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춘천 가는 길은 여러모로 퍽 가까워졌어도 춘천 가는 마음만은 옛적 그대로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5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을 흥얼거리며 춘천 기차여행에 대한 로망 한두 소절쯤은 간직하고 있을 테니. 그래, 춘천 하면 역시 기차다.
춘천 가는 기차는 왠지 단순히 목적지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기차 자체가 저 스스로 여행의 낭만을 한껏 품고 있기도 하지만, 춘천행 기차는 더 남다르게 느껴진다. 기차는 더 이상 칙칙폭폭 소리를 내지 않고, 간식 카트가 지나가지도 않고, 창문도 열리지 않는다. 깨끗하게 단장되어 정확하고 빠르게 우리를 춘천에 데려다 놓는다. 그렇더라도 춘천행 기차가 가진 그 아날로그적 감성만은 어쩐지 사라지지 않았다.
# 어떻게 가지? 어디서 자지?
춘천 가는 기차는 대체로 20~30분에 한 대씩 있다. 시간에 따라 용산과 청량리에서 번갈아 출발하고 간혹 상봉에서 출발하는 기차도 섞여 있다. 용산에서 출발하면 춘천까지 1시간 15분쯤 걸리고, 청량리나 상봉에서 출발하면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금요일 밤 막차는 23시 05분에 청량리에서 출발해 0시 2분에 춘천에 도착한다. 요금은 청량리 출발은 편도 7300원, 용산 출발은 8300원이다. 가격도 착하다.
금요일 점심시간에 코레일 승차권 예약 앱 ‘코레일톡’을 검색해 보면 당일에도 6~7시 퇴근시간대를 제외하면 8시대 차표부터는 예매가 가능하다. 오후가 되면 퇴근시간대 표도 곧잘 취소분이 나온다. 일찍 퇴근하면 저녁을 먹고 8시 즈음 출발하거나 야근 후 조금 느지막이 퇴근하더라도 1시간 내외의 춘천행에 별 문제는 없다. 이것저것 다 귀찮다면 그냥 지하철에 몸을 실어도 좋다. 지하철 경춘선이 청평과 가평, 강촌을 거쳐 춘천까지 이른다. 그러니 ‘어떻게 가지?’보다는 ‘갈까 말까’만 결정하면 된다.
그다음 바로 따라오는 걱정, ‘밤 9시 넘어, 혹은 밤 12시 가까이 도착하면 잠은 어디서 자지?’ 혼자 여행이 처음이라도 그리 걱정할 건 없다. 여러 호텔가격비교 앱을 둘러보면 게스트하우스부터 부티크 호텔까지 취향 따라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을 고를 수 있다.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거나 집처럼 아늑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게스트하우스의 싱글룸도 나쁘지 않지만, 혼자만의 고요한 밤을 즐기고 싶다면 가격이 합리적인 소규모 호텔도 좋다. 요즘은 모텔을 리모델링해 군더더기 없는 일본 스타일이나 심플한 북유럽 스타일로 꾸며놓은 소규모 부티크 호텔도 인기다. 주말과 평일 저녁에 압화드로잉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호텔에서 주변 맛집과 볼 곳 등을 자세하게 안내한 책자를 제공하기도 한다.
밤 9시가 넘어가면 당일 숙박 가격이 자동으로 다운되는 앱도 있으니 늦은 예약이 꼭 불리한 건 아니다. 그렇게 춘천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잠깐 동안 앱을 훑어보며 숙소를 찜하고 나면, 즉흥적으로 떠나온 여행도 그리 막막하지만은 않다.
# 오늘 뭐 먹지? 뭐 하고 놀지?
춘천, 봄의 강 정도로 해석해도 좋을까. 봄의 운치는 선선한 가을에도 이어진다. 물의 도시 춘천에는 소양강이 있고 의암호도 있다. 소양강처녀로 이름난 소양강도 좋지만, 언젠가부터 춘천에선 의암호 물레길이 대세다. 제주에 올레길이 있고 지리산에 둘레길이 있다면 춘천에는 물레길이 있다.
