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해 2월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독살됐다. 형제간 권력 암투로 벌어진 사건이다. 첫 단독보도가 전해지자 전 세계가 들썩였다. 특종 중의 특종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를 최초 보도한 매체는 세계 유력 언론이 아니었다. 특종의 주인공은 일본의 미디어 스타트업, ‘JX프레스’로 타 매체보다 38분 빨랐다.
2008년 설립된 JX프레스는 언론사지만 기자가 없다. 직원 수는 스물네 명. 그 중 열일곱 명이 프로그래밍 개발자고 나머지는 경영을 책임진다. 해외특파원은 물론이고 기자도 없는 매체가 세계적인 특종을 낚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난 13일 ‘비즈한국’은 일본 도쿄 JX프레스 사무실에서 카츠히로 요네시게 대표(29)를 만나 그 비밀을 풀어봤다.
카츠히로 요네시게 대표는 취재력이 뛰어난 기자를 양성하는 대신 10년에 걸쳐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그가 만든 AI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를 비집고 다니며 정보를 수집한다.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를 분석해 소위 ‘단독’ 정보를 찾으면 보고서를 작성한다. 요네시게 대표는 이를 확인하고 기사로 내보낸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닙니다.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일어난 일을 카메라로 찍고 SNS에 올립니다. 119나 방송국에 신고하는 것보다 먼저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정보를 얻고 보도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잘못된 정보를 99% 거를 수 있습니다. 여러 포스팅을 통해 크로스체크하기 때문이죠.”
최근 화제인 BMW 차량 화재를 본 사람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고 치자. 하나의 포스팅만으론 사실이라 단정하긴 어렵다. 허위정보일 가능성도 있다. 같은 장소에서 불타는 BMW 차량 모습을 담은 포스팅이 두 개, 세 개 혹은 그 이상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이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고 신뢰할 수 있다. JX프레스 AI 알고리즘의 필터링 원리다.
요네시게 대표에 따르면, AI 알고리즘은 SNS 포스팅에 담긴 글자, 사진은 물론 느낌표까지 해석한다. 사진 속 표지판까지 읽어내기 때문에 사건 발생 지역을 밝혀낼 수 있다. 또 딥러닝 기술까지 탑재돼 스스로 학습하며 ‘필터링’ 정확도를 높인다.
실제로 일본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누군가가 동물원을 탈출해 도심을 활보하는 사자 사진을 SNS에 올렸다.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동안 JX프레스의 AI는 사진 속 동물이 도심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찍힌 호랑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딥러닝을 통해 인터넷에 흩뿌려진 정보를 취합하고 비교해 거짓 정보를 바로잡는 일도 가능한 것이다.
JX프레스는 이 기술을 활용해 두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첫째는 ‘뉴스다이제스트(NewsDigest)’라는 무료 애플리케이션(앱)이다. 뉴스다이제스트는 속보, 지진, 사회, 정치, 비즈니스, 국제, 스포츠, 테크놀로지, 맛집, 엔터테인먼트, 철도정보 등 11개 항목의 뉴스를 큐레이션(선별·배치)하는 플랫폼 앱이다. 자체 밸류 판단 시스템을 통해 타 매체의 보도를 가져와 배치한다. SNS를 통한 기사 ‘팩트체킹’이 특징이다. 정보 정확성을 높여 독자의 신뢰를 구축한다.
이 앱의 일본 내 인기가 상당하다. 지난 1월 기준 전년 대비 서비스 이용률이 613% 증가했다. 뉴스다이제스트는 지난 5월 일본 애플스토어에서 뉴스 앱 부문 8위를 차지했다. JX프레스는 기업 광고를 받지 않는다. 조회 수가 높아 구글 애드센스 광고로 충분한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요네시게 대표는 “기업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실제로 구글 애드센스 광고만 활용하는 것이 이득”이라며 “기업 광고와 구글 광고 수익을 따져봤을 때 비슷하다. 하지만 기업 광고는 언제 얼마나 수익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구글 광고는 예측 가능하고 일정한 수익을 준다”고 답했다.
두 번째 서비스는 ‘재난경보(FastAlert)’다. B2B(Business to Business) 모델이다. SNS를 활용해 지진, 화재, 홍수 등 자연 재난 정보를 신속히 감지한다. 획득한 정보를 NHK, 아사히TV, 후지TV 등 일본 방송사에 구독 제휴를 맺고 제공한다. 비밀에 부쳐진 구독료 수입은 JX프레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SNS 포스팅이 일본 정부의 재난 감지 시스템을 능가할 수 있을까 싶지만 효과는 정보를 받아보는 고객에 의해 검증되고 있다.
코이치로 니시 아사히TV 부편집국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2016년 11월 도입한 JX프레스의 재난 경보 시스템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이 됐다. 이를 활용하면 경찰이나 소방청 공식 발표보다 먼저 재난을 감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요네시게 대표의 말이다.
“사실 일본 소방청은 각 현(우리나라의 도에 해당)에서 자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재난 정보 취합이 쉽지 않습니다. 신고를 받고, 그 내용을 정부 부처가 확인하고 공표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이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또 정부 부처라고 하더라도 사고 발생 지역의 신고자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죠. 지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패스트 얼럿(FastAlert, 재난 경보 시스템)이 더 빠른 이유입니다.”
요네시게 대표는 중고등학교 시절 항공 관련 기사를 관련 매체에 지속적으로 기고하면서 언론사 생태계를 알게 됐다. 당시 그는 자체 수익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혁신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교 1학년 때 창업해 결국 AI 개발을 통해 기자가 없는 언론사를 만들어냈다.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니 일면 섬뜩하다. 요네시게 대표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기자의 모든 역할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AI는 사람(기자)의 취재를 돕는 보조 수단일 뿐입니다. AI는 정보를 찾아내 전달하는 데에 뛰어납니다. 하지만 정보의 의미를 연결하는 건 인간의 몫이죠. AI가 정보 너머의 스토리나 감정을 읽진 못합니다. AI가 찾아낸 불완전한 정보를 기자가 탐사보도하는 식으로 활용할 수는 있죠. 사업 면으로 봐도 AI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에 도움은 되지만 결국 수익을 극대화하는 건 인간입니다.”
JX프레스가 풀어가야 할 숙제도 있다. SNS 운영 방침 변화에 따라 변수가 생긴다. 최근 인스타그램이 일본 내 포스팅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현재는 트위터만 활용해서 정보를 얻는다. 요네시게 대표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리스크가 있지만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현재 트위터와 제휴를 맺은 상태로, 이전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는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네시게 대표는 뉴스다이제스트를 뉴스 소비자 간 뉴스를 공급하는 플랫폼으로 만들 계획이다. ‘소셜미디어 플랫폼 리스크’를 떨치기 위한 방안이다. 소비자가 SNS에 포스팅하듯 정보를 올리면 JX프레스가 검증을 통해 뉴스로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해, SNS와 뉴스 플랫폼이 합쳐진 형태다. 요네시게 대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편 JX프레스는 2021년까지 상장을 목표로 하며, 현재 일본 대형 언론 니케이의 벤처투자사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과 사이버에이전트벤처스 등에서 투자를 받았다.
일본 도쿄=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
"유선생님한테 배워요" 학생·직장인 유튜브 학습 삼매경
·
'차이나조이'에서 본 중국 게임산업의 두 가지 성공비결
·
[공원국의 천지인] 에너지 정책에 '정치적 비전'이 필요한 이유
·
[인디아 프리즘] 인도 대국굴기 시대, 양국협력은 선택 아닌 필수
·
영상▶비발디파크 오션월드 저류지에 쏟아지는 '색다른 물' 미스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