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어느 날 마트에 갔다가 유리창 속에 갇힌 로봇팔을 목격했다. 이 로봇팔의 정체는 ‘로봇 바리스타’다. 호기심에 키오스크로 다가가 음료 가격을 봤다. 가격이 비쌌다면 발길을 돌렸겠지만 다행히 가격도 괜찮았다.
아메리카노는 2000원, 라떼 류는 2500원. 나는 키오스크를 더듬거리며 힘겹게 아이스 라떼를 주문했고 내 소중한 돈을 삼킨 탐욕스러운 로봇 팔은 굉음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흠…. 굉음은 내 착각인 것 같다. 약간의 모터 소음은 있었지만 크지는 않았다.
로봇팔은 정해진 각도로 정확하게 움직였다. 최첨단 제품을 조립해야 할 정밀 기계가 겨우 커피 따위나 만들고 있으니 오버테크놀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도 고스펙 신입사원들에게 커피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던가? 죄책감이 좀 덜어졌다.
로봇팔은 빈 컵에 얼음을 담고 전자동 커피머신 아래에 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전자동 커피머신의 버튼을 눌렀다. 우유가 내려오고 잠시 후에 에스프레소가 담기며 아이스라떼가 완성됐다.
이 로봇 바리스타를 폄하하자면 컵을 이동시켜주고 전자동 커피머신의 버튼을 누르는 단순한 기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든 기술의 시작점은 어설픈 법이다. 무서운 것은 기술의 가속력이다. 지금 수준에서도 충분히 신기했고 구경거리로 부족함이 없었다. 내 옆의 사람들도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커피는 이미 완성됐지만 로봇팔은 뭔가 생각에 빠진 듯 한참 기다렸다. 아마 눈이 없어서 에스프레소가 다 내렸는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시간을 기다리도록 프로그램 된 듯하다. 로봇의 멱살을 잡고 싶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커피를 옮겨 내게 주었다.
내 인생 최초로 로봇이 만들어준 커피를 맛봤다. 맛은 어땠을까?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맛 평가는 마지막에 밝히겠다. 인간이 쓰는 글의 단점은 이런 거다. 기계가 쓰는 글과는 달리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고 빙빙 돌려 사람 약을 올린다. 미안하게 됐다.
내가 경험한 로봇 바리스타는 ‘달콤커피’라는 브랜드가 내놓은 ‘비트(B;eat) 카페’라는 전자동 카페다. 7월 기준으로 한국에서만 16개 장소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 로봇 카페의 가격은 1억 원 정도라고 한다. 달콤커피는 보증금 30%(약 3000만 원)를 내고 월 190만 원의 임대비를 48개월간 내는 임대 사업을 진행 중이다. 7㎡(약 2평)의 공간만 있으면 이 신기한 로봇 카페를 오픈할 수 있다.
다만 청소와 원두, 우유 채우기 등은 사람이 해줘야 한다. 대신 알바비를 주지 않아도 된다. 밤새워 일을 시켜도 노동법에 저촉되지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 알바비를 주려고 일용직을 뛰지 않아도 된다. 점주로서는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만 있는 기술이 아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카페X’에서 비슷한 로봇팔이 열심히 커피를 만들고 있다. 보스턴에는 스파이스(Spyce)라는 로봇키친도 있다. 7개의 조리 로봇이 간단한 패스트푸드를 만들어댄다.
그 밖에도 보스톤의 ‘와우바우’, 샌프란시스코의 ‘이트사’ 등 다양한 로봇 식당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거라는 경고는 계속 있었지만 요식업계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요식업에서 로봇들의 활약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인간의 안전지대는 과연 어디일까? 그리고 로봇 바리스타는 인간 바리스타를 대체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아직까지 로봇 바리스타는 로봇팔과 전자동 커피머신의 결합에 가깝다. 인간 바리스타에게는 한참 못 미친다. 바리스타의 역할은 단순히 에스프레소를 내려 손님에게 커피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수준급 바리스타는 매일 아침 원두 상태를 점검해 댐핑 강도를 조절하고 에스프레소의 양을 적당히 조절해 쓴 맛과 산미를 조절해야 한다. 손님의 취향에 따라 농도를 진하게 하거나 연하게 하고 음료의 온도도 적당히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얼굴이 잘생기거나 예쁘면 단골도 늘어난다. 로봇팔에 무슨 색을 칠해도 로봇팔이 보고 싶어 그 카페에 가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1시간에 100잔 이상을 만들어야 하는 가혹한 상황에서는 로봇 바리스타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로봇 바리스타는 지치지도 않고 실수도 덜 하며 주문이 헷갈릴 일도 없다. 인공지능이 결합되고 음성 인터페이스가 도입되면 손님의 주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창조적인 메뉴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알고리즘을 세분화하면 손님 취향에 최대한 근접한 음료도 만들 날이 올 거다. 여기에 일본인들은 틀림없이 로봇팔에 커다란 눈과 긴 생머리를 달고 일류 성우를 고용해 달콤한 목소리로 주문을 받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빈둥대지 말고 어서 빨리 이런 로봇 바리스타를 개발했으면 좋겠다.
앞서 미뤄뒀던 맛 평가를 밝히겠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래의 맛’이었다.
요약하자면 쓰면서도 향이 없었다. 원두의 상태가 별로였든지 아니면 배합이 좋지 않았든지 이유는 모르겠다. 아니면 기술에 유독 엄격한 테크 리뷰어를 만난 게 불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맛이 없다고 기계 앞에서 중얼거려도 로봇 바리스타는 죄책감도 없이 나를 무시했다. 인간 바리스타가 그리워졌다.
필자 김정철은? ‘더기어’ 편집장. ‘팝코넷’을 창업하고 ‘얼리어답터’ 편집장도 지냈다. IT기기 애호가 사이에서는 기술을 주제로 하는 ‘기즈모 블로그’ 운영자로 더욱 유명하다. 여행에도 관심이 많아 ‘제주도 절대가이드’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지만, 돈은 별로 벌지 못했다. 기술에 대한 높은 식견을 위트 있는 필치로 풀어낸다.
김정철 IT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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