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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학번·생일만으로 개인정보 줄줄···대학 무인발급기 이대로 괜찮나

대부분 별도 비밀번호 설정 없어…학교·학생들도 개인정보 중요성 인식 못 해

2018.09.21(Fri) 17:55:47

[비즈한국] 대학교 성적증명서, 재학증명서, 졸업예정증명서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담은 서류들이 허술하게 발급되고 있다. 행정편의를 위해 설치한 키오스크(무인발급기)에 학번과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손쉽게 각종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것. ‘비즈한국’이 서울 소재 11개 대학을 방문해 조사한 결과 4곳에서 학번과 생년월일을 로그인 정보로 사용했다. 학번·생년월일은 타인도 손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인정보를 악용할 우려가 있다.

 

성신여자대학교 증명서 무인발급기. 학번·생년월일을 입력하는 방식이다. 사진=구단비 인턴기자


성신여자대학교 성신관 1층 무인발급기 앞에 있던 세 명의 학생을 인터뷰했다. 이곳 발급기는 학번·생년월일을 로그인 정보로 사용한다. 취재 의도를 얘기하자 한 학생이 옆 학생에게 “너 내 성적표 뽑아볼 거야?”라고 물어봤다. 질문을 받은 학생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놀랐다. 그는 함께 있던 친구가 자신의 학번과 생년월일을 알고 있다며 “내 거 보지 마”라고 경고하며 “저만 알 수 있는 비밀번호 같은 걸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다른 학생은 “학번·생년월일을 안다고 그걸 악용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시립​대학교 증명서 무인발급기. ​학번·생년월일을 입력하는 방식이다. ​​사진=구단비 인턴기자


서울시립대학교에서도 학번·생년월일을 사용해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무인발급기 앞 재학생은 “이걸(증명서)로 뭘 할 수 있냐”며 “우려한 적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역시 학번·생년월일만을 사용하는 서울과학기술대 재학생도 “증명서를 뽑을 수 있더라도 그걸 어디 쓰겠느냐”며 “본인 증명서가 아니면 증명서가 필요한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동일한 인증방법을 사용하는 서울여자대학교 재학생은 “너무 허술한 것 같다”며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 최소한 학내포털 비밀번호라도 입력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희​대학교 증명서 무인발급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주민등록번호 대신 학번과 생년월일을 사용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현재는 아래쪽과 같이 학번과 학내포털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사진=구단비 인턴기자


일부 대학교는 이런 방식이 주민등록번호 처리기준 강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희대학교에서는 증명서 발급기에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주민등록번호 대신 학번과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조회 및 출력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을 붙여두었다. 현재 경희대학교는 생년월일 대신 포털(학내포털)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측은 “학생들이 오히려 학번과 생년월일 입력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친구가 대신 발급받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성신여자대학교 관계자는 “이 방식을 유지하는 이유는 따로 없다”며 “이제까지 문제 제기를 한 학생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성신여대 측은 “업체에 문의해보니 90% 대학이 우리와 같은 방식을 쓴다”며 “어느 학교가 학번과 생년월일이 아닌 방식을 쓰는지 알려달라”고 말했다. 

 

키오스크를 관리하는 업체 중 한 곳은 “로그인 방식은 학교가 지정한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서울시립대학교, 숭실대학교 등을 맡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증명서 무인발급기. 생년월일 대신 학내포털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이다. ​사진=구단비 인턴기자


생년월일이 아닌 로그인 방식을 쓰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선 학번과 포털 비밀번호를 입력하도록 안내했다. 한 재학생은 “비밀번호 방법이 안전한 것 같다”며 “다른 사람이 뽑아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라고 말했다. 같은 방식을 쓰는 홍익대학교의 재학생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비밀번호를 자주 바꾼다”며 “학번이랑 생년월일을 이용하는 건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비밀번호 입력 시 옆에서 보이지 않게 가림막도 세웠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비밀번호 형식이 좋은 것 같아요, 근데 누가 제 성적표를 볼까요?” 생년월일이 아닌 학내포털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고려대학교 재학생의 말이다. 그는 “비밀번호를 사용하지만 생년월일이어도 불안하진 않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같은 방식을 쓰는 서강대학교 재학생도 “누가 내 것을 볼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생도 “비밀번호가 생년월일이 아니긴 하지만 그걸 알아도 누가 쓸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무인발급기 자체를 꺼리는 학생들도 많았다. 학번·포털 비밀번호 방식인 연세대학교의 한 재학생은 “인터넷으로 가능하고, ​기계를 사용하면 돈도 내야 하니까 굳이 기계를 쓰진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 경희대학교 재학생도 “방금도 오류가 났다”며 “기계 사용이 불편했던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결국 이 학생은 기계 발급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구단비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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