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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에너지 정책에 '정치적 비전'이 필요한 이유

최상의 안전·경제·민주적 기준 만들고 그 위에서 미래를 바라봐야

2018.08.17(Fri) 09:10:50

[비즈한국] 시인 소동파는 이렇게 읊었다. “앞을 보면 능선이요, 고개 돌리면 봉우리(橫看成嶺側成峰), 원근고저따라 모습이 달라지네(遠近高低各不同).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함은(不識廬山眞面目), 이 몸이 산중에 있기 때문(只緣身在此山中).” -‘제서림벽(題西林壁)’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사물의 모양이 계속 바뀌니, 현실 속에서 객관적이고 원대한 시야를 가지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가장 나은 길은 오로지 꼭대기로 오르는 것이다.

 

영어 사전에서 ‘비전(vision)’을 검색하면 시력·시야, 환상, 예지몽 순으로 나온다. 그것은 미래에 일어날 변화까지 감안한 광대한 시야, 즉 인류의 창의적인 소망이다. 인간 외의 만물에도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여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 조로아스터의 희망, 살육을 완전히 배제한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 석가모니의 희망 등을 비전이라 부를 수 있다. 

 

흔히들 대체에너지는 비싸다고 말하지만, 최대 20년 안에 원자력과 태양전지의 발전단가가 거의 1:1로 수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비전은 오늘날 경제·경영학에서 이야기하는 프로젝션(projection, 예상치)과는 다르다. 프로젝션은 현재의 모습을 미래에 투사한 것이므로, 앞으로 일어날 변화들을 감안하지 않는 단선적인 시선이다. 몸은 여전이 산중에 있으므로 앞으로 보이는 모습(예상치)은 계속 달라진다.

 

경제학계에서 비전이라 할 만한 이론의 대표격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공산주의의 비전은 악몽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 이론은 시장과 인간의 욕망을 무시한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공산주의를 실험한 러시아와 중국은 하나같이 인위적인 대기근을 겪었다. 

 

필자에게 공산주의 정권들이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라면 ‘고통의 민주주의’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소련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이들을 거대한 돼지우리 같은 수용소에 넣어 관리했고, 중국은 주기적으로 대규모 숙청을 단행했다. 

 

인류는 사회를 이룬 직후부터 기근으로부터 종을 보존하기 위해 배고픔을 나눴다. 이것이 고통 나누기, 즉 고통의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탈을 쓴 전제주의는 사상이나 계급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고통을 줘도 된다는 ‘고통의 전체주의’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단행했다. 전제정권과 방향을 달리하는 이들은 죽어도 그만이었다. 비전이 권력의 집중과 결합되면 통제할 수 없는 광기를 낳는다. 

 

그렇다면 고통의 민주주의와 인류의 미래를 결합한 새로운 비전의 경제학을 꿈꿀 수는 없는 것일까? 

 

에너지 분야로 한정하여 비전을 상상해보자. 인간에게 안전하고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인 에너지가 바로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의 에너지다. 하지만 가장 먼저 고려할 요소는 다시 한 번 고통의 민주주의다. 고통의 민주화 면에서 최악이 바로 위험하며 생산과 폐기에 대규모 시설 집중이 필요한 에너지 생산 방식, 즉 원자력이나 화석연료를 쓴 방식들이다. 

 

석유나 가스는 태생적으로 비민주적인데, 중동 등 특정 지역에 매장량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없는 나라는 있는 나라로부터 사들여야 하기에, 구매 시나 판매 시나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는 수단이 되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소위 대체 에너지가 고통의 민주화 측면에서 희망적이지만, 흔히들 대체에너지는 비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말 대체에너지는 비경제적일까? 영국의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가 2015년을 기준으로 20년을 프로젝션한 결과에 따르면 육상풍력발전:대규모 고정식태양광:원자력:석탄 발전의 단가는 1:1.3:1.5:2.3 정도다. 환경 요인까지 고려하면 20년 내에 이미 대체에너지가 더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프로젝션 결과는 훨씬 보수적이지만 그 역시 20년 안에 원자력과 태양전지의 발전단가가 거의 1:1로 수렴할 것이라 예상한다. 물론 육상 풍력발전은 원자력보다 훨씬 저렴하다. 앞으로 우리가 고려하는 요소가 늘어날수록 대체에너지의 가격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누구도 전력 소비의 핵심지인 서울이나 도쿄 한복판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려 하지 않는다.  2011년 4월 12일 지진과 쓰나미 여파로 붕괴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진=AP/연합뉴스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민주적인 미래의 에너지를 원한다면, 현재의 좁은 시야를 극복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예컨대 전력 부족이 예상되기만 하면, 민주적인 통제권 밖에 있는 이해당사자들은 원자력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비용을 떠나 고통의 민주주의에 정반대되는 ‘에너지 전체주의’의 전형이다. 

 

지금 일본 후쿠시마의 주민들과 생태계 전체가 받는 고통을 보상할 방법이 있는가? 누구도 전력 소비의 핵심지인 서울이나 도쿄 한복판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려 하지 않는다. 정말 안전하다면, 그리고 ‘위험의 민주화’를 가정하면 이용자들에게 가까운 곳에 발전소를 세우는 것이 정당하다. 

 

에너지 정책은 정치적인 비전이 필요한 문제다. 비전은 기술자 몇몇이 독점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더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희망을 모으고, 일견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변수들까지 포용하여 가장 높은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 기준 위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 그것이 바로 비전이다.

 

필자 공원국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생활·탐구·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십 수년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이제 유라시아 전역으로 탐구 범위를 넓혀, 현재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춘추전국이야기 1~11’, ‘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유라시아 신화기행’,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 다수가 있다.

 

이 연재에서는 먹고 살아가는 행동(경영)을 하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천(天)/지(地)/인(人) 세 부분으로 나눠, 고전을 염두에 두고 독자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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