춘천 물레길에서는 카누를 타야 제맛이다. 카누? 카약? 조금 다르다. 카누는 북미 인디언들이 강이나 바다에서 교통수단으로 사용했던 배다. 카약은 덮개가 있고 양쪽에 날이 달린 노를 사용하고, 카누는 덮개가 따로 없고 한쪽에만 날이 달린 노를 사용한다. 원래 카누는 주로 자작나무로 만든다는데, 춘천 물레길 카누는 가볍고 이동하기 좋은 적삼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렇더라도 육중한 나무 선체와 무거운 나무 노가 한 세트인 카누는 태생부터 이미 느림을 포함하고 있다.
물레길 코스는 다양하다. 중도를 중심으로 의암호 이곳저곳을 휘돈다. 의암호 언저리에 위치한 업체들마다 코스는 조금씩 다르지만, 의암호의 여유를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물길에 따라 붕어섬길, 스카이워크길, 중도길 등이 있지만 물길의 특성상 그저 의암호를 둥둥 떠다니는 맛은 어느 길이나 매한가지. 누구도 어디가 옳은 길이라고 말할 수 없다.
“네가 가고 싶다면 그것이 옳은 길이다.” 피천득 선생의 말이 슬며시 떠오른다. 옳은 길, 옳지 않은 길이 아닌, 기어이 내가 가고 싶은 물길을 따라 간다. 미끄러지듯 천천히 수면을 가르는 카누 위에서 슬며시 강물에 손을 넣고 물살을 가르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결이 부드럽게 생을 위로하는 느낌마저 든다.
일단 카누를 타면 저도 모르게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렇다고 어딘가를 목표로 둘 필요는 없다. 안전요원은 “저어~기까지 갔다가 돌아나오면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라고 안내하지만 조금 노를 젓는 척하다가 물 한가운데 덩그러니 멈춰 서 있다고 해도 주변 산세와 물내음을 즐기는 데는 아무 걸림이 없다.
취향에 따라서는 액티비티보다 차라리 신선놀음에 가까운 자연 속 명상 같다. 유럽의 어느 호수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풍경이다. 누구나 환호하는 맑은 날도 좋지만 비온 후나 흐린 날의 물안개는 그만의 적적하고도 황홀한 맛이 있다. 2인 기준으로 1시간에 2만~3만 원인데 소셜커머스를 활용하면 할인폭도 꽤 크다. 혼자라도 2인 값을 내고 배 한 척을 빌릴 수 있고, 서너 살 꼬맹이가 있는 3~4인 가족도 아이들을 가운데 앉히고 한 배를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 경춘선을 탔다면 가평과 강촌 중간에 있는 굴봉산역에 내려 제이드가든이라는 수목원에 들를 수도 있다. 유럽식 정원을 표방하는 이 가든에서는 오히려 혼자인 것이 더 자연스럽다. 영국식가든, 이탈리안가든, 코티지가든, 야생화가든을 비롯해 전망쉼터와 이끼폭포, 숲속 오솔길, 스카이가든 등 29개의 다양한 정원을 만날 수 있다. 1~2시간 짧게 머물 수도, 3~4시간 여유 있게 머물기도 좋은 한적하고 아늑한 곳이다.
10월 말까지는 10시까지 야간개장도 한다. 굴봉산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인데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하므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에도 별 불편이 없다. 오전 10시 45분부터 매 시간 45분에 굴봉산역에서 가든으로 출발한다. 가든에서 굴봉산역으로 나오는 마지막 셔틀은 저녁 9시 40분에 있다.
춘천에서 뭘 먹을까? 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춘천에만 500여 개의 닭갈비 집과 150여 개의 막국수 집이 있다. 좀 특별한 닭갈비를 먹고 싶다면 숯불 닭갈비를 검색하면 된다. 숯불 닭갈비는 빨간 양념을 한 닭갈비를 철판에 볶아 먹는 식이 아니라 닭고기를 일반 갈비처럼 펼쳐 간장 양념을 한 후 숯불에 구워 먹는 춘천 전통식이다. 막국수 역시 차가운 면은 물론 따뜻한 온면도 있으니 쌀쌀한 날에 제격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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