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차 세계대전은 군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과 대전투가 즐비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수많은 대전투 중 일명 ‘임팔 작전’만큼 황당하고 처절한 전투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1944년 봄과 여름 동안 버마와 인도 국경에서 일본군이 진행한 이 작전은 그 계획의 무성의함과 무책임함이 세계 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인데, 가장 문제는 무더운 동남아 정글 한복판을 보급 없이 진격한다는 것이었다.
임팔 작전을 주도한 무다구치 렌야 장군은 보급이 부족하면 적을 공격해서 뺏어오고, 비행기나 자동차를 동원하는 대신 소나 말에 포탄을 싣고 가다가 포탄을 다 쓰면 가축을 식량으로 삼고, 심지어는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배가 고프면 전투식량 대신 정글의 풀을 뜯어먹으라는 믿기 힘든 지시를 내렸다.
사실상 보급계획 없이 병사가 혼자 들고 지고 옮길 수 있는 물자만으로 전선에 나선 일본군은 적과 제대로 전투를 할 수 없었음은 물론, 역사에 남을 엄청난 비전투 손실을 기록했다. 임팔 작전에 투입된 일본군은 제대로 된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보급 부족과 굶주림, 전염병, 악어 같은 맹수들과 무더위로 인한 열사병으로 파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도망갈 때 무기와 탄약은 고사하고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한다. 후퇴한 일본군은 다행스럽게도, 추격하는 영국군이 더위와 질병으로 죽은 일본군의 시체가 산을 이루자 전염병을 우려하여 추격을 멈추었을 정도였다. 보급과 환경을 경시한 작전의 말로는 이 정도로 참혹한 것이다.
군인의 정신력은 승리의 기본 조건이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가졌어도 정신력이 해이한 군대가 전투에서 패배한 일은 역사책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군인의 정신력은 물리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리적인 지원과 환경이 보장될 때 전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발휘하는 것이다. 가혹한 환경을 이기는 데 정신력을 쏟은 군대는 필패한다.
얼마 전, 한 신문사에서는 특이한 군 관련 기사가 등장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군 장병들과 장병 부모들의 감사 편지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장병들이 감사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재부 예산실이 작년에 군부대 에어컨 보급 사업을 추진하여, 전국 각지의 모든 군 생활시설에 에어컨 1만 7661대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용된 예산은 300억 원이 넘지만, 첨단 전투기 1대 가격보다는 훨씬 저렴한 수준에 전 장병의 건강 및 전투준비태세를 지킨 셈이다.
혹자는 전쟁이 터지면 더위든 추위든 가리지 않고 전쟁을 해야 하는 군인에게 ‘과보호’라는 지적이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른 테러와의 전쟁에서 휴식여건을 쾌적하게 조성하는 것이 전투 효율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런 교훈에도 우리 군의 더위나기는 여러 모로 부족하거나 아쉬운 점이 많다.
군복만 해도 그렇다. 국방부는 과거 2008년 95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야심차게 사계절 전투복을 만들었다. 동계용 전투복과 하계용 전투복을 하나로 통일하는 계획은 한국 환경에 맞지 않았고, 사용자들이 너무 덥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었다. 큰 고민 없이 미국이 사용하는 전투복 소재를 모방해서 생긴 문제였는데, 결국 2013년 과거 하계용 전투복과 같은 소재의 신형 하계 전투복을 보급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용자들이 땀 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어 2016년 12월 ‘동계 및 하계전투복 품질개선’ 사업을 추진했고, 2017년부터는 또 다시 개량을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존 하계 전투복보다 시원하면서도, 하계 전투복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낮은 강도를 보완하고 팔/무릎보호대가 군복과 일체형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무기의 냉각도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다. 적이 쏘는 방사포나 야포가 날아오면 그 궤도를 추적해서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대포병 레이더는 북한 장사정포를 막기 위한 필수 장비이다. 하지만 과거 한국군이 사용한 미국제 TPQ-37 대포병 레이더의 경우, 장기 사용이 불가능하여 방어에 허점이 생기고 고장이 빈발했다. 이런 문제는 연평도 포격사건 때도 발생하여, 결국 스웨덴의 사브(SAAB)에서 제작한 아서-K(ARTHUR-K) 대포병 레이더가 도입되면서 해결됐다.
우리 군의 최신형 전차인 K-2 흑표전차의 경우 국내 개발한 파워팩의 성능 부족과 고장 문제에 시달렸다. 파워팩의 냉각팬 속도제어와 냉각출력이 미달되어 더운 여름에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실전 배치된 K-2 흑표전차와 K-21 보병전투차는 에어컨이 달려 있어 다른 차량에 비해서 혹서기 작전에서 승무원들의 편의성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군 기갑차량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K-200 보병수송차량과 K-1E1, K-1A2 전차의 경우 화생방전을 위한 집단방호장비만 있을 뿐 에어컨은 없다. 화학전 때 차내에서 방독면을 쓰면 방독면에 공기를 주는 시스템으로, 더운 실내에서 원활히 전투하는 데 적합한 장비는 아니다. K-9 자주포도 수출형에만 에어컨이 달려 있다. 현재 보병부대가 사용하는 K-511, K-311 전술트럭은 물론 차세대 고기동차량도 보병 탑승구역에는 에어컨 설치 계획이 없다. 다목적 임무에 투입되는 차량의 특성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K-2 전차와 K-21 보병전투차의 가격이 비싸 추가 생산도 장담하기 어렵다.
다행히 K-21보다 가격이 저렴한 차세대 장륜장갑차인 K808 8륜장갑차의 경우 에어컨과 양압장비가 탑재되어 대량 전력화를 통해서 ‘에어컨 바람 쐬다가 내리는’ 보병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전투손실을 줄이고 병사의 전투준비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끝없는 개량과 연구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는 기계를 통해 내부 통풍 및 냉각이 되는 차세대 전투복을 연구하고 있다. 옷 안에서 냉난방장치가 작동되고, 이것이 동력 보조 외골격(Powered Exo-Skeleton)과 연결하여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실상 군복이 RTS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마린 유닛의 옷처럼 되는 셈이다.
비전투 손실은 전투를 통한 전투력 손실만큼이나 군에 매우 위협적이다. 단순히 장병 복지나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군인들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최상의 상태에서 전투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연교차가 60℃에 달하는 가혹한 한반도 환경에서 전투력을 보존하기 위한 심각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썬데이] '사랑할수록'으로 '부활'하는 비운의 천재보컬 김재기
·
[CEO 라이벌 열전] '동병상련 햄버거맞수' 롯데리아 남익우 vs 맥도날드 조주연
· [밀덕텔링]
전투력 뒷걸음질? '국방개혁 2.0'에서 진짜 중요한 것
· [밀덕텔링]
마린온 사고조사에 항공우주산업의 명운이 걸렸다
· [밀덕텔링]
FMS와 포세이돈을 위한, 당당한 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