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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왕회장 묘도 이장명령' 재벌가 명당 무리수의 그늘

하남시 "현대가 묘 그린벨트 안에 조성"…"풍수지리 때문, 장례문화 바꿔야"

2018.10.12(Fri) 18:32:40

[비즈한국] “그 땅에 선친의 묘를 이장한다면 금시발복하여 이 가문에서 2대에 천자가 나올 것입니다.” 영화 ‘명당’​에 나오는 대사다. 땅의 기운이 대대손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 영화 속 인물들은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혈투까지 벌인다.

 

풍수지리는 멀게는 선사시대부터 시작해 산과 평지가 많은 한반도 생활관습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미풍양속으로 여겨지며 멀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네 의식 저편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조상의 묏자리는 잘 써야 한다’거나 ‘함부로 손보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그것.

 

예로부터 ‘부자학’이라 불리며 돈 있고 힘 있는 가문은 더욱 풍수지리를 꼼꼼히 따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산림 보호를 이유로 매장 허가가 어려운 요즘, 국내 재벌들의 선영(조상의 무덤이나 그 근처의 땅)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조성돼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 현대가 선영 그린벨트 지정 1년 뒤 매입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일대. 5만 6636㎡ 임야엔 잘 정돈된 네 개의 묘역이 있고, 그 안엔 일곱 개의 봉분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가의 선영이다.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 토지를 매입한 건 1973년 6월 5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73년 하남시 창우동의 땅을 사 선영을 조성했다. 이 부지는 그린벨트 지역이다. 하남시는 묘지 이장에 대한 행정명령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사진=최준필 기자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 부지에 한국전쟁 당시 남으로 피난 오며 헤어진 부친과 모친의 가분(시신 없는 묘지)을 만들었다. 2001년 3월 25일, 정 명예회장은 자신이 만든 선영에 영면했다. 이후 정 명예회장의 장남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동생 고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 부인 고 변중석 씨, 맏며느리 역할을 했던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부인 고 이정화 씨가 차례로 해당 부지에 안장됐다.

 

그런데 ‘비즈한국’ 취재 결과, 현대가 선영이 조성된 부지는 1972년 8월 25일 그린벨트로 지정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린벨트로 지정된 토지에 묘역을 설치하는 행위는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불법이다.

 

현대가 선영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인 하남시청은 지난 2일 묘역 설치를 불법으로 판단하고 시정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하남시 건축과 녹지관리팀 주무관은 “해당 선영에 있는 묘지 모두 그린벨트 지정 이후에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만간 묘지 이장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릴 예정”이라며 “만약 묘지 이장을 하지 않는다면 매년 최대 두 번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행강제금은 해당 토지의 공시지가의 30%에 해당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하남시 창우동 현대가 선영의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 조상 묘역 조성 과정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에 있는 삼성가 선영엔 봉분이 세 개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보모가 그 주인이다. 이 선대회장의 조부모와 부모는 부부 합장묘로 안치된 상태다.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자신의 조부모, 부모, 아들의 보모 묘역을 1967년 5월 수원시로 이장했다. 당시 해당 부지의 주인은 임 아무개 씨였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병철 선대회장은 1967년 5월 경남 의령군에서 경기 수원시의 선영으로 조부모와 부모, 이 회장 보모의 묘를 이장한 것으로 비석에 쓰여 있다. 하지만 당시 해당 부지는 임 아무개 씨의 소유로 확인됐다. 이 선대회장은 1972년 10월에야 해당 부지를 비롯해 일대의 8만 3039㎡ 토지를 모두 사들였다. 

 

이 선영을 30년 이상 지켜온 관리자는 “예전엔 여기가 작은 마을이었다. 삼성이 선산 여기저기에 있던 무덤을 모두 이장하는 조건으로 그때 시세보다 높게 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 ‘배산임수’ 재벌의 명당 묏자리를 찾아서

 

국내 대표 재벌인 현대와 삼성은 왜 이렇게까지 조상을 섬겼을까? 풍수지리학 전문가들을 통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비즈한국’이 자문을 구한 두 풍수지리학자는 입을 모아 “재벌들은 예전부터 풍수지리를 아주 꼼꼼하게 살피고 묘를 썼다. 집안의 담당 풍수지리학자가 헬기를 타고 다니며 자리를 볼 정도”라고 설명했다.

