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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미스터 션샤인' 고종의 아픔 서린 덕수궁 석조전

아이와 함께 서울에서 즐기는 '대한제국 역사 여행'

2018.08.07(Tue) 13:35:54

[비즈한국] 최근 문화재청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길을 ‘고종의 길’이란 이름으로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아관파천에서 돌아온 고종이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덕수궁(당시 이름은 경운궁)이다. 그리고 그 안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은 대한제국을 세운 고종의 뜻이 담겼다. 하지만 준공되던 해에 대한제국이 사라지는 바람에 한 번도 제 역할을 한 적이 없다. 일제강점기에는 ‘덕수궁 미술관’으로, 해방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이후 국립박물관과 현대미술관을 거쳐 마침내 제 모습을 되찾은 덕수궁 석조전을 아이와 함께 찾아보자. 

 

1970, 80년대 서울 강북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에게 덕수궁 석조전은 단골 사생대회 장소였다.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TV에서나 볼 수 있는 ‘르네상스식 석조 건축물’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소였으니. 더구나 당시 석조전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으니, 사생대회와는 썩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이었고, 석조전은 황궁의 정전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의 수립을 세계 만방에 알​리기 위해 덕수궁에 석조전을 짓기로 결정한다. 석조전은 1910년 완공되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고종이 석조전을 짓기로 결정한 것은 1897년, 세계 만방에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한 직후였다. 세계 만방에 선포했으니, 세계 만방에 부끄럽지 않은 건물이 필요했다. 이를 눈치챈 영국인 브라운이 고종에게 석조전 건축을 제안했고 고종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20세기를 전후해 영국에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양식에 따른 멋진 건물이 덕수궁에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이 완공되던 1910년,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 대한제국처럼 기구했던 석조전의 운명

 

준공과 동시에 용도상실. 이후로도 석조전의 기구한 운명은 지속되었다. 일제강점기 초기 10년간은 일본에 머물던 영친왕의 귀국 시 임시 숙소로 쓰이다가, 해방 전까지는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직후에는 민주의원 의사당으로,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UN 한국임시위원단 사무실로 쓰이다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가까스로 전쟁의 포화를 비껴간 석조전은 국립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관리국, 궁중유물전시관, 덕수궁사무소로 문패를 바꿔 달면서 건물 내부는 애초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그러다 2009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준공 당시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새 단장을 마치고 2014년 10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석조전 중앙홀에 대리석탁자가 놓여 있다. 사진=문화재청 덕수궁


석조전의 복원에는 옛날 사진과 설계 도면, 신문 기사 등이 이용되었다. 거기다 준공 당시 가구를 독점 공급하면서 인테리어까지 담당했던 영국의 메이플사의 오래된 카탈로그도 도움이 되었다. ​

 

현재 석조전에는 메이플사의 가구 41점이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중앙홀의 대리석탁자다. 이 탁자는 1911년 영친왕이 당시 국내외 유력인사들과 기념촬영을 할 때까지만 해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복원 전까지는 창덕궁 대조전에서 보관되었다. 

 

# 화강암 외관보다 더욱 화려한 황제 접견실

 

중앙홀에서 이어지는 접견실은 석조전에서 가장 화려한 공간이다. 금박으로 장식된 새하얀 열주가 도열한 가운데 화려한 황제의 보좌가 좌정했다.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이화문(오얏꽃무늬)이 가구와 인테리어 장식으로 활용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흔히 이화문이 일제의 의해 강요된 문양이라고 오해하지만, 이화문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태극기, 무궁화와 함께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다. 

 

석조전에서 가장 화려한 황제의 접견실.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이화문(오얏꽃무늬)을 가구와 인테리어 장식으로 활용했다. 사진=구완회 제공


중앙홀, 접견실 등과 함께 1층에 자리 잡은 대식당은 서양식 코스 요리를 제공했다고 한다. 지금도 길다란 테이블 위에는 영국 스타일의 식기를 이용해 대한제국 시기의 서양식 만찬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2층에 있는 황제와 황후 침실은 사진 자료 대신 메이플사의 100여 년 전 카달로그를 참고해 복원했다. 화려한 레이스의 커튼이 달린 침대와 ‘EMPEROR’S BEDROOM(황제의 침실)’이란 문구가 새겨진 옷장 등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밖에 자료가 부족해 고증이 불가능한 공간은 당시의 역사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여기에다 고종의 근대적 개혁과 대한제국의 신문물 등을 전시한 지하공간까지 더해, 복원된 석조전의 새로운 명칭은 ‘대한제국역사관’이다. 

 

여행정보

▲위치: 서울시 중구 덕수궁 내

▲문의: 02)751-0753

▲관람 시간: 09:00~18:00(월요일 휴관)

▲기타: 지하층은 자유 관람, 1, 2층은 홈페이지 사전 예약)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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