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 여의도 일대 부동산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 통개발’ 계획을 언급한 이후부터다. 개발 방향이나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가격 상승 기대감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매물이 자취를 감추는가 하면, 신고가를 경신하는 단지도 등장했다.
“집주인들이 내놨던 집들을 다시 거둬들였다. 당장은 팔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나마 나오는 매물들도 짧은 시간에 호가가 1억~2억 원 뛰었다. 생각하는 가격보다 더 높여도 거래 성사는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 7월 31일 여의도역 근처에 위치한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 대표의 말이다.
여의도 부동산 시장은 분주하다. 재건축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 지역과 지하철역 근처 공인중개소에는 문의가 잇따른다. 지난해 부동산 규제로 거래가 거의 뚝 끊긴 이후 1년여 만에 활기를 찾은 셈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기대감’이 시장 분위기를 끌어올렸다고 입을 모은다. 박원순 시장이 최근 “여의도를 통으로 재개발하겠다”고 밝혀 집값 상승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놓았다는 얘기다.
# “어쨌든 개발된다” 요동치는 여의도 부동산
박원순 시장은 지난 7월 10일 ‘도시행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리콴유 세계도시상’ 수상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여의도 개발 청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공원과 커뮤니티 공간을 보장하면서 건물 높이를 상향할 계획”이라며 “아파트 재건축이 진행 중인 여의도를 신도시에 버금가게 만들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재생’ 위주 정책을 강조하던 서울시장이 직접 파격적인 수준의 ‘통개발’을 언급하고, 곧바로 “서울시가 8월 여의도를 국제금융중심지로 개발하기 위한 ‘여의도 일대 종합적 재구조화 방안(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발표한다”는 ‘설’이 시장에 퍼졌다. 여의도 부동산이 요동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7월 4주 전국 주간아파트 가격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0.11% 상승한 가운데 영등포(0.23%) 집값이 껑충 뛰었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용산(0.26%) 다음으로 가장 많이 올랐다. 여의도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특히 7월 10일을 기점으로 일주일 사이에 큰 폭으로 올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재된 한양아파트 전용 149㎡는 올 초 14억 원대였지만, 7월 중순 15억 원으로 뛰었다. 15억 원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던 수정아파트 전용면적 150㎡는 18억 원가량의 매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정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는다. 지난 7월 23일 김현미 국토교퉁부 장관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자체가 계획을 수립해도 정부와 협의해야 현실성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25일 박 시장이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종합적 가이드라인과 마스터플랜 아래 개발한다는 얘기가 한꺼번에 다 개발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면서도 “여의도는 서울의 맨해튼처럼 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한 발 물러서도 당분간 여의도 시장의 열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의도 마스터플랜은 2030서울플랜을 계획할 때부터 검토했고 그동안 그렇게 알려져왔다”며 “하반기 마스터플랜 공개를 계획하고 있지만, 부동산 정책은 정부 정책과 발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여의도 한 아파트 단지 상가에 위치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어쨌든 개발은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정부-서울시의 말이 엇갈린 것도 부동산 규제로 작아진 불씨에 부채질을 한 모양새가 됐다”며 “거래가 이뤄진 일부 아파트 단지의 경우, 집주인이 부른 호가보다 더 보탠 뒤에야 거래가 성사됐다. 최근 시세보다 2억 원가량 더 얹었다. 마스터플랜이 공개될 때까지 당분간 매물은 없고 호가만 오르는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 기부채납 규모, 추진 중인 재건축 아파트는 ‘넘어야 할 산’
서울시는 여의도를 국제 금융중심지로 재개발해 발전시킬 계획이다. 특히 시장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기존의 주거지역들을 상업 용도로 ‘종상향’한다는 점이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도시계획법 등을 보면, 모든 토지는 용도 지역을 세분화한다. 일반 주거지역은 1·2·3종으로 분류한다. 일반 주거지역을 한 단계씩 높이거나, 주거지역 3종을 상업지역으로 높이는 것을 종상향이라고 한다. 종이 올라가면 건축물의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 비율) 등이 높아져 그만큼 개발이익도 늘어난다.
박 시장이 언급한 대로 여의도가 ‘통으로’ 개발되기 위해선 일반주거지역인 아파트 단지를 상업지역으로 종상향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여의도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된 일부 아파트 단지를 상업지역으로 종상향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을 새로 세울 수 있다. 한강공원 녹지 공간 확대, 교통 정비 계획도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러한 방식의 여의도 ‘통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단 서울시 계획이 장기 프로젝트라 구체적인 일정을 예상하기 어려운 데다, 이미 같은 방식으로 개발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다. 2009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발표한 ‘한강 르네상스’ 계획이다.
당시 오 전 시장은 여의도 일부 아파트단지를 종상향하고 70층 복합빌딩과 평균 40층의 주상복합을 건설하는 내용으로 여의도 통합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의도 일대에 40% 수준의 기부채납 비율을 요구하면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이 무산됐다.
한 증권사 부동산 연구원은 “이번에도 기부채납 비율이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종상향으로 혜택이 높아지는 만큼, 시는 개발 이익을 환수하려고 할 것”이라며 “기부채납 비율을 높이면 주민들의 반대가 커지고, 반대로 낮추면 여의도 특혜 지적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미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일부 아파트 단지 주민들과의 협의도 서울시가 넘어야 할 산이다. 서울시는 여의도동 일대 55만 734㎡ 12개 아파트 단지 재건축 방향을 여의도 마스터플랜에 연동해 결정할 예정이다. 그동안 조합들이 개별적으로 재건축을 추진했는데, 이 경우 사업 계획을 밑그림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부동산신탁업계 관계자는 “재건축이 계획되고 있는 아파트는 그동안 사업 진전이 느렸던 데다 노후화돼 안전사고 가능성도 높다. 주민들이 단지별로 세운 계획대로 사업을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측은 마스터플랜과 연계하면서도 단지별 개발 계획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마스터플랜은 법적으로 재건축 사업을 구속하지 못해 법적 효력을 가진 지구단위계획도 구상 중”이라면서도 “주민 의견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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