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수년 동안 국내 유통업계는 정체기를 겪었다. 시장이 포화 상태인 데다 내수경기 악화, 중국발 사드 보복 직격탄을 동시에 맞았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부터 ‘유통 공룡’을 중심으로 실적이 개선됐지만 대부분 그동안 고꾸라진 성장률을 일부 회복한 수준에 그쳤다.
가전 양판업계는 다르다. 소리 없는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롯데하이마트, 삼성디지털프라자, LG베스트샵, 전자랜드, 4개사의 상반기 매출만 약 4조 5000억 원.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가량 늘었고, 기간을 더 넓게 잡아도 3년간 꾸준히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1분기엔 4곳 모두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1분기는 통상 가전양판업계 비수기로 꼽히는데도 높은 성장세를 기록한 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가구 구성과 환경변화 등으로 인해 달라진 가전제품 트렌드가 업계 성장을 뒷받침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특히 환경변화는 가전양판업체 실적을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지난해부터 가전양판업계에선 ‘미세먼지 4대 가전’이라는 표현을 주로 쓰고 있다. 의류건조기와 스타일러(관리기), 공기청정기, 청소기 등이다. 모두 미세먼지 접촉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가전제품들이다.
한 가전양판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일부에서만 찾던 공기청정기, 의류관리기 등이 이제는 필수가전 대열에 들어섰다. 환경변화가 새로운 수요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구 구성 변화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인구 증가세가 큰 폭으로 둔화되면서 자연스레 가전제품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4인 가구가 1~2인 가구로 분산되면서 오히려 더 수요가 늘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다른 가전양판업계 관계자는 “가전제품은 가구별로 구입한다. 1~2인 가구가 늘어면서 소형, 기능성 가전제품 매출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가전양판업체 성장세가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동안 TV와 냉장고, 세탁기 등 잘 팔리는 제품이 사실상 정해져 있었지만, 최근 미세먼지와 가구 구성 변화 등으로 제품군이 다양해졌다”며 “냉장고나 세탁기도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접목한 프리미엄 제품이 속속 등장하면서 판매량도 늘어나는 추세다. 프리미엄 제품은 제품당 평균가격이 높아 업체 매출에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오프라인에서 보고 온라인서 주문, 롯데하이마트
국내 가전양판업계 ‘맏형’은 롯데하이마트다.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매출 4조 1070억 원, 영업이익 2070억 원을 기록하며 업계에서 처음으로 매출 4조 원 벽을 넘어섰다. 매장 수 역시 460여 개로 경쟁 업체들에 비해 월등히 많다.
롯데그룹 내에선 ‘효자 계열사’로도 꼽힌다. 실적 기여도가 높아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쇼핑이 지난해 연간기준 계열사로부터 거둬들인 돈은 4365억 원이다. 이 가운데 518억 원을 롯데하이마트로부터 벌어들였다. 호텔롯데(729억 원) 다음이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이 주춤한 탓도 있지만, 롯데하이마트가 백화점의 빈 자리를 채울 만큼 실적이 개선됐다는 게 업계 평가다.
가전 트렌드 변화와 동시에 롯데그룹 차원에서 강화하고 있는 온라인 사업 성장이 이 같은 결과를 이끌어 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하이마트는 2015년 말부터 온라인 사이트 확장개편, 모바일쇼핑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사업을 강화하면서 온라인 매출이 급성장했다. 2016년 7%였던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17년 20%로 올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옴니존’이 롯데하이마트의 주요 전략이다. O2O(Online to Offline) 방식을 적용해 방문한 소비자가 태블릿PC로 제품을 검색하고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방식이다. 롯데하이마트는 대부분의 매장에 태블릿PC 4~5대를 갖춘 ‘옴니존’을 운용 중이다. 옴니존에서 태블릿PC로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은 매장에 진열된 상품 수보다 최대 20배 많다.
