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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나는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마신다

'애주가'는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취향을 알고 마시는 사람

2018.09.03(Mon) 13:47:07

[비즈한국] 요즘 싱글 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y) 맛에 빠진 남자들이 늘었다. 퇴근 후 한잔 마시는 걸 낙으로 삼는 이들도 꽤 있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선택하는 남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스키가 가진 향과 맛을 음미하며 퇴근 후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것이다. 

 

친구와 어울려 위스키바에 가더라도 천천히 마시며 대화하는 것이 목적이지, 빨리 마셔서 취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미식가는 배부르려고 먹는 게 아니라 맛과 식감과 향기 등 풍미를 음미하려고 먹는다. 이제 애주가도 마찬가지다. 많이 먹고 취하는 게 애주가가 아니라, 술 맛 자체에 주목하며 마시는 게 애주가다. 

 

폭탄주 문화가 사라지면서 블렌디드 위스키의 소비량은 줄었지만, 싱글 몰트 위스키의 판매량은 오히려 늘었다. 사진=Glen Garioch

 

과거에는 룸살롱 문화, 폭탄주 문화 때문에 위스키 소비가 급증했었다. 하지만 접대문화와 회식문화의 쇠퇴로 상황이 달라졌다. 국내 위스키 판매량은 2008년 정점을 찍은 후 하락을 시작해 2017년까지 9년 연속 감소했다. 9년간 무려 44.5% 감소니까 반 토막이 난 셈이다. 감소세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전체 위스키 판매량과 달리 싱글 몰트 위스키 판매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 특히 18년산 이상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이러다보니 최고급 싱글 몰트 위스키의 품절 현상까지 나타났다.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Scotch whiskey) 시장에서 싱글 몰트 위스키는 5% 정도에 불과하다. 이 귀한 걸 폭탄주로 마셔선 안 되는 것이다. 

 

100% 보리(맥아)만 증류해 만든 위스키를 몰트 위스키라고 하고, 하나의 특정 증류소에서 나온 걸 싱글 몰트 위스키라고 한다. 위스키도 어떤 지역의 어떤 품종의 보리를 쓰는지, 증류소가 어느 지역에 있고 어떤 전통을 가졌는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다 다르다. 위스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에선 100년 넘은 증류소만 110개 정도 된다. 즉 110가지 향과 맛을 가진 고유의 싱글 몰트 위스키가 있다는 것이다. 증류소별 역사와 스토리도 술맛의 한 요소가 된다. 위스키는 숙성된 햇수에 따라서도 향과 맛이 다르다. 오래된 위스키는 숙성과정에서 일부가 증발로 사라지다보니 오래될수록 양은 적다.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기에 더 음미하며 마신다.

 

위스키는 블렌디드 위스키와 싱글 몰트 위스키로 크게 나누는데, 한국인이 먼저 받아들인 위스키가 블렌디드 위스키다. 블렌디드(blended) 위스키는 여러 증류소의 위스키를 섞어서 만든다. 일반적으로 스카치 블렌디드 위스키에는 싱글 몰트 위스키가 30~40% 들어가고, 그레인 위스키가 60~70% 들어간다. 싱글 몰트 위스키가 보리 한 가지만 사용하는 것과 달리, 그레인 위스키는 밀, 옥수수 등 여러 곡물을 사용한다. 증류방식과 숙성방식도 다르고, 숙성통도 다르다. 생산량도, 맛도 향도, 가격도 당연히 다르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마실 때도 얼음 없이 술 자체를 천천히 음미한다. 술이 너무 독해서 물을 약간 첨가할 순 있어도 가급적 희석하지 않고 마시길 권하는 술이다. 반면 블렌디드 위스키는 샷 글래스로 소량을 한 번에 마시거나, 얼음을 타서 마시거나, 폭탄주를 만들듯 섞어 마신다. 우리의 폭탄주 문화에서 일조한 게 바로 블렌디드 위스키였다. 

 

애초에 두 술이 가진 차이가 있다보니 마시는 방법도 다르고, 각자 어울리는 술잔도 다르다.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로는 발렌타인, 조니워커, 듀어스 등이 있는데 주로 창업자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좀 더 대중적인 위스키 브랜드이자 글로벌 주류회사가 많다.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드로는 글렌피딕, 글렌리벳, 글렌드로락, 벤리악, 아드벡, 아란, 스프링뱅크 등이 있는데, 대부분 증류소 이름이다. 증류소 이름은 증류소가 자리한 지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통과 장인정신, 완성도와 고급을 지향한다.

 

위스키의 고향 스코틀랜드에선 100년 넘은 증류소만 110개 정도. 즉 110가지 향과 맛을 가진 고유의 싱글 몰트 위스키가 있다. 사진=Glen Garioch

 

와인 문화가 확산되면서 어느 나라, 어떤 와이너리, 어떤 품종의 포도 등을 따져가며 자기 취향엔 어떤 게 잘 맞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뭘 좀 아는 사람으로 보였듯, 싱글 몰트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이제 자기 취향에 맞는 싱글 몰트 위스키가 어떤 증류소의 몇 년산 제품이며, 어떤 향과 맛에 끌리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적어도 애주가라면, 어디 가서 자기 취향에 맞는 술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와인이건 싱글 몰트 위스키건, 수제맥주나 막걸리건 말이다. 취향의 고급화가 아니라, 취향의 보편화다. 과거엔 비싼 물건에만 취향을 반영되었다면, 이젠 싼 물건에도 취향이 반영될 만큼 취향은 보편적 화두가 되었다.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마셔야 취향 좋은 게 아니라, 적어도 자기 입맛에 맞는 술을 제대로 알고 음미하면서 마신다면 누구나 취향 좋은 애주가가 될 수 있다. 확실히 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뀔 수밖에 없다. 이제 술은 조연이다. 당신의 사색이, 당신의 대화가 주연이다. 당신은 어떤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마시는가?​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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