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작가들은 빈 캔버스로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설렌다고도 한다.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작품 제작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한국미술응원 프로젝트’ 시즌4를 시작하는 마음도 같다. 초심으로 새롭게 정진하려고 한다. 미술 응원의 진정한 바탕을 다진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고 외롭게 작업하는 작가를 찾아내 조명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미술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경향을 더욱 객관적 시각으로 조망해 한국미술의 미래를 보여주려는 노력도 병행할 것이다.
예술의 매력 중 하나는 모순을 통해 하모니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미술의 언어는 형태와 색채다. 이 둘은 모순 관계에 있다. 형태는 이성적인 면을 그리고, 색채는 감성적인 면을 대변하는 요소다. 미술의 역사는 형태와 색채가 줄다리기하듯 자웅을 겨룬 흔적이다. 결국 감성과 이성의 싸움이 다양한 미술을 창출한 에너지가 됐던 셈이다. 모순되는 두 가지 요소에서 접점을 찾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다.
회화를 인간 몸에 빗대어 보면 형태는 뼈대, 색채는 혈액이다. 뼈대는 인간 몸을 단단하게 잡아주고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결정하기에 잘 보인다. 이에 비해 혈액은 액체 상태로 스스로는 일정한 형태를 갖지 못한다. 그 대신 뼈대가 만들어지는 데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뼈대가 만들어낸 인간의 몸이라는 일정한 그릇에 담긴다.
이쯤 되면 뼈대는 회화에서 형식을, 거기에 담기는 혈액은 내용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래서 회화에 담기는 인간 정신의 구조를 단단하게 잡아주고 명쾌하게 해석해내는 것이 형태로 나타난다면, 그 틀을 깨고 자유로운 세계로 날아가게 하는 것은 색채로 표현할 수 있다.
결국 형식은 이성적인 면, 내용은 감성적인 면과 가까운 미술 언어다. 미술에서 이 모순된 두 영역이 첨예한 각을 세웠던 시기는 18세기와 20세기 초반이었다. 즉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입체파와 야수파가 그랬고 추상미술 내에서도 대립했다.
한경자의 회화는 미술의 이런 모순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우선 그의 그림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요소는 기하학적 추상을 연상시키는 단단한 형태들이다. 형태 틀 속에는 부드러운 색채가 스며 있다. 색채는 단색인 경우도 있고 면에 따라 서너 가지의 색채가 들어 있기도 하다. 색채는 파스텔톤이다. 그래서 아련한 정서를 자아내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이에 비해 견고한 선은 매우 엄격하고 튼실한 화면을 연출한다. 그런데 이처럼 상반된 요소가 한 화면 안에서 잘 어우러진다. 마치 건강한 정신을 담은 건장한 육체의 사람을 보는 것 같다. 모순된 요소를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공간의 문제다. 한경자가 추구하는 회화의 목표다. 그는 회화가 근본적으로 가진 모순의 문제에 흥미롭게 접근한다. 회화는 평면인데, 회화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것은 공간이었다. 평면에다 공간을 집어넣는 일을 회화는 꾸준히 시도했다.
그의 그림은 배경에는 기하학적 구조로 공간을 표현하고, 그 위에다 평면화된 도상을 결합해 절묘한 반전을 보여준다. 그래서 공간과 평면의 느낌이 함께 나타난다. 이런 모순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공간인지, 평면인지를.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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