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경기 부양과 일자리 확대를 위해 막대한 액수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정작 시중에는 돈이 돌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들은 주식과 채권시장 둔화 등으로 자금 굴릴 곳을 찾지 못해 쌓아두고 있고, 기업은 정부의 경제정책이 못 미더워 자금을 묵혀두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올해와 내년 예산을 크게 늘리는 슈퍼 예산을 편성하며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이러한 ‘돈맥경화’가 해결되지 않으면 별다른 성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예산을 전년 대비 7.1%나 늘린 429조 원으로 편성한데 이어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9.7% 급증한 470조 5000억 원으로 확정했다. 복지와 일자리는 물론 연구·개발(R&D) 등에 대한 예산을 대폭 늘려서 가계와 기업의 수입과 지출이 늘어나도록 해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가계와 기업에 풀어준 돈이 지출이나 투자를 통해 시장에 돌고 다시 가계와 기업의 수입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가계나 기업 모두 손에 들어온 돈을 지출이나 투자에 쓰기 보다는 쌓아두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당장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떠도는 단기부동자금은 7월 말 현재 1112조 7527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1년 전에 비하면 72조 1737억 원(6.9%)이나 늘어난 액수다. 단기부동자금이란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양도성예금증서, 환매조건부 채권(RP), 투신사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6개월 미만 정기예금, 증권사 투자자 예탁금 등 언제든 투자에 사용할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는 자금이다.
이러한 자금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단기적으로 투자할 만한 투자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시장은 약세장을 벗어나지 못했고,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채권 수익률도 나빠진 상태다 보니 투자할 곳을 찾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 부동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가격 급등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부동산 가격이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급등했던 이유가 단기 부동자금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단기부동자금은 지난해 10월 말 1063조 6281억 원에서 12월 말 1055조 5947억 원으로 감소했다.
당장의 투자처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투자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은행에 묵히는 자금도 늘어나고 있다. 7월 말 현재 은행에 들어와 있는 예금은 663조 681억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9.8% 증가했다. 이 중 2년 이상 정기예금은 40조 2613억 원으로 같은 기간 22.7%나 급증했다. 이로 인해 전체 예금에서 2년 이상 정기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7월 5.4%에서 올해 7월에는 6.1%로 상승했다. 이는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지난 9월 2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0%였던 우리나라의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7%와 2.8%로 낮췄다. 지난 9일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 3.0%, 내년 2.9%로 봤던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8%와 2.6%로 하향 조정했다. 그나마 이러한 전망치는 양호한 수치다. LG경제연구원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2.5%로 보고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갈등,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상, 국제 유가 상승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외부 악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국내 경제 사정이 좋지 않는 상황에서 외부 악재에 대한 우려까지 커지면 시중에 자금이 더 돌지 않으면서 경기가 한층 더 냉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이라는 말에 매몰되면서 논쟁만 있고, 정책은 없는 상황”이라며 “구체적인 정책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예산을 아무리 부어도 돈맥경화가 해소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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