롯데하이마트는 올해 매장 자체를 아예 옴니스토어로 바꾸는 등 옴니채널 사업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롯데쇼핑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하이마트는 올해 투자금도 지난해와 비교해 300% 이상 대폭 늘렸다. 업계에선 이 자금의 절반 이상은 옴니스토어 매장에 사용될 것으로 전망한다.
롯데하이마트 관계자는 “옴니사업은 롯데 유통 계열사들이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롯데하이마트의 성과가 빠르게 나온 편”이라며 “온라인에서 제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빽빽한 진열 방식에서 벗어나는 등 매장 관리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쟁업체와 비교해 성장세가 주춤한 것은 롯데하이마트가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난해 롯데하이마트 매출액이 2016년과 비교해 늘었지만, 한 자리 수(4.1%) 증가에 머물렀다. 다른 경쟁업체들은 모두 두 자리대 성장을 기록했다.
시장 점유율도 2년 동안 하락했다. 2015년 48.70%였던 시장 점유율은 2016년 46.96%, 2017년 44.01%로 떨어졌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가전양판 시장은 전형적인 내수 시장인 만큼, 시장점유율 변화에 민감하다”며 “매출이 오른 건 다른 경쟁업체도 마찬가지다. 가전양판업계가 가구 구성과 환경변화 등으로 ‘특수’를 누린 셈이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남자들의 놀이터, 일렉트로마트
신세계그룹의 가전양판매장인 일렉트로마트는 최근 업계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기획 단계부터 직접 주도했다. 업계 후발주자지만 효율은 경쟁업체를 넘어선다. 매출과 매장 수 등 ‘덩치’는 작지만 성장세가 독보적이다. 업계에서 붙은 별칭도 ‘다크호스’, ‘게임 체인저’ 등이다.
1호점의 문을 연 지난 2015년 일렉트로마트 매출은 213억 원에 불과했지만, 2016년 1631억 원, 2017년 3374억 원(106.9% 증가)을 기록했다. 롯데하이마트(4조 원) 매출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지만, 점포당 매출로 보면 일렉트로마트가 198억 원으로 롯데하이마트(점포당 88억 7000만여 원)의 두 배를 넘어선다.
일렉트로마트는 ‘이마트의 구원투수’로도 통한다. 일렉트로마트가 입점한 이마트 매장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일렉트로마트가 입점한 이마트 11개점의 오프라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마트 전체 기존 점포 매출은 0.6% 감소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일렉트로마트가 입점한 매장은 가전과 동시에 식품 등 다른 제품 매출도 늘었다. 일렉트로마트가 앵커 테넌트(anchor tenant, 집객력이 좋은 매장)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일렉트로마트는 ‘체험’ 요소를 극대화했다. 드론 체험존, 피규어 전문존, 3D프린터존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매장에선 사물인터넷 기기와 AI 로봇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등을 별도로 만들어 전자제품 마니아 모객에도 적극적이다. 전문음식매장도 함께 운영하면서 방문자들의 체류시간을 늘렸다.
타깃도 ‘쇼핑에 소극적인 남성’이다. 가전제품 외에 의류, 주류, 헤어숍 등을 입점시켜 남성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일렉트로마트를 이용한 고객 중 남성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32.7%에 달한다. 기존 이마트(27.8%)보다 높다. 일렉트로마트는 하반기 독립매장을 연다. 이마트의 숍인숍 형태에서 단독유통매장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업계에선 첫 시도다.
반대로 업계에선 대형마트 출점 제한이 있는 이마트가 ‘전문매장’ 형태로 사실상 출점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시선을 달리하면 일렉트로마트 내부에 의류, 헤어숍, 식당, 안경점 등이 포함돼 있는 만큼, 골목상권을 위협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이마트 관계자는 “일렉트로마트는 가전전문점이지만, 향후 매장을 추가로 더 확대하더라도 관련 협의를 충분히 거칠 것”이라며 “상품 구성을 달리하는 등 상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등 여러 방안을 고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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