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추석 연휴에 가족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차 한잔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는 항상 1990년 전후로 맞춰진다. 당시 건설업을 하던 선친(先親)께서 사업에 실패해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학생이던 필자는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보습학원에서 중학생들에게 수학 강의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갔고, 동생들 또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론 해외 대학으로 유학 가겠다는 꿈을 접고 증권사의 이코노미스트 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경험 덕분에 우리 집안은 ‘창업’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아예 창업에 관심을 끊고 살았는데, 추석 연휴에 읽은 흥미 만점의 책 ‘검사외전’ 덕분에 얼마나 많은 한국의 중년 남성이 ‘창업의 꿈’에 부풀어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인 김웅 검사는 현직 부장검사다.
창업의 꿈을 꾸는 친구와 나눈 대화를 위주로 소개할까 한다.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우리 또래 중년남자들이 친구들을 만나면 입에 달고 사는 소리다. (중략) 목 좋은 곳의 카페와 함께하는 여유로운 노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서울의 건물 같은 것이다. 지천으로 깔렸는데 우리 몫은 없다. (중략) 내 친구 같은 호구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기에,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흥하는 것이다.
옛말에 거지도 묵은 거지보다 햇거지가 어렵다고 하니, 그냥 하던 일이나 하라고 했다. 친구는 발끈하며 자기도 그 정도는 안다고 했다. 여기저기 주변에 물어보고 인터넷 검색도 꽤 했다는 것이다. (중략) 짐짓 모르는 척하며 성업 중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요즘 그런 것을 전문적으로 분석해주고 매출도 보증해주는 중개업체(=창업 브로커)가 있다고 말한다. -책 87~88쪽
그러나 김웅 검사는 얼마 전 창업 브로커로 포장한 사기꾼 일당, 아니 정확하게는 사기 사건의 피해자였다가 사기꾼과 동업한 사람들을 검거한 적이 있었다.
매물로 나온 커피숍이나 프랜차이즈 매장은 대개 ‘폭탄 돌리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창업 브로커들이 개입되어 있다. 브로커들이 1~2년 전에 고수익이 나는 곳이라고 속여 팔아 치운 매장들이 다시 매물로 나오는 것이다. 월 5000만 원 이상의 매출이 나온다는 말에 속아 매장을 산 점주는 3개월쯤이면 그 수치가 허위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중략)
분노한 점주는 브로커에게 항의를 한다. 그러면 브로커는 점주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다른 호구에게 팔아 치우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점포 사기가 시작된다. 대부분이 매출액을 조작하는 수법을 사용하는데 미리 1~2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한다. -책 88~89쪽
‘원금을 일부라도 회복하겠다’는 생각이 사기 사건의 동업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동업은 새로운 창업자의 피해로 이어진다.
허위 매출을 만드는 피의자들의 변명은 대개 비슷하다. 매출을 조작해봐야 전체 매출의 10~2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고소 사건에서 이 변명이 받아들여져 무혐의 처분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현재 프랜차이즈 매장의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랜차이즈 점포들은 매출에서 임대료, 인건비, 로열티, 비용 등을 제외하면 영업이익이 0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이익을 내려면 인건비를 줄이거나 탈세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하루 10만 원씩 허위 매출을 만들면 매달 20만~300만 원의 허위 수익이 발생하고 그 점포는 손익 분기점을 넘어서게 된다. -책 90~91쪽
점포주와 사기꾼이 합심해서 매출을 조작하는 데에야 ‘초심자’가 당할 방법이 없다. 특히 책에 구구절절 매출 조작의 기술들이 나오는데, 그 디테일에 소름 끼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신감에 차 있던 친구의 얼굴은 내 이야기가 끝나자 무척 어두워졌다. 나는 친구에게 그 가당찮은 계획을 집어치우라고 했다.
“매달 300만 원씩 꾸준히 이익이 나는 가게는 절대 매물로 나오지 않아. 그런 거라면 집에서 놀고 있는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창업 브로커들이 너에게 친절한 이유는 딱 하나야. 네가 호구이기 때문이지. 네가 건네주는 권리금의 일부는 창업 브로커의 몫이야.”
제대로 충고하려면 애정을 빼고, 주저하지 말고, 심장을 향해 칼을 뻗듯 명확하고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 듣는 사람의 기분까지 감안해서 애매하게 할 거라면 아예 안 하는 게 낫다. -책 96쪽
요즘 유행하는 말로 “뼈를 때리는”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김웅 검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대목을 정리한다.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 당하는 지름길이다. (중략) 뭐든 새로운 일을 하려면 그곳에서 직접 6개월 이상 일해보고 나서 결정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냥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은 모조리 거짓말이다. 좋은 것을 굳이 광고까지 해서 당신에게 일러주는 선의란 없으며, 만약 그런 게 있다 해도 절대 당신까지 순번이 돌아오지 않는다.” -책 97쪽
필자를 포함해, 퇴직 후 창업을 꿈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웅 검사가 이야기하듯, 제대로 된 충고를 듣기는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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