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0일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핵심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가 보유 가능한 인터넷전문은행의 지분을 기존 10%에서 34%로 늘리는 것이다. 그간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 제한) 원칙에 따라 최대주주가 되지 못했던 카카오와 KT는 향후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최대주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모든 산업자본이 인터넷전문은행 최대주주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시행령을 통해 자산 10조 원 이상의 기업은 인터넷전문은행 보유 지분 확대를 제한하기로 했다. ICT(정보통신) 관련 자산 비중이 50% 이상인 기업은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 은산분리 공방부터 입법까지
20일 국회 본회의에 참여한 국회의원 191명 중 145명의 의원이 찬성, 26명이 반대, 20명이 기권했다. 야당뿐 아니라 다수의 여당 의원들도 찬성표를 던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은산분리 완화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6월 청와대는 “1단계로 현행 은산분리 제도 하에서 1~2개를 시범인가하고 2단계로 은행법을 개정해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된 후 추가 인가하겠다”고 발표하자 그해 8월 이종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금융위기 이후에도 금융규제를 계속 풀어주려고 혈안이 돼있다”며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해 은산분리가 완화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금산분리를 고수하는 입장이었다. 은산분리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고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자체를 분리시키는 개념으로 금산분리는 은산분리보다 상위개념으로 볼 수 있다. 상당수 대기업들이 증권사를 보유하고 있기에 사실상 금산분리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음에도 문 대통령은 ‘은산분리'가 아닌 ‘금산분리’를 언급하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집을 살펴보면 “산업자본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규제 강화 등 금산분리 원칙 준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해 7월 청와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 및 부당내부거래 근절과 금융계열사를 통한 지배력 강화 방지 등 금산분리 원칙 준수”라는 내용이 있다.
최근 들어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은산분리 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8월 7일 문재인 대통령과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은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행사에 참석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혁신이야말로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도 “인터넷전문은행 및 핀테크, 빅데이터 발전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금융혁신 관련 법안들의 조속한 입법 논의에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8월 말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인심사제1소위원회에서는 야당의 반발이 이어졌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3년 동안 그렇게 (은산분리 완화에) 반대하던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갑자기 상전벽해 했듯이 이게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에 대해 좀 설명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은산분리 완화, 특히 ICT 기업 육성에 관해서는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은행의 사금고화 방지나 대주주의 경영위기가 금융위기로 확산될 우려가 있어 안 된다고 강력하게 말했었다”며 “이렇게 된 경위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상황이 있어야지 싶다”고 말했다.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 대통령 공약이 은산분리를 명료하게 표현한 적은 없다”며 “당선 후 입장이 바뀐 게 아니라 그 전에도 인터넷전문은행은 활성화를 해야 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입법 과정에서도 여야 공방이 이어졌다. 당초 여당이 제시한 법률안은 개인 총수가 있는 자산 10조 원 이상 기업집단은 은산분리 완화 대상에서 제외하되 ICT 비중이 50%를 넘는 기업집단은 예외로 하는 것이었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법인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자산 10조 원 이상 기업들은 대부분 다 총수가 있고 이미 인가를 받은 KT 정도가 남는데 특정 한 개 기업을 위해서 우리가 고생을 하고 있나”라며 “카카오가 곧 10조 원 이상 기업이 될 수 있기에 한 번에 터주기 위해 ICT 매출 비중이 50% 이상이면 또 빼주자. 많은 기업들이 있는데 딱 2개 회사에 대해서만 이렇게 하는 것에(특혜를 주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완화 대상은 법률이 아닌 시행령을 통해 정하기로 했다. 시행령은 일반 법률과 달리 국무회의 의결만 거치면 수정이 가능해 논란의 불씨가 남아있는 셈이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진태 의원 말대로 특정 기업을 상대로 법안 만드는 게 사실 우습다”고 인정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법에 명시적인 진입 제한이 없는 상태에서 시행령으로 적격을 제한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과도한 재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여전히 적지 않은 반대의 목소리
은산분리 완화 관련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자 금융관련 진보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여당 일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입법취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법률에는 막연한 문구만을 규정하고 중요한 내용은 시행령에 위임하는 형태로 특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며 “정권이 바뀔 경우 재벌에게 인터넷전문은행의 문호를 개방할 수도 있게 된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2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8개 단체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의 입법 과정에는 어떠한 명분도, 민주주의적 절차도, 법적 타당성도 없다”며 “문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전했다. 심지어 녹색당은 “백두산 관광을 꿈꿀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망령이 부활했다”며 “전 국민의 시선이 백두산 천지에 가있는 동안 국회는 일사천리로 본회의를 진행했다”고도 했다.
진보단체들은 정부의 소통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은산분리 관련 토론회를 개최할 때 금융위원회 등 정부 인사에게도 참석을 요청했지만 참여하지 않았다”며 “토론도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는 게 그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인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8월 열린 정무위원회 회의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은산분리 완화와 관련해) 설명하려는 노력을 언제 했느냐”며 “이견에 있어서 어떤 간극을 줄이려고 소통을 하는 행보는 전혀 생각을 안 하시냐”라고 말했다.
최근 국회가 은산분리 완화 반대를 호소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3개월 출입제한을 통보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참여연대 측은 “국회 사무처 직원들은 국회 사무처에서 출입 통제 지침을 내렸다고만 답할 뿐”이라며 “국회는 이번 처사에 대해 분명한 해명과 재발방지 조치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은산분리 완화 및 규제프리존법 등과 관련해 노동계 및 시민단체의 우려와 반발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우리가 좀 더 많은 소통을 통해 현명하게 대처해 나간다면 결국 성공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운명
은산분리 규제 완화 후 KT와 카카오가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최대주주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문제는 이들이 대주주 적격성 심사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례법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금융관련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 △조세범 처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에 해당하는 형사 처분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인터넷전문은행 주식 10% 이상을 보유할 수 있다. 다만 ‘해당 위반 등의 정도가 경미하다고 금융위가 인정하는 경우’는 예외로 둔다고 적혀 있다.
KT는 2016년 지하철 광고 아이티시스템 입찰 담합으로 인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7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카카오 역시 카카오M(옛 로엔엔터테인먼트)이 2016년 온라인 음원 가격 담합으로 1억 원의 벌금형을 받은 바 있다. 카카오M은 올해 9월 1일자로 모회사인 카카오에 흡수합병됐다.
카카오는 “은행법 시행령에 따르면 초과보유 요건 심사 대상은 대주주 대상 법인만 해당되며 계열사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는다”며 “피합병 소멸 법인의 양벌 규정에 의한 벌금형의 형사책임은 존속 회사로 승계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금융위의 적격성 심사를 판단하지 못하면 KT와 카카오는 3년을 기다려야 한다. 특히 자본 확충이 시급해 KT의 증자만 기다리는 케이뱅크 입장에선 생존과도 연결될 수 있는 문제다. 금융당국이 내년 초 인터넷전문은행 추가 인가 신청 접수를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기에 자본 확충에 실패하면 향후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1일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위반의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판단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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