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SK텔레콤이 28일 eSIM(이심)의 수수료 가격을 발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같은 가격으로 LG유플러스도 동일한 발표를 했습니다. 수수료는 통신사의 가입 정보를 eSIM 카드에 내려 받아 등록하는 것에 비용을 무는 것이고, 요금은 부가세를 포함해 2750원입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가입 정보 다운로드 수수료’인 셈입니다.
이 수수료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실제로 SIM 카드는 없지만 그 기능은 똑같은데 정보를 내려 받는 데에 비용을 물어야 하는 묘한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2750원이 큰돈이 아닐 수는 있지만 이 비용 자체가 여러 가지로 족쇄가 될 수 있기에 무심코 넘길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왜 이런 요금이 매겨지게 됐는지 돌아볼까요? 요즘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에는 모두 SIM, 혹은 ‘심 카드’라고 부르는 작은 칩이 들어갑니다. USIM(유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SIM은 ‘Subscriber Identity Module’를 줄인 말로, 풀이해 보면 ‘가입자 식별 부품’ 정도가 되겠네요.
스마트폰 같은 통신 기기가 기지국에 접속할 때 누구의 기기인지 알려주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쓰고 있는 요금제 정보를 비롯해 전화번호부, 통화기록 그리고 결제를 위한 신용카드 정보 등을 담을 수도 있습니다. 기기적으로는 아주 작은 용량의 컴퓨터로 보안과 작은 서비스를 돌릴 수 있는 장치입니다.
이 SIM이 보급되면서 이용자들은 꽤나 편리해졌습니다. 새 스마트폰을 구입했을 때 통신사에 찾아갈 필요가 없이 이 SIM 카드만 뽑아서 새 단말기에 넣으면 대부분 기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기변경이 간단해지는 것이지요.
해외에서도 로밍 대신 공항에 내리자마자 SIM 카드를 하나 구입해서 쓰면 아주 저렴하게 현지에서 빠른 통신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요즘 해외여행의 중요한 기술 중 하나가 됐지요.
그런데 해외에서 이 USIM을 구입해 본 이들은 국내에 돌아와서 다소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분명 국내에서 스마트폰에 가입할 때는 5500원에서 8800원까지 돈을 내고 샀는데, 해외에서는 대부분 공짜로 나눠주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USIM 카드는 이용자가 편의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통신사가 이용자를 구분하고, 작은 기능과 서비스를 넣기 위해 배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신사와 통신 서비스를 두고 계약하는 주체는 아이폰이나 갤럭시가 아니라 바로 이 SIM 카드라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이 SIM 카드는 아주 저렴합니다. 서비스가 붙는 물건의 부가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원가를 따지는 것은 썩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 SIM 카드는 1000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몇백 원이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국내 통신 3사가 SIM 카드를 팔아서 5년 동안 7000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는 조사도 나왔습니다. 엄청난 규모지요. SIM 카드 판매는 통신사들의 말 못할 수입원이었습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변수가 생겼습니다. 바로 eSIM입니다. ‘e’는 내장형(embedded)의 줄임말입니다. 기기에 내장되는 SIM이라는 뜻입니다. SIM 카드는 점점 작아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큰 편입니다. 그래서 크기가 작은 사물인터넷 기기나 웨어러블 기기에서는 그 크기마저 줄이고 차라리 배터리를 늘리는 게 유리합니다.
애플워치나 기어 같은 기기에서 이미 eSIM을 쓰고 있었지요. 또한 해외를 오가거나 중국처럼 여러 통신사를 함께 쓰는 국가들의 경우 SIM 카드를 두 개 꽂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대체하기 위해 eSIM이 고려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대체로 이 eSIM을 싫어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구글이 ‘픽셀2’를 내놓으면서 구글의 이동통신 서비스인 ‘파이’를 eSIM으로 가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원래 쓰던 물리 SIM 카드 외에 가상의 SIM이 하나 더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올해 애플이 아예 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새 아이폰에 듀얼 SIM을 기본으로 넣고, 그 중 한 개는 eSIM으로 만들었습니다. 통신사가 허용하면 이제 SIM 카드를 안 꽂아도 스마트폰을 개통해서 쓸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미국을 비롯해 적지 않은 통신사들은 이를 반깁니다. SIM카드를 나눠주는 것도 비용일 뿐 아니라, 통신사 대리점이 많지 않은 곳에서는 이를 배송해줘야 하기 때문에 그 물류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eSIM을 이용하면 그 비용이 줄어들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SIM 카드 판매 수익이 줄어들게 됩니다. 3사가 5년에 7000억 원이라고 하니 대충 계산해도 1년에 약 1400억 원의 순수익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돈은 아닙니다. 원가나 노력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장사이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보면 애플이 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폰에 eSIM을 넣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아닌 기대가 퍼지기도 했습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eSIM 다운로드 가격 발표는 줄어드는 SIM 카드 관련 수익에 대한 방어막처럼 해석되기에 충분합니다. 물론 SK텔레콤도, 애플도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아이폰에 eSIM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삼성전자의 기어와 애플의 애플워치만 해당되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가지 단서가 붙습니다. 다운로드 비용이기 때문에 신규가입이나 번호이동 외에도 기기변경, 명의변경 등 뭔가 eSIM의 정보가 바뀔 때마다 2750원을 내야 합니다. 오히려 물리 SIM 카드는 한 번 팔고 나면 추가로 돈을 받을 수 없었는데 eSIM은 기기를 바꿀 때마다 수수료를 거둬갈 수 있습니다. 2번만 다운로드하면 지금 SIM 카드를 파는 것과 비슷한 돈을 내야 합니다.
게다가 eSIM 자체는 물리적인 형체가 없고, 가입 정보를 담는 데에도 사람이 할 일은 없습니다. 원격으로 가입자의 개인정보와 필요한 요금제, 그리고 결제 방법만 입력하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동통신사가 해야 할 일을 가입자가 스스로 하는 셈입니다. SIM 카드 정보 업데이트는 기존 물리 SIM에서는 무료였는데 eSIM에서만 유료라는 것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단말기자급제와 약정할인 등 통신시장은 점점 단말기와 통신사 사이에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통신사와 이용자 사이 계약의 물증은 USIM으로 좁혀지는 추세입니다. 대신 기기를 쓰는 것은 이용자의 자유이자 고유 권한으로 분리되고 있습니다.
eSIM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SIM에 돈을 받는 것은 비단 SK텔레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통신 선진국으로 꼽히는 우리나라 시장에서 SIM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후진적이라는 증거가 아닌가 싶어 씁쓸합니다.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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