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문 카메라가 사라진다고 해도 별로 아쉽지 않은 세상이 왔다. 대부분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기 때문이다. 최신 스마트폰들의 차별화도 점차 카메라 성능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애플의 새 아이폰도 카메라를 많이 강조했고 LG전자가 새로 출시하는 ‘LG V40’은 카메라 렌즈가 5개 달려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 때문에 카메라 회사들은 존폐를 걱정하게 됐다. 그런데 얄밉게도 좀 편한 회사도 있다. 독일의 라이카다. 라이카는 여전히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제품을, 이해하기 힘든 가격에 내놓으면서도 매출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불가사의한 라이카의 신제품을 리뷰했다.
오늘 소개하는 제품은 라이카가 최근 출시한 라이카 M10-P다. 이 제품은 2년 전쯤에 나온 라이카 M10의 프로페셔널, 또는 프레스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라이카는 기자나 프로를 위한 버전에 모델명 뒤에 ‘P’를 붙인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라이카 M10과 크기가 완전히 같고 무게도 같으며 스펙도 일치한다. 심지어 디자인도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을 눈을 크게 뜨고 찾아 봤다.
우선 전면부의 빨간 라이카 로고가 사라졌다. 원래 라이카는 P가 붙은 모델에는 빨간 로고를 붙이지 않는다. 빨간 로고가 피사체의 시선을 현혹시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일견 이해가 간다. 누군가 나를 라이카로 찍고 있다면 나도 긴장이 된다. 뭔가 오래 남겨질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최대한 근엄하고 역사적인 표정을 짓게 된다. 과연 역사적인 카메라다. 라이카는 눈에 띄는 빨간 로고를 없애면서 좀 더 피사체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도한다.
전면 로고가 사라진 대신에 상판에는 라이카 각인이 멋지게 그려져 있다. 라이카를 쓰다 보면 상판 각인이 훨씬 더 사진가에게 자부심을 준다. 전면 빨간 로고는 잘 보이지 않지만 상판의 각인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리고 핫슈 커버가 금속 재질로 바뀌었다. 라이카 M10은 핫슈 커버가 경망스럽고 역사적이지 못한 플라스틱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 중에 바뀐 건 이게 전부다. 2년 동안 라이카는 로고 위치를 바꾸고 핫슈 커버만 바꿨다는 얘기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바뀐 게 하나 더 있다.
셔터음이다. 라이카 M10-P는 라이카 역사상 가장 조용한 카메라라고 한다. 실제 셔터를 눌러보니 셔터음이 작긴 하다. 아날로그 방식 셔터를 쓰면서 셔터 소리를 줄일 수 있는 한계까지 줄였다고 보면 된다. 라이카는 M10-P를 위해 셔터박스를 재설계했다. 그런데 셔터음을 줄인 게 뭐가 그리 대단한가. 미러리스는 더 조용하고 전자식 셔터는 셔터음 자체가 없는데.
그걸 라이카는 멋지게 포장하는 방법을 안다. 과거에는 극장에서 공연실황 등을 기자들이 촬영할 때 AF카메라를 금지했다. 셔터음이 관객이나 배우의 몰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카 M시리즈만은 허락하는 극장이 있었다. 라이카 M시리즈는 미러박스가 없어 상대적으로 셔터음이 조용하다는 이유다.
라이카 M10-P는 셔터음을 줄이면서 과거 라이카가 잘나가던 시대의 에피소드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이게 라이카가 현대에도 지속될 수 있는 이유다. 과거의 유산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역사성을 강조하면서 차별화를 꾀한다. 그래서 라이카를 손에 집으면 알 수 없는 사명감에 가슴이 떨려 온다. 좀 더 가치 있고 오래 남을 수 있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몰려온다. 물론 카메라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떨림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다시 제품으로 돌아와 보자. 라이카 M10-P는 여전히 RF카메라라는 목측식 포커스를 사용하지만 ‘라이브 뷰’를 지원하면서 촬영은 한결 편해졌다. 포커싱이 맞으면 디스플레이에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촬영이 가능하다. 인터페이스도 더 없이 간결하다. 고감도 설정과 셔터스피드 설정 다이얼이 바디에 있고 렌즈에 조리개 조절링이 있기 때문에 간단한 십자 버튼과 세 개의 버튼만으로 모든 설정이 가능하다.
동영상 따위는 지원조차 하지 않으니 기대하지 말자. 다만 연사는 초당 5매씩 찍을 수 있다. 저장속도도 빠른 편이다. 실제 연사 해보니 50장 정도까지 RAW+JPG파일로도 연속 촬영이 가능하다. AF와 동영상은 지원하지 않지만 다른 편의기능은 현대적이다. 심지어 무선연결도 지원한다. 사진 결과물은 어떨까? 라이카 M10P와 센서와 이미지 엔진이 완전히 같기 때문에 사진도 같을 수밖에 없다. 따로 샘플 사진은 올리지 않겠다.
단점도 얘기해 보자. RF나 동영상 부재 등의 구조적 단점을 제외하면 크기나 무게도 결코 만만치 않다. 풀프레임 카메라이고 전체를 마그네슘 합금의 유니바디로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꽤 묵직(바디만 660g)하다. 라이카의 자랑은 가볍고 얇은 카메라지만 그건 독일인 기준이다. 실제로는 손이 작은 일본인들이 만드는 미러리스 바디에 비해 그다지 콤팩트하다고 볼 수는 없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가격이다. 바디 가격만 1070만 원이고 리뷰용으로 장착한 라이카 주미크론 28mm의 가격도 600만 원 가까이 한다. 셔터 한번 누르려면 1700만 원을 투자해야 한다.
라이카는 이 엄청난 가격에 대해 ‘대를 이어 사용하는 카메라’라는 메시지로 무마시킨다. 틀린 말은 아니다. 라이카는 아직도 60년전 아날로그 라이카를 수리할 수 있는 부품을 보유하고 있고 실제 수리해서 쓰는 사람도 있다. 또 라이카 M10-P에는 1950년대 출시한 M마운트 렌즈를 끼울 수도 있다. 즉 렌즈도 평생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다른 카메라 메이커도 마운트만 장착하면 옛날 렌즈를 쓸 수 있다. 그러나 라이카 렌즈는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전자장치가 거의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고장 날 우려가 거의 없다. 반대로 손떨림 방지나 AF 같은 기능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라이카의 의견에 동의할지 비웃을지는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이다.
라이카를 보면 좋은 건물을 잔뜩 상속받은 건물주가 생각난다. 35mm 카메라를 시작했던 라이카의 위대한 역사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사는 듯 보인다. 하지만 라이카의 노력을 폄하하기에는 라이카의 선전이 예사롭지 않다. 라이카는 과거의 역사를 현대에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폰카를 찍는 사람들에게 사진이 어떤 의미인가를 묻고, 카메라가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를 계속해서 되묻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라이카로 역사와 전통이 가득한 사진을 찍어 보라고 유혹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지만 스마트폰의 카메라가 발달하면서 라이카의 매출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기술에 지친 소비자들이 늘어나서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필자 김정철은? ‘더기어’ 편집장. ‘팝코넷’을 창업하고 ‘얼리어답터’ 편집장도 지냈다. IT기기 애호가 사이에서는 기술을 주제로 하는 ‘기즈모 블로그’ 운영자로 더욱 유명하다. 여행에도 관심이 많아 ‘제주도 절대가이드’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지만, 돈은 별로 벌지 못했다. 기술에 대한 높은 식견을 위트 있는 필치로 풀어낸다.
김정철 IT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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