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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매끼 배고픈 동안 늘 죽고 싶은 병, 거식증

"당연한 것들을 못하는 우울한 병…단순히 밥을 못 먹는 게 아니라고"

2018.10.01(Mon) 17:29:55

[비즈한국] “아, 그 걸그룹 있지? 네가 좋다고 했던 애들. 걔네, 몇 명이더라.”

“응. 여덟 명이었어. 지금은 일곱 명이고.”

 

“한 명은 중간에 어디 갔어?”

“빠졌어. 조금 쉰다고 하다가, 지금은 아예 탈퇴했어.”

 

“왜?”

“거식증이래.”

 

“거식증은 단순히 밥을 못 집어삼키는 병이 아니라고. 그 사람은 너 매끼 배고픈 동안, 늘 죽고 싶어 하고 있었던 거라고.” 사진=연합뉴스


“거식증? 그거 밥 못 먹는 병이잖아.”

“응. 음식을 먹기 힘들어하는 병이지.”

 

“음식을 먹기 힘든데 왜 활동을 못 해? 밥을 안 먹을 뿐이지 연예계 활동이랑은 상관없잖아. 가뜩이나 걔네들은 원래 다이어트 하느라 밥을 잘 못 먹는 거 아냐?”

“…. 저….”

 

“응?”

“너는 밥이 도저히 먹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별로 없지?”

 

“글쎄. 보통 굶으면 배고팠지. 속이 안 좋은 날 아니면.”

“이런 거 있어. 먹고 싶은 건 아닌데 더 이상 굶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1인분을 차려놓고 억지로 한 입을 먹었는데, 맛은 안 느껴지고 남은 음식은 어디 바다에서 국자로 떠온 것처럼 보이는 거. 늘 아쉬운 양이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결국 남은 음식을 개수대에 쏟아붓고야 마는 거, 그리고 이게 언제 회복될지 모르겠다는 절망감을 느끼는 거.”

 

“잘 모르겠어.”

“그래서 안 겪어본 사람은 이해를 못 해. 인간이 먹겠다는 욕구가 그렇게 강력한데, 몇 끼니만 굶어도 눈알이 핑글핑글 도는 게 인간인데, 그 음식이 먹기 싫어지는 병이라고.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음식을 거부하는 거란 말이야. 이 사람 행복할까? 하다못해 정상일까? 하루 종일 음식이 역겨워서 입에 못 대는데, 밤마다 잠은 푹 자고 늘 쾌활하고 활기차고 남들 앞에서 잘 웃고 떠드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봐. 벌써 이상하잖아. 로봇이나 기계 같잖아.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어도 오래 버티기 힘들어. 그래서 이런 당연한 것들을 못하는 병들, 밥 못 먹고, 못 자고, 떨려서 집 밖에 못 나가고, 이 사람들 무조건 우울해. 처음부터 우울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병이 오지도 않아. 그건 단순히 밥을 못 집어삼키는 병이 아니라고. 그 사람은 너 매끼 배고픈 동안, 늘 죽고 싶어하고 있었던 거라고. 그 친구가 거식증으로 그만둔다고 들었을 때, 나는 다른 소식 없이 조용히 그만두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몰라.”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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