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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법]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 셋

형벌 대체수단 충분치 않고 각국 사이버 문화와 피해 양태 달라 선뜻 동의 못해

2018.09.17(Mon) 09:00:48

[비즈한국] 지난 11일, 만화가 윤서인 씨가 고 백남기 씨 유족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1년을 구형받은 일이 화제다. 윤 씨는 “사실적시”라며 무죄를 확신한다. 우리 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처벌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존폐논란이 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현행법상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수단으로 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무겁게 처벌한다. 여기서 ‘명예’란 사람의 인격적 가치와 그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미한다. 

 

최근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그러나 현실에서 형벌을 대체할 만한 수단이 충분치 않고, 각국의 사이버 문화와 피해의 양태가 다르며, 명예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를 감안할 때 지금 당장 폐지하는 것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최근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에서 피해자 보호 대책으로 한층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미투에 동참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오히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역고소를 당하는 경우가 있고, 처벌 규정 자체만으로도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형법에 규정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헌법재판소​는 사이버 명예훼손죄를 처벌하는 정보통신망법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는데 김이수, 강일원 재판관은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에서 비방할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명예훼손행위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반박문 게재 등 형사처벌 외에 덜 제약적인 구제제도들이 존재하며, 허위의 명예나 과장된 명예를 보호하기 위하여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위축효과를 발행”시킨다는 이유로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대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형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는 허명(虛名)에 불과하다고 한다. 실제로 영미법계 국가들은 이를 형사가 아닌 민사법적 규제대상으로 해결한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등 다수 국가도 마찬가지다.

 

표현의 자유가 자유민주사회의 핵심적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개인의 명예도 행복추구권과 인간의 존엄성 보장에 헌법적 근거를 두고 있는 인격권으로부터 파생되는 기본권이다. 과연 사실을 말하여 누군가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켜도 처벌이 아닌 민사적 구제만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에 우리 사회의 합의가 가능할까. 

 

사이버 공간에서 자행되는 명예훼손의 폐해는 날로 극심해져간다. 비방 목적으로 누군가는 숨기고 싶은 사실, 예컨대 에이즈(AIDS) 같은 병력, 전과 등을 굳이 세상에 알려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면 심각한 ​인격권 침해이므로 즉각 법적 조치를 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하다. 페이스북 등 SNS의 파급력을 상상해보라.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 영미법계와 달리 우리나라 민사적 구제방법의 실효성은 극히 미미하다.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인정된 전두환 씨에게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액이 7000만 원에 불과했으니, 허위사실이 아닌 사실을 적시한 경우라면 그 액수가 대폭 낮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때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되어 있고, 법원도 미투와 관련한 폭로는 비방의 목적이 없다고 판단하므로 정당한 표현의 자유는 보호된다.

 

지난 7월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국민들이 자신의 명예와 사회적 역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황”이며 “사실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거나, 개인적 문제가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걸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사람의 명예는 예외 없이 어느 정도 과장된 허명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형벌을 대체할 만한 수단이 충분치 않고, 각국의 사이버 문화와 피해의 양태가 다르며, 명예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를 감안할 때 지금 당장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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