. 소문의 내용과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운 부분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디스플레이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화기 근처의 디스플레이가 움푹 파인, 이른바 ‘노치(notch)’ 디자인이었다.

 

처음 이 디자인을 봤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일단 디스플레이를 둘러싸는 테두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사라진 것은 기술적으로, 또 디자인적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언젠가 ‘미래의 아이폰’이라며 팬들이 그려낸 이미지와 닮기도 했지만 현실성은 다소 떨어져 보였다. 

 

‘아이폰 X’이 출시됐을 때 노치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려 논란이 적지 않았다. 이전 아이폰(왼쪽)과 노치 디자인을 적용한 ‘아이폰 X’ 비교. 사진=최호섭 제공


디자인도 낯설기만 했다. 소문이 돌 때부터 노치는 논란이 됐는데, 애플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 루머 이미지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면서 이 노치 디자인은 묘하게도 놀림거리가 되어 있었다. 남성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인 ‘M형 탈모’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근까지도 아예 대놓고 이를 조롱하는 광고를 냈다.

 

꼭 삼성전자가 아니어도 시장의 경쟁자들은 대부분 이 디자인을 직간접적으로 놀렸다. 돌아보면 우스꽝스럽다는 이유다. 시장은 어색한 디자인에 웃을 수 있지만 경쟁자들은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거스르기 어려운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유를 잘 설득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 사실 노치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한 번쯤 고민했던 디자인이다. 수화기 부분을 파낸 스마트폰이 나왔던 적도 있다.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 왜 이런 디자인이 나왔는지를 먼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애플은 이 노치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아이폰 X의 이야기를 먼저 마무리하자. 애플이 이 노치 디자인을 부담 없이 시장에 안착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하드웨어와 운영체제(iOS)를 직접 만들기 때문이다. 

 

애플이 iOS를 만들면서 챙기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콘텐츠’다. 애플은 운영체제의 역할이 앱(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를 돋보이게 하는 데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UX(사용자경혐)는 점점 더 단순해지고, 콘텐츠보다 UX가 더 도드라지는 앱은 앱스토어 심사에서 떨어뜨리기도 한다. 애플이 개발자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콘텐츠와 UX가 싸우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애플로서는 네모난 화면을 온전히 콘텐츠에 주고 싶었을 것이다. 통신 안테나와 시계, 배터리 상태 등이 화면의 적지 않은 공간을 계속 차지하지만 직접적으로 쓰지 않는 부분이다. 픽셀 하나하나를 짜내서 써야 하는 스마트폰 제조사로서는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온전한 가로 영역이 콘텐츠가 아닌 다른 정보로 고정되는 것이 필요성을 떠나 아깝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노치 디자인은 현재 기술 안에서 카메라와 수화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 신경 쓰이는 ‘한 줄’을 화면 밖으로 밀어낼 방법이다. 운영체제의 디자인으로 명확히 콘텐츠 부분과 정보 부분이 분리되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폰 X을 만져보면 대체로 사진으로 보던 것과 달리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하드웨어 디자인이 소프트웨어 디자인과 적절히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다만 옆으로 화면을 뉘어 동영상 콘텐츠를 볼 때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아직 완전히 풀어내지 못했다.

 

아이폰 X을 만져보면 대체로 사진으로 보던 것과 달리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하드웨어 디자인이 소프트웨어 디자인과 적절히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사진=최호섭 제공


그럼 애플이 이런 UX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일부러 화면을 잘라냈을까? 그건 아닐 게다. 디스플레이를 스마트폰 앞면에 가득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구조적으로 스마트폰은 전화기이기 때문에 수화기가 위쪽에 있어야 한다. 셀카가 스마트폰의 중요한 역할인 만큼 전면 카메라를 떼어낼 수도 없다. 

