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6월 28일 스타필드 코엑스 내에 개장한 ‘삐에로쑈핑’은 신세계가 일본 유명 복합 쇼핑몰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곳이다. 삐에로쑈핑엔 일본 돈키호테처럼 벽 하나만 넘어서면 성인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코너가 있다.
벽으로 나뉜 것은 미성년자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것일 뿐, 삐에로쑈핑 방문객들은 손쉽게 성인용품을 구경할 수 있다. “들어가보자”라고 말하며 각종 성인용품을 보고 웃고 떠드는 손님도 있고, 직원에게 “이거보다 더 좋은 제품이 있느냐”며 진지하게 묻는 이들도 있다. 성인용품을 금기시해왔던 한국에서 요즘 삐에로쑈핑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인용품점들이 양지로 나오고 있다.
“진동기 같은 건 켜보셔도 돼요.” 명동 한복판 핑크색 외관의 가게를 들어가니 점원이 반갑게 맞는다. 카페 또는 문구점 같지만 성인용품점 레드컨테이너다. 음침해 보였던 과거 성인용품점과 달리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가게가 너무 예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게 뭐야?”라고 궁금해하다 성인용품점인 걸 알고 신기해하는 행인들도 많았다.
성인용품점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홍대입구, 강남 등에서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 홍대입구 인근만 10곳이 넘는다. 에스챔버는 은은한 조명을 사용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에스챔버 대표 A 씨는 “기존 성인용품점은 진입장벽이 높아, 밝은 인테리어를 통해 개방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했다”며 “요새는 데이트코스로도 많이 방문한다. 고객들은 홍대 특성상 20대 초중반이 많다”고 전했다.
합정동에 위치한 플래져랩 대표 B 씨도 “성인용품에 대한 인식을 전향하고 싶어 밝은 분위기로 꾸몄다”고 했다. 가게 내부는 밝은 색이라 모르고 지나치면 성인용품점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B 대표는 “예전에는 소품숍이나 헤어숍인 줄 알고 방문하는 고객도 꽤 있었다”고 말했다.
상수역 근처에서 성인용품점과 카페를 겸한 푸시베리를 운영하는 C 씨도 “주변 거주자들이 카페인 줄 알고 방문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 인테리어를 위해 참고한 사례도 성인용품점이 아니라 패션브랜드 쇼룸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의 태도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들르는 고객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직접 체험하러 방문하는 고객이 많다. 앞서의 A 대표는 “목적을 가지고 직접 써본 뒤 사겠다는 고객이 많다”며 “러브젤의 경우 직접 써보는 것과 설명만 보고 구매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설명했다. 고객들도 “사용감이 더 좋은 제품이 뭐냐”는 등 적극적으로 문의한다.
B 대표는 커플 방문이 늘고, 파트너를 위해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만삭의 아내나 출장이 잦은 남편을 위해 사는 경우도 있다”며 성인용품에 대해 거리낌이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C 대표는 “서울 난지공원에서 열렸던 ‘서울인기’라는 페스티벌에 참가했는데, 거부감 없이 방문해서 구매하는 고객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가 운영하는 가게는 매장 방문 후 SNS에 인증사진을 남기는 고객도 적지 않다. 성인용품점 방문과 성인용품 구매를 숨기지 않는 문화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용품점이 점차 양성화되는 것과 달리, 이를 바라보는 인식은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몬스타창고 홍대점 매니저는 “다른 나라에선 섹스포라는 성인용품 박람회가 열리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사람들이 주로 쓰는 네이버 지도 앱(애플리케이션)에서 가게 이름을 검색할 수도 없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여성 고객들 중엔 자기 성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B 대표는 고객에게 사용방법을 설명하기 위한 성기 모형도 따로 준비해뒀다. 그는 “성 인식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교육도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C 대표는 “성인용품점에 가는 여성에게 관음적 시선이 있는 것 같다. (창문을 가리키며) 지금은 가려져 있지만 예전엔 여성 전용인 우리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남자들의 이마 자국이 남기도 했다”며 “성문화가 개방적인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성인용품점을 방문했을 때 불쾌한 시선을 느낀 적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성인용품점이 매장 그 이상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앞서의 B 대표는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기적으로 세미나를 연다”고 설명했다. 세미나는 성인용품이나 콘돔 사용방법 등 기초적인 내용부터 시작한다. B 대표는 “이건 학교 다닐 때 배워야 했던 것이다. 콘돔 사용법을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C 대표도 매장을 활용해 여성들을 위한 파티나 영화 상영회, 세미나 등을 개최한다고 말했다. “여자들끼리 하는 파티도 충분히 재미있고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것. 그도 성인용품점의 특성을 살려 취향에 맞는 성인용품 찾기 등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모든 성인용품점이 호황을 누리진 않는다. A 대표는 “돈이 되는 창업 아이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보 없이 시작하면 폐업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성인용품점이 늘면서 고객의 선택지는 넓어졌으나 사업자 입장에선 경쟁이 심해졌다는 얘기다. 홍대 정문 앞 터줏대감으로 유명한 성인용품점은 10월 폐업을 앞두고 있다.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오프라인 매장 운영만으론 힘들다’고 말했다.
구단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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