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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 돌려막기' 때문? 저가 패키지여행사 몰락의 배후

더좋은여행·e온누리여행사 도산, 출혈경쟁이 치명타…다른 곳도 폐업설 돌며 '흉흉'

2018.09.19(Wed) 19:50:08

[비즈한국] 최근 홈쇼핑 채널에서 익숙하게 이름을 올리던 종합여행사 두 곳이 연달아 도산했다. 여행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며 자조 섞인 한숨을 뱉는다. 저가 패키지여행을 표방하던 e온누리여행사​가 지난 3일에, 더좋은여행이 5일 폐업을 선언했다. 저가 패키지여행 시장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저가 패키지 여행사인 더좋은여행과 e온누리여행사가 최근 폐업을 했다. ​홈쇼핑 출혈경쟁과 그로 인한 돌려막기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사진은 문을 닫은 더좋은여행 본사 사무실. 사진=이종현 기자


해마다 해외여행 수요는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주말과 연차를 활용해 짧게 다녀올 수 있는 근교국 여행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일본, 태국, 베트남, 라오스 등 가까우면서도 교통 및 여행 인프라가 잘 마련되어 있는 지역이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아도 된다. 항공발권과 호텔예약을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직접 할 수 있다. 가격과 시설 비교는 물론 이용후기 등 앱으로도 충분하다. 내 취향껏 일정을 잡아 여행할 수 있다.

 

패키지에 대한 불신도 한몫한다. 비슷한 가격이라면 사실 하나투어로 가든 자유투어로 가든 결국 비슷한 여행을 하게 된다. 국내 업체가 모객을 하고 비슷한 현지 여행사에 하청을 주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패키지여행을 진행할 수 있는 업체는 어차피 빤해서 그 밥에 그 나물이다. 

 

게다가 가격이 너무 싼 만큼 폐해가 따를 수밖에 없다. 항공과 호텔, 식사비, 교통수단과 입장료, 가이드와 기사 수고료까지 원가만 100만 원인 여행을 소비자가 50만 원에 샀다면 나머지 50만 원+알파(업체마진)는 현지에 가서 쇼핑과 옵션투어의 커미션으로 채워줘야 한다. 그래야 남는 장사다. 국내 모객 업체, 홈쇼핑 등 중간 유통 채널, 현지 여행사 모두가 남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 패키지 여행자들은 현지에서 쇼핑을 잘 안 한다. 면세점 특가도 많고, 필요한 것은 해외직구로도 살 수 있다. 물론 그런 정보에 취약한 50~60대가 패키지 시장의 주 고객이다. 하지만 그들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며 옵션투어를 하는 정도다. 여행사로서는 마진은커녕 본전 뽑기도 어렵다.   

 

더좋은여행과 e온누리여행사의 폐업 원인은 이러한 국내 패키지 여행산업 전반의 고질적 문제에 기인한다. 그 중 이번 폐업의 치명타가 된 것은 출혈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홈쇼핑 판매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온누리여행사는 부도 직전까지 홈쇼핑 판매를 강행했다. 지난 7월 한 홈쇼핑 판매 내용. 사진=홈쇼핑모아 캡처


홈쇼핑에서 상품 판매를 하려면 홈쇼핑 회사에 수수료를 줘야 한다. 그런데 이 수수료가 너무 과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홈쇼핑 상품 판매를 진행하고 있는 한 여행사 관계자는 “​평일 저녁시간에 편성되는 여행상품 방송도 한 회에 기본 5000만 원 이상 수수료를 내고 시작한다. 얼마나 팔렸는지는 상관 없다. 인지도 있는 홈쇼핑 채널의 주말 저녁 방송은 7000만~1억 원까지 수수료가 올라간다. 여기에 실제 판매분의 7~9%를 추가 수수료로 내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언뜻 보기에도 중소여행사가 감당하기에 벅찬 금액이다. ​홈쇼핑 판매를 진행하는 다른 여행사 관계자도 ​“여행사의 수익구조를 무시한 수수료 구조다. 경쟁사 상품보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판매해야 예약률이 높으니 과열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이미 몇천만 원의 수수료를 내고 시작한 방송이니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것이다. 박리다매이다 보니 여행사의 서비스 차지는 처음부터 아예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마이너스든 뭐든 일단 많이 팔고 보자는 식”이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

 

예를 들어 A 여행사가 다낭을 59만 원에 팔면 B 여행사는 수익도 안 따지고 당장에 58만 원에 파는 식이다. 덤핑과 그에 따른 수익 악화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홈쇼핑을 버릴 수도 없다. 

