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계엄령 문건’으로 시작된 국군기무사령부 논란에 급기야 해편(解編)이라는 극약처방이 내려졌다. 해편이란 ‘풀어서 엮다’는 의미로 사실상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군기무사령부는 명칭을 바꾸어가며 70년 동안 유지돼왔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고강도 개혁은 전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내 최대 방첩기관인 국군기무사령부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 영욕의 70년 역사
국군기무사령부의 모체는 1948년 5월에 만들어진 조선경비대 정보처였다. 이후 특별조사대와 육군본부 정보국 특무대로 개편되며 당시 군내의 남조선노동당 즉 남로당원들을 색출하는데 앞장섰다. 폐해도 적지 않았다. 특히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은 남로당과 상관없는 군인들까지 ‘빨갱이’로 몰아세웠으며 민간인 학살에도 개입했다.
1960년 7월 특무부대에서 방첩부대로 개편된 이후 5‧16 군사정변을 맞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방첩부대는 군사정변을 막지 못했지만 군사정권은 군내의 군사정변 방지와 동향파악을 위해 부대의 몸집을 키워주었다. 1968년 보안부대로 개편되었고 1977년 10월에는 국군보안사령부가 창설되었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이 또 일어났다.
# 민주화 이후에 되레 임무 늘어나
보안사는 군사반란을 막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또한 군내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던 보안사는 진압군을 아주 성공적으로 무력화시켰다. 1991년 1월 보안사는 국군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꾸고 명맥을 유지한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기무사령관의 독대를 없애고, 국방부 장관과의 상하관계를 명확히 해 정상적으로 국방장관의 통제를 받게 했다. 사령관 직급도 소장으로 한 계급 내렸다.
그러나 ‘강등’도 잠시, 1년 만에 다시 사령관 직급은 중장으로 원상복구 됐다. 김영삼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까지 즉 10년간 민주정부가 계속되었지만 기무사는 개혁되지 않았고, 오히려 임무가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이번 계엄령 문건이 터지기 전까지 기무사는 고유의 군사보안 및 군 방첩업무뿐만 아니라 대통령 경호, 대테러, 정보작전 방호태세 및 정보전 지원 임무까지 맡으며 세를 불려왔다.
# 인사 정보 집중 ‘기무사만 바라봐’
그렇다면 민주정부에서 기무사는 어떻게 명맥을 유지했을까? 군을 몰랐던 민주정부들은 오히려 군사정권 때와 똑같이 군 장악을 위해 기무사를 이용했다. 특히 청와대는 군내 동향파악에 목말라있었고, 이를 위해 기무사가 활용되었다. 또한 군내 주요 보직에 정권에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앉히는데 기무사의 동향관찰은 큰 무기가 되었다. 이 밖에 기무사 내부적으로도 기무사 고유의 임무인 방첩보다는 일반 인사 및 정보에 집중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휘관에 충성해야 될 군인들이 기무사만을 바라보는 기현상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 때문에 군 예비역들 중에는 우리군이 진정한 ‘전투형 군대’가 되려면 기무사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역에 있는 군인들 가운데는 방첩임무는 군내 수사기관에서 할 수 없는 특수한 임무이므로, 이 임무를 제외한 다른 임무들은 군내 타 기관으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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