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치와 외교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국내 정치의 문제를 외교 갈등을 일으켜 해결하기도 하고, 외교성과를 국내 유권자 지지를 높이는 데 활용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일본을 막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공격한 것처럼.
이런 맥락으로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과 최근의 미국 국내 정세를 살펴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다음 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러시아와의 내통설부터 섹스 스캔들, 최근에는 선거자금법·금융사기·탈세 등 혐의로 최측근 두 명이 유죄 판결을 받으며 탄핵 여론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가운데 11월 중간선거를 치러야 한다.
현재 미국 하원 의석수는 공화당 235석, 민주당 193석으로 여대야소 구도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비판 여론이 커지며 민주당 우세 지역은 199개로, 공화당 193개를 앞서고 있다. 미국의 선거 분석 기관인 ‘파이브서티에잇’이 갤럽 등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내놓은 결과다. 경합지역이 43개라 아직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분위기는 민주당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공화당 지지 지역이자 러스트 벨트(Rust belt·제조업 쇠락 지대) 중 하나인 오하이오주에서 최근 하원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졌는데, 주 상원의원을 지낸 공화당 트로이 볼더슨이 민주당의 정치 신예 대니 오코너에게 0.6%포인트 차 진땀승을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원 유세를, 공화당이 300만 달러 이상의 선거자금을 쏟아 부으며 총력전을 펼친 결과치고는 초라하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선거 패배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수에 대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단 지지율은 급락했다. 미국 CNN 방송은 자사 등 8개 기관의 여론조사를 종합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평균이 37.8%에 그쳤다고 11일(현지시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을 정책적으로 분류할 경우 이민 등 사회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낮지만 상대적으로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높은 상황이다.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NEC)은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50%가 넘는다”고 밝힌 바 있다. 올 초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러시아와의 내통설에도 불구하고 높은 경제 실적에 힘입어 40% 중반까지 올랐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경제 문제를 지렛대 삼아 지지층 결집 및 유권자들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미국 예일대의 스티븐 로치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궁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더 큰 일을 만들어 관심을 돌리는 것”이라며 “미중 간에 무역 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데릭 시저스 선임연구원도 최근 CNBC 인터뷰에서 “무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긴장 상태는 2년 이상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7~8월까지 중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고율관세 수입품 규모는 500억 달러였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9월 들어서만 467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수입 규모는 5050억 달러였던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중국의 모든 수입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는 셈이다.
특히 무역전쟁이 한창임에도 지난 8월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역대 최대 규모인 300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점도 트럼프 행정부의 고강도 조치에 명분을 실어주고 있다. 현재로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관세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수량제한, 상계관세, 통관 등 비관세장벽을 칠 수도 있다.
중국은 무역전쟁이 터지자 미국산 콩 등 제품에 고율관세를 물리는 전략을 펼쳤다.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 지역인 팜벨트(Farm Belt‧중서부 농업지대)를 무역전쟁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미국 행정부를 압박하겠다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중국의 이런 전략이 되레 미국의 화를 더 북돋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무역전쟁이 중국 이외의 나라로 확전될 가능성도 있다. 가장 가능성 높은 나라는 일본이다. 실제 미국은 9월 21일 일본과 장관급 통상 협의, 25일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 문제와 관련해 “관계가 끝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이 미국과의 불공정 통상조약 문제를 섣불리 꺼낼 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해 미국에 1365억 달러를 수출해, 688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 6월 백악관에서 아베 총리와 회담할 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공습을 잊지 않는다”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조약 개정을 시도하고 있고, 유럽연합(EU)과의 무역역조도 계획 중이다. 미국의 최대 수입국은 금액 기준 중국·멕시코·캐나다·일본·독일·한국 순이다. 독일과의 관계는 EU와의 외교·군사 관계가 얽혀있고, 한국은 북한 핵문제가 맞물려 있어 중국·일본처럼 일방적인 공세는 펼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구두 압박만으로도 환율 등이 요동칠 수 있고, 미국을 중심으로 자국 중심주의가 확산될 경우 수출에 기대고 있는 한국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이 발생할 전망이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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