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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항공의 몰락,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박리다매로 성공했지만 인터넷 시대 뒤처져…"성공이 독" "부정행위 적발도"

2018.10.05(Fri) 19:12:20

[비즈한국] 지난 1일, 항공권 판매에서 ​오랫동안 ​부동의 1위였던 탑항공(대표이사 유봉국)이 공식 폐업했다. 탑항공의 폐업은 연이은 중소 패키지 여행사의 부도 이후 여행업계를 또 다시 탄식에 빠뜨렸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탑항공의 부도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1982년 설립되어 36년간 항공권 전문 판매업을 해온 탑항공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늘어난 항공권 수요 덕분에 승승장구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고 온라인 판매로 두각을 보이는 여행사들이 등장하며 탑항공의 항공권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그러다 지난 8월 24일 항공권 정산 시스템(BSP)이 부도나며 폐업 조짐을 보였다.

 

BSP 부도 이후 제3자 대행구입 형태인 ATR 발권 영업을 했지만 탑항공의 신뢰는 떨어졌고 발권물량도 급감했다. 그러다 13억 8000만 원의 대금을 막지 못해 10월 1일로 ​공식 폐업했다. 탑항공이 BSP 부도를 냈을 당시 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때 그 이름처럼 ‘탑’​이었던 탑항공의 매출은 한참 전에 이미 2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탑항공의 몰락,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오랫동안 항공권 판매 부동의 1위였던 탑항공이 ​10월 1일 ​공식 폐업했다. 서울 종로에 있는 탑항공 본사. 사진=티티엘뉴스 제공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의 해외여행 수요는 극적으로 증가했다. 탑항공의 전략은 간단했다. 박리다매. 탑항공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전직 임원 L 씨​는 “항공사에서 항공권을 단체 가격으로 받아 개인에게도 단체요금을 적용해 팔았다. 그때는 항공권 가격에 발권수수료 9%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가로 팔아도 많이만 팔면 남았다. 어느새 탑항공이 제일 싸다는 입소문이 퍼졌고 손님들이 알아서 찾아왔다”며 탑항공의 전성기를 회상했다. 

 

항공업계에는 볼륨인센티브(VI)라는 것이 있다. 여행사가 항공권을 많이 팔면,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항공사가 준다. 예를 들어 여행사가 도쿄행 항공권 100장을 팔면 항공권 마진과 상관없이 항공사로부터 100장에 대한 판매수수료를 더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탑항공은 판매 물량이 많아 VI도 많았던 만큼 항공권 마진이 적어도 수익이 상당했다고 한다.

 

종로의 작은 사무실 한 칸에서 10명이 채 안 되는 직원들로 시작한 탑항공은 20여 년간 직원이 700여 명까지 늘어날 정도로 성장했다. 항공권 발권업계에서는 한동안 경쟁상대가 없었다. 

 

​L 씨는 “2000년대 초반에 패키지 시장이 유행하고 돈이 눈앞에 보였지만 우리는 항공권 판매에만 주력했다. 그때는 항공권만 팔아도 충분했다. 뚝심이랄 수도 있고, 대표의 고집도 있었다. 항공 쪽에는 다들 전문가였지만 패키지 시장은 잘 몰랐다”고 말했다. 그가 일했던 25년 가까이 적자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항공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여행업계 관계자 K 씨는 탑항공의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됐다고 지적했다. ​K 씨는 ​“그게 결국 탑항공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지 못하고 뒤처지기 시작한 원인이 됐다. 성공신화가 너무 오래갔다. 탑항공은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오프라인 티켓 판매 회사다. 그래서 인터넷 기반의 판매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변화의 노력도 별로 없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소비자가 포털사이트에서 가격비교를 하기 시작하면서 탑항공도 설 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탑항공에서 근무했던 N 씨는 몇 년 전부터 탑항공 내부에서 변화의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여러 문제로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인터파크투어 등 온라인 판매로 두각을 보이는 여행사들이 등장하면서 탑항공의 항공권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사진=김상연 기자


여행사 대표 M 씨는 탑항공 몰락의 또 다른 이유로 발권수수료를 꼽았다. 그는 “2010년경 항공사에서 9%의 항공발권수수료를 없앤 것이 (탑항공 폐업에) 결정적이었다. ​패키지 여행사는 항공권 가격을 패키지 요금에 녹여 마진을 붙일 수 있었지만, 항공여행사는 소비자도 빤히 볼 수 있는 항공요금에 마진을 붙이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앞서의 K 씨는​ 탑항공의 부정행위가 브랜드 신뢰도를 떨어뜨리며 폐업의 실마리를 제공했다고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탑항공은 2000년대 중반에 학생 할인이나 장애인 할인 요금으로 구매한 항공권을 일반인에게 팔아 또 다른 마진을 남겼다. 판매 물량이 수천억 원에 이르렀던 터라 이로 인한 마진만 수억 원에 달했다는 게 K 씨​의 증언이다. 이 부정행위가 한 항공사에 적발되면서 탑항공은 이 항공사 발권자격을 잃었다. 이 일로 탑항공은 주요 수익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업계에서 신뢰 역시 땅에 떨어졌다.

 

다만 ​K 씨는 “그때는 탑항공뿐 아니라 어느 여행사나 그런 부정행위가 ​왕왕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을 경쟁업체에서 항공사에 알리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 같다”고 전했다.

 

여러 여행업계 실무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탑항공이 폐업한 결정적인 원인은 온라인 판매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단순 항공권만 팔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M 대표는 “항공권 발권수수료도 없는데 가격이 빤히 보이는 항공권만 팔아서 어떻게 수익이 나겠나. 익스피디아 같은 글로벌 OTA(Online Travel Agency)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마진 없이 파는 인터파크투어 등의 국내 온라인 여행사들의 판매를 따라갈 수 없다. 수익모델이 다양하지 않아서 다른 수를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했다. 

 

인터파크투어는 노마진 항공권으로 고객을 유입시켜 싸다는 이미지와 입소문을 만들고, 거기에서 파생한 다른 상품 판매를 노린다. 그에 비해 발권 마진 외에 수익모델이 특별히 없는 탑항공으로선 발권수수료가 없어진 시대에 살아남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여행업계 일각에서는 “탑항공은 이미 벌 만큼 벌었다. 급변하는 여행시장에서 오프라인 중심으로 항공발권만 하는 탑항공의 모델로는 더 이상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해 굳이 애쓰지 않고 폐업을 결정했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탑항공이 지금 부도나지 않았더라도 현 사업모델로는 오래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 여행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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