 

아래쪽 상황도 다르지 않다. 디스플레이의 컨트롤러는 대체로 화면 아래에 붙고, 백라이트도 테두리에 붙는다. 스마트폰의 베젤은 이런 기술적 한계와 맞물린 결과물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아이폰 X은 OLED를 썼고, 컨트롤러도 뒤로 옮겼다. 하지만 수화기와 카메라는 어찌 할 수가 없다. 지금 상황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인 셈인데, 일단 그 부분을 남겨둔 것이 아이폰 X의 노치다.

 

애플은 이를 잘 해석했고, 아이폰 X의 특징으로 만들어냈다. 아이폰 XS와 XR 등 올해 발표한 기기들에도 별 거부감 없이 자리를 잡았다. 추측이지만 아이폰 X이 무난히 자리를 잡고, 이 기기를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만져보면서 대부분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운영체제와 조화를 떠나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모든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꿈꾸는 디자인이기도 하다.

 

확신을 얻은 기업들은 이제 노치 디스플레이를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했다. 화웨이는 ‘P20’에 재빨리 이를 적용했고, 괜찮은 평을 듣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도 이 디자인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LG전자는 이 노치 디자인을 화면 UX 면에서 일찌감치 기대했던 기업이다. 노치는 아니지만 화면 위에 또 하나의 화면을 붙인 ‘세컨드 스크린’이 바로 그것이다. 세컨드 스크린은 심지어 OLED도 아니고 LCD를 이용해서 만들었고, 구글 안드로이드에 세컨드 스크린 관련 요소가 들어 있지 않았음에도 LG전자는 스스로 풀어냈다. 이를 무기로 LG전자는 또 하나의 플래그십인 V 시리즈를 안착시켰고, ‘V10’과 ‘V20’ 이용자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어쩐 일인지 LG전자는 ‘V30’에서 OLED를 썼음에도 세컨드 스크린을 밀어내면서 아쉬움을 샀다. 그러다가 다시 G시리즈에 ‘뉴 세컨드 스크린’이라는 이름으로 아예 노치 디스플레이를 가져왔다. LG전자는 최근 ‘V40’까지 꺼내 놓았지만 아직 완전한 LG전자의 특색으로 녹여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나 화웨이를 탓할 일은 아니다. 새로운 디스플레이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은 운영체제를 건드려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안드로이드들의 노치 디스플레이를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업계에서 서서히 새로운 디스플레이 형태를 하드웨어적으로 소프트웨어적으로 고민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0일 구글은 ‘픽셀 3XL’에 큼직한 노치를 심었다. 이 제품으로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도 노치가 ​공식적인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 잡은 셈이다. 사진=최호섭 제공


구글도 움직이고 있다. 구글은 이미 5월 개발자 컨퍼런스인 구글I/O에서 ‘안드로이드 9 파이’를 공개하면서 노치에 대한 힌트를 준 바 있다. 필수는 아니지만 이미 안드로이드 생태계도 노치를 고민하고, 구글도 이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난 10일 구글은 ‘픽셀 3XL’에 큼직한 노치를 심었다. 픽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품인 동시에 업계에 안드로이드 기기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역할도 품고 있다. 그리고 이 제품으로 안드로이드도 노치가 ​공식적인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 잡은 셈이다.

 

물론 여전히 시장에서는 노치를 의심 섞인 눈으로 쳐다보곤 한다. 거부감을 갖고 바라보는 소비자들도 많다. 하지만 노치를 쓴 제품들은 늘어나고, 애플은 확신을 갖고 모든 제품에 노치 디스플레이를 심었다. 심지어 아이폰 XR에는 LCD도 넣었다. 구글도 단순한 유행으로 넘기지 않고 운영체제를 진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노치를 바라보고 있다.

 

노치는 기술의 한계 때문에 시작된 ‘부산물’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적인 고민이고, 현재 등장하는 기기들은 이를 한계점이 아니라 작은 ‘변조’에서 오는 특성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오히려 노치를 없애고 다른 방식으로 카메라와 수화기를 옮기는 것이 당장으로서는 더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언젠가는 또 다른 형태의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기술이 받아들여지겠지만 현재로선 노치 디자인이 확실한 흐름이다. 세상이 기술의 진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최호섭 IT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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