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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산티아고 8] 혼자 되기 위한 길, 혼자 되니 밀려오는 건…

싹트는 감정에 "내일부턴 따로 걷자"…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강박할 필요는 없었다

2018.10.07(Sun) 13:43:53

[비즈한국] 막상 혼자 걷게 되니 상실감 비슷한 감정이 밀려왔다.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외로웠다. 온전한 나만의 카미노는 눈부셨지만 그 누구에 의해서도 기록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인생 사진을 건졌는데, 며칠 전에 인스타그램을 탈퇴한 느낌이랄까. 

 

생각해보면 카미노에 온 뒤 혼자 걸은 기억이 없다. 출발할 땐 전날 만난 영하 형님과 함께 걸었고, 중간에 미국 청년 매튜와 일본인 아저씨 와타루를 만났다. 3일째 되던 날부터 백자매와 호기와 함께 걸었다. 물론 한두 시간 정도 혼자 걷긴 했지만 항상 일행이 있었다. 

 

카미노에서 혼자 걷는 것이란 무엇일까. 사진=박현광 기자

 

물론 카미노는 혼자 걸으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토크 뷔페’ 같은 곳이다. 함께 이 길 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화해보고 싶은 누구에게든 말을 걸 수 있었다. 대부분 아니, 모두가 시간은 많고 마음이 열린 상태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마음이 맞으면 대화를 하거나 함께 걸을 수 있었다. 뷔페에서 여러 음식을 접시에 담아 한 끼를 만들 듯, 카미노에선 여러 사람과 나눈 시간을 모아 하루를 채울 수 있었다.

 

어제였다. 훌훌 털고 혼자가 되고 싶었다. 호기와 백자매 동생 희민이는 로스 아르코스(Los Arcos)에서 묵기로 했다. 아예기(Ayegui)에서 휴식한 뒤 체력을 회복한 나는 토레스 델 리오(Toress Del Rio)까지 향했다. 백자매 언니 선주가 나와 함께했다. 

 

로스 아르코스에서 토레스 델 리오까진 숨 막히는 구간이었다. 8.5km를 걷는 동안 평지가 이어졌다. 식수대는커녕 햇빛을 가려줄 나무조차 없었다. 오후 1시의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거렸고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마른 흙이 흩날렸다. 더 미치겠는 건 토레스 델 리오가 신기루처럼 눈앞에 보이지만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거다. 

 

저 멀리 마을이 보이지만 도저히 가까워 지지 않는다. 사진=박현광 기자

 

평지지만 약간 내리막 경사져 있어 가속 붙은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고 휙 갈 수 있는 길이었다. 자전거 순례자들이 내 옆을 휙 지나갈 때면 부러움과 짜증이 솟구쳤다. 길이 생각보다 좁아 자전거가 지나갈 때마다 옆으로 비켜서야 했기 때문에 체력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짜증을 내면서도 ‘담엔 자전거 순례나 해볼까’라고 생각했다. 도보로는 한 달이 걸리지만 자전거는 10일 정도면 충분하다고.

 

“내일부턴 따로 걷자.” 겨우 발견한 나무 그늘 아래에 들어가 목을 축이며 선주에게 말했다. 왜냐는 물음에 “그냥”이라고 얼렁뚱땅하고 두루뭉술하게 답했지만 선주는 더는 내게 묻지 않았다. 서운한 눈치를 감추지 않았지만 알겠다고 했다. 고작 사흘 함께 걸었지만 서로를 잘 아는 오래된 연인 같았다. 

 

아침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대부분 순례자는 하루 평균 여섯 시간에서 많게는 여덟 시간을 걷는다. 사진=박현광 기자

 

아침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대부분 순례자는 하루 평균 6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을 걷는다. 6월의 스페인은 아주 뜨겁기 때문에 해가 등 뒤에서 정수리를 넘어올 때쯤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살이 익는다. 오죽하면 스페인 사람들도 씨에스타(낮잠 시간으로 보통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를 내걸고 가게 문을 닫는다.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 자리 잡으면 시간이 많다. 순례자들은 밀린 빨래를 하거나 바에 앉아 맥주 혹은 와인을 마신다. 해먹이 있으면 몸을 맡겨 책 읽는 척도 해보고, 주방이 딸린 숙소 주변에 구멍가게까지 있다면 저녁 재료를 사러 나가곤 한다. 물집을 발견하면 ‘응급수술’을 하고 바셀린이나 ‘타이거밤’으로 마사지해 어깨나 종아리에 뭉친 근육을 푼다. 세상 평화로운 시간이다.

 

걷고 난 뒤 휴식의 달콤함은 말로 다 못한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렇게 ‘카미노에서의 보통 날’은 크게 둘로 구분된다. 걸을 때의 힘겨움과 걷고 난 후의 보상. 이 속에서 희로애락을 모두 맛볼 수 있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카미노에서의 사흘을 함께 채우다 보니, 나와 선주 사이엔 ‘꽁냥꽁냥’한 기류가 싹 텄다. 그도 그럴 것이 대화할 시간이 많았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어릴 적에 엄마가 장난감을 한 번도 사주지 않아 한으로 남았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그런 엄마가 스무 살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쉽지 않은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꺼냈다. 말과 말 사이엔 밀밭을 보며 새삼 감탄하기도 하거나 편안한 침묵을 흘려보냈다. 우린 서로의 ‘최신판’을 가장 잘 아는 누군가가 됐다. 현재 각자가 가진 삶의 방향성 같은 것들 말이다.

