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블록체인은 혁신성장의 기회다. 제주도는 샌드박스형 특구로서 최적지다.” 지난 18일 열린 한 블록체인 박람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경제 시스템 혁신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 지사는 지난해부터 블록체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실 생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서울시 노원구는 블록체인을 접목한 지역 화폐 ‘노원(NW)’을 이미 선보였다. 경기도 시흥시도 지역 화폐 ‘시루’를 10월 내놓을 예정이며, 김포시도 내년 상번기 중에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를 출시한다. 경상북도와 충청남도 청주시도 지역화폐 도입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하듯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탈중앙화된 원장 기록으로 의사결정 구조가 민주적이고 보안성이 뛰어나다. 때문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도입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정작 대기업들은 어떤 식으로 신기술을 적용할까 고민만 깊다. 이 사이 지자체들이 먼저 스타트를 끊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들이 속속 지역화폐를 내놓는 목적은 신용카드 수수료 절감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다. 한국은 자영업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 기업가정신 한눈에 보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556만 3000명으로 38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미국·멕시코에 이어 3위다.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의 비중은 21%에 달한다. 10% 안팎인 선진국보다 2배 이상 높다.
이런 가운데 신용카드 결제 규모는 압도적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신용카드 결제금액은 지난해 기준 686조 6080억 원이었다. 전체 민간 소비지출의 78.87%를 차지한다. 신용카드 가맹점들은 매출액에 따라 매출의 0.8~2.5%의 수수료를 신용카드사들에 내고 있다. 전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평균 1.6%라고 가정하면 약 11조 원이 신용카드사들에게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자영업자들은 신용카드 수수료에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서울 논현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승진 씨(40)는 “한 달 5000만 원 매출이 나면 신용카드사에 수수료로 120만 원 정도를 내야 한다. 한 달 순수입이 400만~500만 원인데, 신용카드사들에게 내 수입 중 상당 부분을 뺏기는 기분”이라며 “법적으로도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어 부담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에 지자체들은 해당 지역에서만 유통되는 지역화폐를 내놓아 결제를 유도하면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페이 기반의 지역화폐는 수수료가 없고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볼 수 있기에 자영업자로서는 수수료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지자체로서는 투명한 세정을 펼칠 수 있다.
노원화폐 가입자 수는 2월 1526명에서 6월 10일 기준 5403명으로 불어났고, 지역 화폐 발행액도 같은 기간 3000만NW에서 6500만NW으로 증가했다.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가맹점도 카페·미용실·학원 등 지역상인들을 중심으로 87개소에서 247개소로 늘었다. 물론 활성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울시 역시 카카오페이·페이코·네이버·티머니페이·비씨카드, 5개 민간 결제플랫폼 사업자와 손잡고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를 연내 도입한다. 가칭 서울페이로 불린다. 수수료가 없고, 현금보다 많은 40%의 소득공제율을 적용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서비스 기반의 ‘스마트 시티, 서울’을 목표로 올해 중에 기본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박 시장은 6·13 지방선거 당시 지역 마일리지 개념의 ‘S코인(가칭)’ 구현방안을 밝히는 등 적극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역화폐로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가맹점주의 실질 소득 증가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맹점주는 물론 현직 시‧도지사로서도 지지율을 향상에 도움이 되기에 지역화폐는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 때는 무엇보다도 입소문이 중요하다. 지역 소상공인들이 밀집된 시장 등지에서 선거운동을 집중하는 이유”라며 “지역 소상공인에게 특화된 블록체인 서비스를 시행하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이유로 지역은 물론 국가 단위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하경제 규모가 크고 정치 문화가 후진적이며, 경제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이 그렇다.
몽골의 법정화폐인 ‘투그릭’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지난 3년 새 원화 대비 화폐가치가 3분의 2로 떨어지는 등 등락폭이 크고, 몽골의 낮은 국가신인도 때문이다. 이에 몽골은 한국·중국·일본 등의 블록체인 기업들을 불러 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 사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투그릭을 대체하거나 연동된 암호화폐 개발을 통해 경제시스템을 투명하게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북한도 블록체인 관련 국제회의를 10월 1~2일 평양에서 개최할 전망인 등 경제시스템 전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 생태계 조성과 규제, 코인지급 방법 등과 관련한 토론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은 익명성 보장 기능이 강하고 전문 채굴기가 아닌 일반 중앙처리장치(CPU)로도 채굴이 용이한 암호화폐 모네로를 채굴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이 블록체인 국제회의를 개최함으로써 자신의 능력과 자신감을 대내외로 과시하는 한편 국제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음을 선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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