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실업률 악화와 소비 둔화로 소득 주도 성장에 제동이 걸린 문재인 정부가 연일 혁신 성장을 내세워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정부는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의 사상 첫 20조 원 돌파 등 을 통해 혁신 성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증액 수준은 미미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R&D 사업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각 부처에 20개 가까이 난립한 상태여서 이에 대한 정비부터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8배가 넘는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R&D 담당 기관은 6개 정도에 불과한 미국의 R&D 정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미국의 관세 전쟁 선포 등 각종 대내외 악재에 실업률과 물가가 치솟고, 소비가 둔화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 주도 성장이 공회전을 하고 있다. 경제 성적표가 나빠지자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다.
15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8월 3주차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5%포인트 내린 55.6%를 기록하며 취임 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민주당 지지율은 37.0%를 기록하면서 40%대가 무너졌다. 최근 지지율 하락이 경제 악화에 따른 것임을 느낀 정부는 연일 혁신 성장을 내세우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문 대통령은 16일 여야 5당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혁신 성장을 위한 규제 개혁 법안의 국회 처리에 의견을 모았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혁신 성장을 위한 예산 지원 방향을 제시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내년도 R&D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2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며 “인공지능(AI)과 빅 데이터, 수소경제, 블록체인, 공유경제 등 4~5개 분야의 플랫폼 활성화와 핵심인력 양성에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처럼 혁신 성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혁신 성장의 두 축으로 내세운 규제 개혁과 R&D 예산 증액 모두 만나게 될 걸림돌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규제 개혁은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진보진영의 반발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에 정의당이 규제 개혁 입법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도 소극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독자적으로 혁신 성장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것은 R&D 예산 증액인데 이것도 제대로 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김 부총리는 내년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20조 원을 넘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올해 R&D 예산이 19조 6000억 원이라는 점에서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보존과 각종 복지 정책 등에 예산의 대거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R&D 예산 증액은 20조 원 돌파라는 상징성을 보여주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정부의 R&D 관련 기관들이 난립한 상황에서 설령 예산을 늘린다고 해도 효율적인 투자가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의 R&D 사업을 기획 관리하는 기관들은 현재 12개 부처·청 산하에 19개나 된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연구재단,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에너지기술평원,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콘텐츠진흥원,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저작권위원회,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등 R&D 기관을 두고 있다.
이처럼 많은 기관들이 20조 원 가량의 R&D 예산을 나눠서 관리하다 보니 예산 규모가 500억 원도 안 되는 기관이 적지 않고, 부처 간은 물론 부처 내에서도 투자 중복과 혼선이 벌어지는 등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박근혜 정부 말 4차 산업혁명을 놓고 각 부처가 R&D 기관들을 통해 연구 용역을 경쟁적으로 벌이면서 혼란이 벌어진 바 있다.
일각에서는 혁신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술과 기업이 가장 많이 탄생하는 미국의 R&D 정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올해 R&D 예산은 1496억 달러(약 169조 원)으로 우리나라 예산의 8배가 넘지만, R&D를 담당하는 기관은 국립항공우주국(NASA), 국립과학재단, 국립정보청, 원자력규제위원회, 환경보호청, 국립보건원, 총 6개에 불과하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미국 R&D 기관들은 부처와 상관없이 운용되기 때문에 부처 간 견제나 중복투자 등의 문제가 벌어지지 않는다”며 “기업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 혁신 성장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부 R&D 투자 예산을 더 늘리는 한편 R&D 기관의 부처 독립 및 통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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