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고급차의 대명사인 BMW 차량의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사건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면서 또 다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지난 8일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며 “늑장 리콜 또는 고의로 결함 사실을 은폐·축소하는 제작사는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의 처벌을 받도록 제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영미법 국가에서 ‘불법행위자들의 이득이 손해를 배상하고도 남아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는 행위자가 저지른 불법행위의 양태가 폭력적이거나 악의적인 요소가 포함된 경우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입은 통상의 손해에 대한 전보(塡補, 부족한 것을 메워서 채움)의 범위를 초과해 배상을 명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는 개별법에서 일부 도입은 했지만 전반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는 않다.
‘디젤게이트’를 일으킨 폭스바겐의 사례를 보자. 당시 폭스바겐은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소비자 1인당 최대 1만 달러(약 1200만 원)를 보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총 보상금액은 미국의 경우 100억 달러(12조 원), 캐나다는 21억 캐나다달러(1조 9000억 원)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2016년 12월 국내에 등록된 모든 폭스바겐, 아우디 차량 소유자에게 100만 원 상당 쿠폰을 제공하기로 하는데 그쳤다. 동일한 사안임에도 법제도 미비로 인해 국내 소비자만 피해를 입은 셈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지난 몇 년간 소비자에 대한 대기업들의 횡포에 대해 ‘전가의 보도’로 언급되고 있다. 가까이는 2016년 크게 이슈가 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위에서 언급한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사건 등에서도 소비자 안전을 위해 도입논의가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제조물책임법이 개정돼 징벌적 손해배상이 2018년 4월부터 시행 중이다.
그 이전에도 하도급거래관계의 공정화를 위해 하도급법에서, 비정규직 차별방지를 위해 기간제법 등에서 도입되었지만, 실제로 일반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법률은 제조물책임법일 것이다. 제조물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는 그 범위가 넓고 피해자가 다수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BMW 화재사건도 제조물책임법을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여기엔 ‘함정’이 있다.
2017년 개정법에는 제조물 결함추정규정을 도입해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덜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용 대상을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은 경우’로 한정했다. 따라서 자동차와 같은 제조물에는 애당초 적용이 되지 않는다. 결국 전보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우리 법체계에 따라 이번 BMW 화재사건의 경우도 사고 당시의 시가에서 훼손된 자동차의 잔존가치를 공제하는 방법으로 산정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BMW 측의 늑장 대응도 이러한 제도미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차제에 제조물책임법을 개정해 제조물도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해배상액을 3배 이내로 제한한 것도 바꿀 필요가 있다. 가해자 입장에서 불법을 통해 얻는 이득이 3배 이상인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법원에서 재량으로 감액할 수도 있으므로 최소한 10배 이내로 개정하는 것이 구체적 타당성이 있다.
일반법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될 가능성이 희박한 현실에서 법원의 역할도 상당히 크다. 재산상 손해에 의해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 손해까지 발생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로 봐야 한다. 법원이 보다 전향적인 해석으로 피해자를 구제하고, 위자료를 산정할 때 징벌적 요소를 반영하는 것도 정의실현의 방편이 아닌가 싶다. 악의적인 사업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명하자는 것이다.
정치권은 거의 매번 사건이 터지고 다수의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나서야 개선책을 발표한다. 지난 4월에도 정부는 제천 스포츠센터와 밀양 병원 화재 때 비상구가 임의로 폐쇄되면서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건물주 등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정치의 최우선적인 책무는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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