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국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밋업(Meetup)’이 활발히 열리는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사업자와 투자자 간 소통 행사로 출발했던 밋업이 사실상 투자 설명회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허위정보와 과장 광고 등을 바탕으로 투자금만 챙기는 경우도 적지 않아 주의가 요구된다.
밋업이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을 말한다. 가벼운 독서 모임과 같은 취미 활동부터 사교·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열리지만, 최근엔 사업과 관련된 간담회, 설명회를 뜻하는 말로도 자리 잡고 있다.
간담회나 설명회 성격의 밋업은 특히 스타트업, IT 업계가 적극 활용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이나 기술 개발에 도전하는 만큼, 경쟁은 뒤로 미루고 일단 경험과 고민, 정보와 아이디어 등을 공유해보자는 취지에서 모이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간단한 오프라인 모임 또는 간담회 형태로도 진행된다.
투자자들과의 소통 창구로도 밋업이 열린다. 직접 개발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알리고, 질의응답 등을 진행하면서 투자자를 유치하는 사업 설명회 형태다. 공유 오피스텔과 서울 코엑스 행사장, 호텔 등에서 행사를 연다. 식당을 빌려 스탠딩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는 밋업도 있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사업 아이템을 외부에 소개할 통로나 기회가 적은 스타트업, IT 업체들 입장에선 (밋업이) 하나의 대안”이라며 “회사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 암호화폐와 투자자의 소통 창구, 밋업
암호화폐 업계도 밋업이 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설명회 형태의 밋업이 대부분이다. 암호화폐 관련 커뮤니티는 물론 포털사이트나 SNS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밋업닷컴이나 온오프믹스와 같은 밋업 중계 플랫폼에도 올해 초부터 매달 수십 개의 암호화폐 밋업이 등록되고 있다.
올해 초까지 불었던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발단이었다. 지난해 소수의 기존 암호화폐가 밋업을 열기 시작했고, 최근엔 ICO(암호화폐 공개) 시장으로 투자 관심이 쏠리면서 신규 암호화폐를 중심으로 밋업이 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개발된 암호화폐도 웬만하면 한국에서 밋업을 개최하려고 한다”며 “투자 열기가 식었어도 한국은 여전히 세계 암호화폐 시장의 큰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관심도도 높다. 주식과 달리 투자한 암호화폐의 정보를 더 알고 싶어도 업체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내용 외에는 확인할 방법도 없고 해외 암호화폐의 경우엔 업체와 소통도 원활하지 않은데, 밋업이 열리면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서다. 일부 신규 암호화폐는 모객을 위해 에어드랍(무료 암호화폐 배포) 등 이벤트를 열기도 해 투자자 입장에선 반가울 수밖에 없다.
# 노골적인 투자 유도, 허위 정보 우려도 높아져
문제는 밋업이 활성화되면서 부작용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자와 투자자의 소통이 아닌 노골적인 투자금 모집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비즈한국’ 취재과정에서 참석한 한 암호화폐 밋업에선 직접 개발했다는 암호화폐 기술 설명 대신, 현재 암호화폐 시세와 전망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화면엔 가상의 거래 그래프를 띄웠는데, 그래프의 화살표가 1년 뒤 1만 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소규모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이 코인의 가격은 밋업 당시 80원에 불과했다. 100배의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얘기였다. 다만 업체 관계자는 직접 수익률을 언급하거나 ‘약속’은 하지 않았다. 투자 설명회 성격의 모임에서 특정 수익률을 ‘약속’하면 현행법상 유사수신행위다.
이 암호화폐 업체 관계자에게 “기술 설명보다 투자 설명에 집중된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밋업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원해서 이러한 설명을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했다”며 “사전에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행사에서 어떤 내용을 듣고 싶은지 등의 질문을 설문 형태로 취합했다. 이것 역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암호화폐 개발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앞서의 해명에 일부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투자자들은 밋업에서 업체가 기술 소개보다는 ‘호재’가 될 만한 정보를 공개해주길 기대하고 참석한다. 확정된 내용이 아니어도 업체가 언급해주길 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행사 전후로 이런 정보들이 나오면 코인 가격이 급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1월 초 서울에서 열린 암호화폐 ‘이오스’의 첫 밋업이 대표적인 예다. 밋업 전날 1만 4000원이었던 시세가 하루 만에 2만 9000원으로 치솟았다”며 “당시 이오스 측이 공식 채널을 통해 ‘밋업에서 중대발표가 있다’고 공개했는데, 네이버나 넥슨, 넥센 등과 협업이 공개될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중대발표 내용은 단순 ‘에어드랍’에 불과했지만, 밋업 한 번으로 상당한 시세 차익이 생겼다”고 말했다.
허위 정보로 기술과 사업성을 과장하거나 홍보하기도 한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허위 정보는 외신을 통해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해외 블록체인 관계자나 업체가 강연자로 참석한다거나,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와 펀드, 금융사 등이 스폰서 등으로 참여한다는 내용이다.
참여하는 것으로 소개된 업체에 간단히 확인만 해도 사실 여부가 드러나지만, 버젓이 허위로 등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비즈한국’이 올해 8월까지 열린 암호화폐 밋업 홍보 게시물을 토대로 참여 업체로 소개된 50곳을 무작위로 선정, 확인한 결과 22곳이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한 암호화폐 밋업에 참석자로 소개된 IT업체 관계자는 “처음 들어본 업체다. 확인해보니 해당 업체가 밋업 전과 이후에도 관련 업체로 소개하고 있어 홍보 게시글 등을 모두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 금융사 관계자 역시 “금융사는 투자 설명회 성격이 있는 암호화폐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기술 설명을 허위로 꾸미는 사례도 있다. 지난 6월 서울 강남에서 열린 암호화폐 밋업에 참석한 한 투자자는 “개발한 암호화폐가 보안 수준을 강화했다고 강조하며 설명을 이어갔는데, 어디서 많이 본 문구가 보였다.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대한 사전적인 설명에서 주어만 암호화폐 이름으로 바꾸고 내용을 베껴온 것”이라며 “이를 알아본 투자자들이 항의하자 추후에 구체적으로 설명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행사가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이 투자자가 언급한 암호화폐는 밋업 이후 백서 등 문제가 되는 정보들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암호화폐는 투자에 따른 피해가 발생해도 보호받기 어려운 만큼, 투자자들이 꼼꼼히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물론 밋업에서 공개되는 정보를 통해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며 “투자자들 입장에선 호재가 되는 이벤트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백서에 명시된 기술을 공개하는지, 설명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하는지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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