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악화된 고용과 분배 등 경제 상황에 대해 인구구조 변화와 통계 오류 등을 이유로 들며 외면하던 정부와 여당이 최근 들어 상황 악화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 주요 인사들의 경제 상황 악화 인정이 정책 오류를 시인하고 수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한 면피성 발언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올해 최악을 기록한 고용과 분배 지표가 내년에는 기저효과로 인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리고 시간 벌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기저효과’란 비교 기준이 되는 상황과 현재 상황에 큰 차이가 있을 경우 경제지표가 왜곡돼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올해처럼 최악의 경제 상황과 비교하게 되면 경제지표가 실제보다 부풀려져 나타나게 된다.
각종 경제지표에도 고용과 분배 상황 악화에 대해 변명만 하던 정부와 여당이 최근 들어 상황 악화 자체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들의 말에는 공통된 대목이 있다. 정책을 손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년부터 좋아진다”는 얘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2일 일자리 등 경제지표와 관련해 “대체적으로 연말, 내년 초쯤이 지나야 조금씩 개선 효과가 보이지 않을까 전망하는데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단축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이목희 부위원장도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내년 2분기 일자리 전망에 말이 많은데, 올해 하반기부터 일정 정도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2019년 그 개선이 본격화하고 2분기가 되면 20만 중후반대 신규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 설계자로 야당의 뭇매를 맞고 있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정부가 직접 소득을 지원해주는 근로장려세제랄지 노인수당, 아동수당이 9월부터 집행이 되기 때문에 소득 분배 개선 효과는 내년에는 분명히 나타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정부와 여당 인사들의 발언에 대해 경제계 일각에서는 고용과 분배 악화에 영향을 줬다는 지적을 받는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등을 고수하기 위해 기저효과를 노리고 시간끌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실제 과거 경제가 악화됐던 다음 해에는 각종 경제지표들이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나라는 1997년 말 IMF 외환위기 사태를 맞은 뒤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취업자가 급감했다. 특히 1998년 4분기에는 취업자 수(1990만 5000명)가 전년동기 대비 136만 4000명 줄었고, 1999년 1분기(1911만 8000명)에는 57만 9000명 감소했다. 그런데 1년 뒤인 1999년 4분기에는 취업자(2099만 1000명)가 전년동기 대비 108만 6000명, 2000년 1분기(2038만 명)에는 126만 2000명이나 급증했다.
수치로만 보면 1년 만에 취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고용시장에 훈풍이 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저효과가 불러온 현상에 불과했다. IMF 전에 2100만 명 수준이었던 전체 취업자 수가 2000만 명 수준을 회복하는데 그쳤는데도 기저효과로 인해 경제지표로는 급증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당시 경제성장률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1998년 1분기 -3.4%를 기록하며 역성장한 한국 경제는 2분기 -7.3%, 3분기 -6.7%, 4분기 -4.2%로 악화일로였는데 1999년 1분기 6.8%로 뛴 뒤 2분기 11.8%, 3분기 12.6%, 4분기 13.6%까지 치솟았다. 이 역시 기저효과가 불러온 착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똑같이 나타났다. 당시 20만~30만 명 수준이던 취업자 증가 수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2009년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2010년에 40만 명 수준까지 뛰었다. 경제성장률도 2009년 1분기 -1.9%, 2분기 -1.1%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덕에 1년 뒤인 2010년 1분기 7.3%, 2분기 7.4%로 급등하는 기저효과를 누렸다.
경제계 관계자는 “올해 취업자 증가 수를 보면 2분기에 10만 명 수준까지 떨어졌고, 7월과 8월에는 각각 5000명과 3000명에 불과했다”며 “내년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한 기저효과로 인해 취업자 수가 올해보다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여당에서 내년에 고용이나 분배 등 경제 상황이 개선된다고 이야기하는 배경이 이러한 기저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문제”라며 “정책에 오류는 없는지, 구멍은 없는지를 꼼꼼히 살펴 고용과 분배 등 경제가 제 궤도를 찾게 하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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