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Story↑Up > 라이프

[아빠랑] 조선 최대의 금고를 찾아서, 한국은행 구본관

일제강점기 '제일은행 경성지점'으로 출발…지금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2018.09.12(Wed) 09:12:13

[비즈한국] 영화 ‘돈의 맛’의 한 장면. 재벌가의 데릴사위 윤 회장과 비서인 주 실장이 비자금 쌓인 금고에 들어선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신사임당과 프랭클린이 새겨진 지폐가 산처럼 쌓여 있다. 주 실장뿐 아니라 보는 관객도 침이 꼴깍. 물론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도 지게차로 실어야 할 만큼 많은 현물뭉치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그것도 영화 속 비밀 금고 같이 육중한 철문을 지나서 말이다. 비록 모형 금고이고 가짜 돈이지만 눈앞에 현금 뭉치를 보니 영화를 볼 때처럼 침이 꼴깍 넘어간다. 지금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운영되는 한국은행 구본관 2층, 한국은행 금고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모형 금고에서 관람객들은 잠시 영화 속 장면을 연출해볼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은행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던 일제강점기에는 지하에 조선 제일의 금고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은행 구본관은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서려 있다. 지금은 화폐박물관으로 쓰인다. 사진=구완회 제공

 

# 일본은행 본관 vs 조선은행 본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는 모형 금고 말고도 볼만한 것이 여럿이다. 박물관 1층 ‘화폐광장’에는 한·중·일의 시대별 화폐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진귀한 화폐를 모아놓았다. 바로 옆 ‘화폐의 일생’ 코너에서는 화폐가 만들어지고 순환하는 과정과 위조 화폐를 식별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고, ‘돈과 나라경제’에서는 통화정책을 비롯한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해 설명한다. ‘상평통보 갤러리’에서는 조선 시대 대표 화폐인 상평통보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들까지 알 수 있다.

 

명동 바로 옆에 있으니 근처에 왔다가 잠시 짬을 내어 둘러보기 좋다. 시간이 없다면 지나는 길에 건물 외관이라도 자세히 보시길. 한국은행 구본관은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다쓰노 긴고(1854~1919)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자 현재 사적 제280호로 관리하는 근대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다쓰노 긴고는 지금도 일본의 중요문화재인 일본은행 본점 건물도 지었다. 

 

한국은행 구본관 건물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 다쓰다 긴고가 설계한 것으로 건축적으로도 살펴볼 만하다. 현관은 입구에서 바로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사진=박정훈 기자

 

한국은행 구본관 건물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외부를 감싸고 있는 우윳빛 화강암이다. 조선 제일의 금고를 갖춘 은행 건물답게 철근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지은 후 동대문 밖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마감했단다. 배흘림 기둥이 멋진 현관은 앞으로 튀어나와 입구에서 바로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건물은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인데 화려한 조각을 새긴 삼각형 페디먼트와 원형돔이 눈길을 끈다. 이것들은 모두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 스타일로, 다쓰다 긴고가 지은 일본은행 본점에서도 비슷한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은행은 일본은행의 분신으로,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 제일은행, 한국은행, 조선은행, 다시 한국은행으로

 

1912년 이 건물이 들어설 때의 이름은 ‘조선은행 본점’이었다. 하지만 원래 1907년 착공 무렵에는 ‘제일은행 경성지점’이었다. 물론 이때의 제일은행은 일본의 제일은행을 말한다. 1905년 을사조약을 통해 통감부를 설치하고 한반도를 본격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한 일제는 서울에 일본 제일은행의 경성 지점을 설립하였다. 한 나라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돈줄을 쥐는 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1909년이 되면 제일은행 경성지점은 한국은행으로 이름을 바꾼다. 물론 이때의 한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마지막 숨을 몰아 쉬던 이름뿐인 대한제국을 가리켰다. 그러다 일제 강점 이후에는 조선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총독부의 직속 금융기관이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은행이란 간판을 되찾았지만 6·25전쟁으로 내부가 거의 파괴되었다가 겨우 복구되어 다시 중앙은행의 역할을 맡았다. 이후 1987년에 새로운 한국은행 본관이 들어서면서 구본관은 원형 그대로 복원 과정을 거친 후 화폐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내부의 포토존. 사진=구완회 제공


화폐박물관 내부의 모형 금고. 사진=구완회 제공

 

쉴 새 없이 차들이 지나다니는 요즘처럼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은행 사거리’는 바로 옆의 명동만큼이나 번화한 곳이었다고 한다. 한국은행 사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서울중앙우체국과 신세계백화점 본관 자리에는 일제강점기에도 중앙우체국과 일본의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지점이 있었다. 날렵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식민지 ‘모던뽀이’들이 활보하던 거리를, 지금은 출퇴근길의 직장인들과 명동을 점령하다시피 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다니고 있다. 

 

여행정보

▲위치: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39

▲문의: 02)759-4114

▲관람 시간: 10:00~17:00(월요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항공사 직원도 헷갈리는 항공권 가격의 비밀
· 은산분리 규제완화 안갯속 윤곽 드러나는 '제3 인터넷은행'
· [아빠랑] 서울 속 '남의 문화유산답사기' 이슬람 중앙성원
· [아빠랑] '문관 출신 대장군' 강감찬 생가 터, 낙성대
· [아빠랑] '국부' 묻힌 독립운동 성지, 효창공원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