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음악과 디저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입가심하기에 적당하다는 것. ‘가토 드 뮤지끄(gâteau de musique)’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뮤지션과 디저트를 매칭해 소개한다.
서늘한 공기에 재채기 크게 몇 번 하고 등이 시려 으슬으슬 떨다보면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온다. 옷장엔 이보다 더 두터운 옷이 있고 통장엔 이보다 더 두터운 옷을 살 돈이 있는데 나는 왜 떨고 있나. 이런 급성 서러움이 찾아오면 빠른 위로가 필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빠른 위로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남은 기력을 그러모아 양과자점 문을 연다. 최고의 양과자점이란 자고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까눌레 두 알이 남아 있길 간절하게 바라본다.
왜 까눌레인가. 까눌레가 나무토막같이 짙은 갈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짙은 갈색은 가을을 대표하는 색이다. 빨간 단풍이 매달린 나뭇가지는 갈색이며 노란 은행잎이 매달린 나뭇가지 또한 갈색이다. 별다른 화려함 없이 말라서 떨어지는 이파리는 모두 갈색이며 그것이 매달린 나뭇가지 또한 갈색이다. 그래서 까눌레다.
그렇게 까눌레 두 알을 운 좋게 사서 귀가를 완료했다면 서둘러 물을 끓인다. 디퓨저에 찻잎을 솔솔 담아 머그컵에 던져둔다. 팔팔 끓는 물을 잠시 그대로 뒀다 한 김이 빠지면 머그컵에 붓는다. 사르르 번져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접시 위에 까눌레 두 알을 올린다.
인간에겐 코와 입뿐만 아니라 눈과 귀도 달려있기에 이 모든 부위를 토닥이면 더욱 효과적인 위로가 완성된다. 때문에 오늘의 위로엔 고화질 뮤직비디오를 곁들이기로 한다.
그러자 피로한 나의 마음이 예리하게 일어선다. 누구의 노래를 들을까. 나무토막을 떠올렸기에 나무토막으로 만든 기타를 연주하면 좋겠다. 너무 다정하면 안 되고 달달해도, 까불어도, 귀여워도, 요란해도 싫다. 강렬한 열풍기보다는 은은하게 따스한 구들장 같은 음악을 원한다.
그렇게 김사월을 찾아갔다.
얼마 전에 김사월은 새로운 앨범 ‘로맨스’를 냈다. 이 노래 ‘누군가에게’는 이 앨범의 타이틀곡 중 하나다. 로맨스가 뭔가. 사랑이야기 아닌가. 아니 지금 내가 외롭고 쓸쓸하고 춥고 서러워서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까눌레도 사고 홍차도 내리고 음악까지 찾아 틀었는데 사랑이야기가 웬 말인가.
하지만 노래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다. 역시 나무로 만든 베이스 현을 퉁기는 따스한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너는 누군가에게 너무 특별해’란 말이 들리지 않나. 너는 특별하다. 하나뿐인 사람. 소중하고 특별하니까 내일은 꼭 따뜻한 옷을 입어. 재채기하고 벌벌 떨지 마.
김사월은 이번 앨범을 평소와는 다르게 발랄한 느낌으로 작업을 했다. 우리는 그동안 발랄함을 내세운 수많은 노래와 퍼포먼스를 접했다. 김사월에게 발랄함이란 무엇일까. 이 정도가 발랄함이라면 발랄하지 않은 평소의 김사월의 노래는 어떨까.
바닐라와 럼의 향이 퐁퐁 올라오는 까눌레를 까득까득 맛있게 먹으며 홍차를 호로록 마시며 김사월의 노래를 몇 곡 듣는다. 향긋하고 풍성한 달달함이 뭉툭하고 따스한 홍차와 섞여 식도를 지나 위를 거쳐 정맥 동맥 미세혈관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가 몸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이 따스함. 편안하고 안락한 나만의 동굴.
마침 동굴에서 노래를 부르는, 발랄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김사월이 있다.
이렇게 오늘의 위로는 먹먹하게 마무리 짓는다. 까눌레를 다 먹고 난 다음에도 홍차 한 모금이 남아 있길 바란다. 이걸로 마무리를 하고 씻고 잔다. 내일은 오늘보다 따뜻하게 입어야지. 그리고 발랄하게 양말을 짝짝이로 신어야지.
필자 이덕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두 번의 창업, 자동차 영업을 거쳐 대본을 쓰며 공연을 만들다 지금은 케이크를 먹고 공연을 보고 춤을 추는 일관된 커리어를 유지하는 중. 뭐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10년째 답을 못하고 있다.
이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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