 

현대가 선영. 뒤로는 산이 버티고 있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으로 풍수지리학에서 명당으로 꼽힌다. 선영 앞쪽으로 멀리 한강이 흐른다. 사진=최준필 기자

 

신석우 용인대 사회교육원 교수는 “당시 그린벨트를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부모를 좋은 자리에 모시기 위해 묘를 썼을 것”이라며 “현대가 선영은 기본적으로 배산임수 지형으로 좋은 조건을 갖췄다”고 답했다.

 

김려중 풍수지리학자는 “당시 이병철 회장은 집안 풍수를 봐주던 지창용 선생의 자문으로 수원으로 선영을 옮긴 것으로 안다”며 “​물론 남의 땅에 묘를 썼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건 아마 삼성이 그 지역 땅을 샀다고 소문나면 값이 오르거나, 기타 불안 요소가 있어서 그런 듯하다”고 덧붙였다.

 

# 관습적 무허가 매장 “2000년 이전 묘지는 인정”

 

국내 재계 10위에 드는 기업 중 오너 경영이 이뤄지는 곳은 8곳이다.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을 하나로 놓고 보면 7곳. ‘비즈한국’​이 조사한 결과 ​​그 중 선영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조성한 기업은 한 군데도 없었다. 공통으로 지켜지지 않은 절차는 ‘지목변경’이었다.

 

1961년 장사법이 시행된 이후 묘역을 설치할 땐 토지의 용도를 ‘묘지’로 바꿔야 한다. 지목변경을 하려면 관할 지자체에 허가가 필요하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청 사회복지과 주무관은 “장사법이 시행됐지만 이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허가 없이 묘지를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2000년 1월 장사법이 전면 개정돼 규제 근거가 마련되면서 2000년 이후 허가 없이 불법으로 설치된 묘역은 고발하거나 벌금을 부과한다. 다만 2000년 이전에 불법으로 조성된 묘지는 인정해준다”고 설명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수원시의 삼성가 선영 전경. 매년 여의도 면적의 1.2배에 달하는 사림이 묘지 조성으로 훼손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수원시 장안구청 건축과 주무관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자기 땅이니 괜찮겠지 하고 묘를 쓴다. 하지만 그린벨트가 아니더라도 관할 지자체 허가 없이 매장하는 건 산림 훼손으로 불법”이라면서도 “신고나 고발 없이는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송영범 산림조합중앙회 산림토목팀장은 “작년 기준 84%가 화장을 했다. 그중 44% 수목장, 37%가 납골당을 이용했다”면서도 “매장보다는 화장하는 추세라 산림 훼손이 줄고 있지만 매년 여의도 면적의 1.2배가 묘지를 쓰이고 있다. 산림 훼손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 부산 선영 대신 화장 택한 고 구본무 LG 회장

 

재벌가 장례문화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지난 5월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례도 화장으로 치러졌다. 고 구 회장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화담숲 인근에 수목장으로 안치됐다. LG가의 선영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위치해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당초 구 회장의 유해가 부산의 선영에 묻힐 것으로 판단했는데 의외”라며 “자연을 사랑했던 구 회장이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전례 없는 선택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지난 5월 별세한 구몬부 전 LG그룹 회장의 영결식 현장. 재벌가에서 이례적으로 LG가는 구 전 회장을 화장해 수목장으로 안치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김려중 풍수지리학자는 “재벌 등 사회지도층이 새로운 장례문화를 앞장서 받아들인다면 일반 서민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다”며 “최근 특히 수목장 문화가 급속히 발달하고 있는데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는 현상이 보인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책임을 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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