 

앞서의 여행사 관계자는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홈쇼핑 판매를 하니 가만히 앉아 있으면 고객을 빼앗기는 꼴이다. 홈쇼핑 판매채널을 통하지 않고는 아예 대량 모객이 힘들고 자금을 돌릴 수 없기 때문에 한번 홈쇼핑에 들어가면 발을 빼기 어렵다. 울며 겨자 먹기”라고 하소연했다.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 판매를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라고 표현했다. 고객들의 결제금이 들어오면 그걸로 직원 월급을 주고 회사를 운영한다. 현지 업체에 주는 돈은 그 중 일부다. 말하자면 외상이다. 다음 홈쇼핑 방송으로 다시 자금이 돌면 같은 방법으로 돌려막기를 한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건 현지 여행을 책임지는 랜드사도 마찬가지다. 랜드사란 여행지에서 실제로 여행단의 여행을 책임지는 현지 업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다수 여행사들이 랜드사를 직접 운영하지 않고 여행객을 모객한 후 현지 여행업체로 보낸다. 이때 지상비라는 이름으로 현지에서 소요되는 여행경비를 제대로 송금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국내 모객업체가 현지 여행사에 이 지상비를 100% 지급했다. 보통 여행 전이나 여행 중에 지급하고, 늦어도 여행 후 2~3일 내에는 지급했다. 그러던 것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금사정 악화와 환율변동 등을 이유로 20~30%만 지급한 채 나머지 지불을 미루는 행태가 생겼다. 랜드사는 다음 여행을 수주받기 위해 다시 경비의 일부만 받고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고질적인 국내 패키지 여행업의 관행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등장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생겨난 글로벌 OTA(Online Travel Agency)가 국내에 들어온 것이다. 대표적인 글로벌 OTA인 익스피디아는 올해 한국 시장 진출 7년 만에 역대 최다 매출을 올렸다. 국내 여행업계 전반이 당황하며 흔들리고 있다.

 

더좋은여행사가 전 세계 랜드사에게 준 피해액은 25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사진은 더좋은여행이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사진=더좋은여행 홈페이지 캡처


더좋은여행의 부도로 1억 원의 피해를 본 미주 랜드사 김 아무개 대표는 “20년 전부터 같은 일의 반복이다. 이렇게 부도 맞는 회사 때문에 3~4년에 한 번은 몇억 원씩 큰 손해를 본다. 적은 마진으로 애만 쓰다가 누구 좋은 일만 시키는지 모르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

 

더좋은여행의 또 다른 랜드사 관계자는 “홈쇼핑 판매가 시들해진 3~4개월 전부터 더좋은여행의 자금이 안 돌기 시작했다. 그러다 7~8월 판매 부진으로 갑자기 더 어려워졌다. 홈쇼핑 판매액으로 계속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자금줄이 막힌 것 같다”고 전했다.

 

랜드사 피해자 모임에 따르면, 더좋은여행이 랜드사에 지급하지 않은 지상비만 25억 원 이상이다. 더좋은여행이 거래했던 전 세계 랜드사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사이판의 한 랜드사는 5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답답한 마음에 ​랜드사끼리 피해자 모임을 만들었지만 별 기대도 없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업체도 있지만 피해금을 받을 일은 요원하다.

 

부도 직전까지 홈쇼핑 판매를 강행한 ​e온누리여행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부도가 나기 전에 중국 장자제(장가계)로 떠난 여행객 31명이 현지에서 버려질 위기에까지 처했다. 랜드사 관계자는​ “​지상비를 받지 못한 채 부도 소식을 들은 현지 업체가 여행객들에게 지상비를 요구했고 결국 여행객들이 돈을 모아 지상비를 지불했다”​고 전했다. 여행객들은 귀국 후 한국여행업협회에 피해보상을 요청했다​고 한다.

 

현재 중견 여행사는 ​대부분 홈쇼핑 판매를 하고 있다. 따라서 여행사의 도산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중소 여행사 서너 곳 역시 폐업설이 도는 상황이다. 여행업계에 찬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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