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부동산 규제 그물망을 넓히고, 구멍을 촘촘하게 다시 짜기로 했다. 일부 부동산 정책이 의도와 달리 투기를 조장하고 매물 잠김 현상을 유발한다는 진단에 따른 조치다. 규제 허점을 파고든 편법 역시 성행하는 만큼 메워야 할 틈은 더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입길에 오르는 부동산 정책은 ‘임대주택등록 활성화 방안’이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음지에 있던 주택 임대사업자들을 관리할 수 있는 범위로 끌어들이고, 세입자 주거 환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마련했다.
다주택자가 지방자치단체에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최대 8년 등 의무 임대기간을 가져야 한다. 임대료도 1년에 5% 이상 올리지 못한다. 민간 임대주택 등록을 늘려 공공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세입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사업자에겐 유인책으로 취득세, 재산세, 지방세,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건강보험료 등 ‘종합 세제혜택’을 주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정부 부동산 규제로 부담이 늘어난 양도세 중과와 종부세 합산이 배제되는 혜택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4월 정책이 시행된 후 임대주택 사업자가 늘기 시작했다. 8월 기준 임대사업자 수는 33만 6000여 명으로 지난해 말 26만여 명보다 30%가량 늘었다. 등록한 임대주택도 85만 가구에서 117만 6000여 가구를 넘어섰다.
# 거꾸로 가는 임대주택등록 활성화 방안
그런데 시장 분위기가 정부 취지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임대사업자 세제혜택이 파격적인 만큼, 집을 더 많이 사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한 금융사 부동산 연구원은 “다주택자들이 보유하던 집으로만 임대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세제혜택을 노리고 추가로 집을 더 사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투기 열기를 식히고 주택 시장을 안정하려는 정부 정책과 반대의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임대사업자 대출에도 허점이 발견된다. 현재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일반 실수요자는 집값의 40%까지만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고 세대당 1건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임대사업자는 투기과열지구에서 최대 80%까지 돈을 빌릴 수 있다. 가구당 1건 제한도 없고 5년, 10년 거치도 가능하다.
임대사업자 대출은 주택을 담보로 하지만, 사업자를 위한 기업대출로 분류된다. 기존 임대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집을 더 살 수 있다. 이 방식대로라면 현금이 부족한 사람도 임대사업자 등록을 조건으로 서울 강남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할 수 있다. 인터넷 부동산 카페 등을 통해 이와 같은 방식이 퍼지면서, 일부 다주택자들이 제도 허점을 이용해 집을 산다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임대사업자 활성화 방안은 부동산 시장 매물이 줄어든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한 번 사업자로 등록하면 최대 8년까지 세를 줘야 하는 조건 때문이다. 강력한 정부 부동산 정책으로 거래가 줄어든 상황에서 매물이 더 잠기는 바람에 매도자 우위 시장이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고가로 맺어진 몇몇 계약이 그대로 그 지역 집값으로 굳어져 집값 상승의 빌미가 됐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 투기 위한 실탄 확보 ‘이상 무’ 편법, 우회대출 속속 드러나
다른 구멍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신용대출과 전세대출 등이 투기를 위한 ‘실탄’이 된다는 지적이다.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풍선효과로 다른 대출이 늘었고, 이에 따라 주택 시장이 과열된다는 얘기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을 보면 2분기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681조 7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조 8000억 원(8.1%) 증가했다. 마이너스통장, 상업용 부동산담보대출, 주식담보대출을 모두 포함하는 ‘기타대출’도 늘었다. 2분기에만 은행권(6조 8000억 원), 비은행권(3조 원) 기타대출이 전 분기보다 총 10조 원 늘었다. 금융권에선 전례 없이 짧은 시간에 대출이 급증한 만큼, 이 자금들이 주택거래에 쓰이는 것으로 추정한다.
우회대출로 시장에 풀린 자금들이 주택 구입에 쓰이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일명 ‘갭투자’가 대표적이다. 다주택자들이 전세대출을 받아 전세로 살면서 현금을 더 얹어 집을 사는 방식이다. 집을 여러 채 갖고 있어도 전세대출을 받는 데는 제한이 없다. 이자만 갚는 방식으로 돈을 빌릴 수 있고, 은행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적용받지 않아 자금 운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가짜 전세계약서 작성도 허점을 파고든 대출 방법이다. 은행들이 확정 날짜와 계약서만 있으면 돈을 빌려주는 것을 악용한 꼼수다. 실제 거주하지 않으면서 전세대출을 받은 뒤, 이 자금을 주택 구입에 활용하는 식이다.
부동산 정책 가운데 압박 수위가 가장 높은 것으로 꼽히는 ‘양도세 중과’에서도 부작용이 나온다. 1주택자는 한 채라도 집을 더 사면 다주택자가 되지만, 3년 안에 기존 집을 팔면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있다. 조건만 맞추면 기존 주택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양도 차익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하지만, 요즘 같은 시장 흐름이면 세금을 감안해도 단기에 만족할 만한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가격 급등 지역으로 옮겨 다니며 집을 사고파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집값을 올려 신고하는 ‘업계약’도 양도세 중과의 부작용이다. 가격을 올려 신고하면 취득세가 올라가지만 양도세 부담은 낮아진다.
# 부동산 정책 다시 손질하고 압박 수위 높이는 정부
이에 따라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손질하기로 했다. 압박수위도 더 높아진다.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금융 혜택 축소가 첫 번째다.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임대사업자에게 주는 세제혜택이 과한 부분이 있다”며 “투기꾼에게 과도한 선물을 준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혼란은 적지 않다. 정책을 8개월 만에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매달 임대주택 사업자 등록 추이를 발표하며 정책 효과를 강조해온 만큼 충격은 더 컸다.
정부는 시장 과열 지역에 새로 집을 산 뒤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는 경우에 한해 혜택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임대주택에 양도소득세 혜택을 축소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다. 기존에 갖고 있는 주택을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는 경우는 제외된다.
1가구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일시적 1가구 2주택 양도세 면제 제도 개편 역시 검토 중이다. 정부는 현재 실거주 요건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일시적 1가구 2주택자 양도세 면제 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의 양도세 중과를 피해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며 집을 사고파는 방식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금융당국도 고강도 단속에 나선다. 전세·임대사업자 대출 점검이 우선순위에 올랐다. 전세대출을 활용해 ‘갭투자’를 하거나 사업자대출을 주택 구입에 사용하는 사례가 대상이다. 전세대출을 받은 경우 자금 목적과 취급 내용을 분석해 우회대출에 활용됐는지도 점검한다. 그 밖에 국세청도 지난해부터 이어온 부동산거래 탈세 혐의자에 대한 기획세무조사 범위를 더 넓힐 방침이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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