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경제의 두 축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맡고 있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잇단 외풍을 맞고 있다.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과 고용부진 등을 둘러싸고 청와대 및 여당과 갈등 관계에 빠져 있고, 이 총재는 정부의 잇단 기준금리 관련 언급으로 생채기를 입었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경기 활성화의 기본인 민간기업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규제 완화 정책 추진은 지지자의 반대를 의식해 몸을 사리는 당‧정‧청이 경제 부진이나 부동산 가격 상승의 책임을 김 부총리와 이 총재, 두 사람에게 돌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형상으로는 한국 경제의 두 사령관이지만 문재인 정부 탄생에 공이 없는 인사들이다보니 심한 견제를 받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 부총리는 지난 2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최저임금을 지역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최저임금 인상 폭으로 일정한 범위를 주고 지방에 결정권을 주는 것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가 여당의 반대에 부딪혔다.
더불어민주당의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우리나라가 땅이 좁아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전임 원내대표인 우원식 의원도 “현재 최저임금 수준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6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차등 적용 검토는 적절치 않다”며 최저임금 정착이 우선임을 명확히 했다. 김 부총리는 홍 대표와 만나며 수습에 나섰지만 면담 이후에도 양측의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김 부총리의 경제 정책에 대한 여권의 비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 김 부총리는 고용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최저임금을 들며 속도조절을 이야기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고용 부진을 최저임금이 아닌 전 정부의 정책 여파로 돌리고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올린 8350원으로 결정했다.
김 부총리가 민간기업 투자 활성화 등을 위해 혁신 성장에 힘을 싣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소득주도 성장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 부총리가 지난 8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아 이재용 부회장을 면담하기로 한 것을 청와대가 만류하면서 논란이 빚어진 적도 있다.
김 부총리가 각종 정책 행보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견제에 시달리고 있는 것만큼이나 이 총재는 정부로부터 강한 외압에 시달리고 있다. 공급 없이 규제만 내세운 부동산 정책과 오락가락 부동산 세제 정책 등으로 가격 급등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는 정부와 여당이 기준금리를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원인으로 지목하고 이 총재에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13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자금 유출이나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에 따른 문제, 가계부채 부담 증가도 생길 수 있고 현재와 같은 문제가 계속될 것이라는 고민이 있다”며 한은에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2014년 금리인하 이후 시중에 600조 원의 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들어 갔다”며 “부동산 때문에 금리를 올리지도 못하고 내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부동산 가격 급등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법이 정한 한은의 독립성 훼손, 서울 집값만 잡기 위한 근시안적 금리 인상 요구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정부의 기준금리 인상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부 정책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는 것은 맞지 않다. 저금리 정책의 지속으로 인한 시중 유동성 과잉이 (집값 상승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며 “지난 정부부터 지속된 저금리가 정권이 바뀜에도 불과하고 전혀 변화가 안 일어나는 게 유동성 과잉의 원인”이라고 기준금리 인상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런 압박이 되레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놓치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은으로서는 기준금리를 올렸다가 정부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비판과 함께 독립성 훼손 논란이라는 부담을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계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행보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 속도와 한국 경제 부진 사이에서 인상 시기를 고민하는 이 총재의 어깨를 더 무겁게 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김 부총리나 이 총재를 자기 사람으로 여기고 있지 않다는 점을 계속해서 드러내는데 이는 경제적 실책”이라며 “기재부의 재정정책이나 한은의 금리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떨어지면서 각종 경제정책이 힘을 받지 못하고, 이는 결국 경기 부진 지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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