 

물통에 든 물을 함께 마셨고 서로의 물집을 치료해줬다. 우린 그게 어떤 의미인지 굳이 말로 풀어내진 않았다. 젊은 남녀가 감정의 싹이 안 트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카미노에서 연애를 시작할 순 없었다. ‘고독한 순례자’까진 아니더라도, 스스로를 혼자 둘 필요가 있었다. 

 

카미노를 찾은 목적 중 하나도 매일 새로운 얼굴을 맞닥뜨리며 느끼는 온전한 고독을 감당하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아마 선주도 그런 생각으로 저울질 하고 있었을 거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비아나의 산타 마리아 성당 전경. 12세기 템플 기사단에 의해 만들어져, 19세기까지 비밀스러운 의식을 치르던 장소. 내부 보전이 잘 돼 있다. 순례자의 발길을 절로 이끄는 성당. 사진=박현광 기자

 

우린 토레스 델 리오에서 함께 묵었고, 다음 날 10.5km 떨어진 비아나(Viana)의 산타마리아 성당 앞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길은 하나였기에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없었다. 내가 먼저 길을 나섰다. 선주는 한참 뒤떨어진 희민이를 기다려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떠나기 전, 산타 마리아 성당에 들어가 한참을 둘러보며 기도를 올렸다. 종교는 없었지만, 아름다운 석상과 웅장한 내부에서 느껴지는 신성한 기운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절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내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로그로뇨(Logrono)를 지나 나바레테(Navarrete)까지 가기로 했다. 이미 걸은 10.5km까지 합쳐 총 33km 거리였다. 애매한 시간이었기에 길 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비아나에서 묵었던 순례자들은 앞서 있을 거고, 로스 아르코스에서 묵었던 순례자들은 뒤에 있을 거다. 말 그대로 혼자 걷게 됐다. 

 

지친 몸을 이끌고 성당에 들어서면 없던 신앙심도 생긴다. 순례길 위에선 종교와 관계 없이 누구나 성당에 들려 기도를 하곤 한다. 사진=박현광 기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모양이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어쩐지 쓸쓸했다.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저 평소보다 멀게 잡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속도를 올렸다. 걷기에 최대한 집중했다.

 

로그로뇨에 도착했을 때 꿈에서 깬 것 같았다. 로그로뇨는 인구 15만이 살고, 대학이 있을 만큼 꽤 큰 도시였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로그로뇨에서 묵지 않으면 구시가지로 갈 일이 없다. 신시가지로 들어서니 익숙한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보였다. 10분 전만 해도 분명 숲길이었는데, 문명이 펼쳐져 있었다.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도시의 사람들은 겉으론 여유로워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걸음은 급했다. 마치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 위해 물속에서 발버둥치는 백조처럼. 사진=박현광 기자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하이힐 신은 동료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틈바구니에 섞여 덩그러니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자니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한국 사람이니 이방인인 건 사실이었다. 다만 12kg이 훌쩍 넘는 가방, 흙 묻은 등산화, 땀 배출이 뛰어나다고 광고했지만 땀에 쩐 채로 몸에 달라붙은 기능성 타이즈를 입고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행색도 행색이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사람들의 걸음이었다. 사람들 움직임에서 카메라 렌즈 노출을 길게 늘어뜨렸을 땐 남는 잔상이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다들 걸음이 빨랐다. 물론 12kg 가방이 짓누르지 않으니까 그렇겠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선글라스를 쓴 채로 한 손엔 빵을 들고, 다른 손으론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걸음은 급했다. 겉으론 우아하지만 물속에선 발버둥을 치는 백조처럼.

 

10분 전 흙길을 걷다가 인구 15만의 도시인 로그로뇨에 도착했을 땐, 꿈에서 깨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사진=박현광 기자

 

순례자들 사이에서도 로그로뇨에 대한 호불호가 나뉜다. 어떤 순례자는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을 즐기기 위해 묵고 가기도 하고, 어떤 순례자는 묵고 가기로 했다가도 이질감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해 로그로뇨를 빠져나오기도 한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도시는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았다.

 

나바레테에 도착하기 전 200여m에 달하는 철조망에 달린 십자가들. 순례자들의 염원이 느껴진다. 사진=박현광 기자

 

나바레테에 도착했을 땐 오후 4시 18분이었다. 기진맥진해 일단 알베르게를 잡고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때 “어, 너!”라며 옆방에 있던 영하 형님이 여유로운 웃음을 띤 채 날 찾아왔다. 내가 아예기에서 쉴 때 형님은 꾸준히 걸은 모양이다. 반가운 한편으론 당시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 “뭔가 내가 미련하게 걷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창가 너머로 로그로뇨가 가까이 보였다.

 

[산티아고 Tip] 길 잃기 쉬운 대도시

 

로그로뇨는 카미노 위에서 처음 맞는 도시다운 도시다. 현대식 건물이 많기에 순례자의 길라잡이인 노란 화살표가 팻말이나 벽이 아닌 바닥에 표시돼 있다. 길을 잃기 쉽다는 이야기다. 대충 ‘여기가 맞겠지’ 하고 움직였다간 길을 크게 돌아가기 때문에 낭패다. 직접 경험해 본 일이니까 귀담아듣길.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순례자를 발견하면 멀리서도 큰소리로 알려줄 만큼 로그로뇨 사람들은 순례자에게 호의적이다. 안심하고 길을 물어물어 가면 된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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