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국가배상청구사건이 1심 법원에서 선고돼 주목을 받았다. 지난 19일 선고된 세월호 참사 국가배상사건이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유족)들이 일부 승소했다. 국가배상청구권이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은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역사적으로 서구에서는 ‘왕은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라는 국가무책임의 원칙이 있었으나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이러한 원칙이 극복되어 국가책임제도가 인정됐다.
법원은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경비정장은 신속하게 승객들에 대한 퇴선조치를 실시해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그러지 않아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며 “대한민국은 정장의 직무집행상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로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고의든 과실이든 공무원의 불법으로 손해를 입은 국민에 대해 국가가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헌법에는 이상한 조문이 하나 있다. 같은 국민이라도 군인‧경찰공무원 등은 전투‧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헌법 제29조 제2항에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법률이 정하는 보상이란 군인‧공무원연금법, 국가유공자예우법, 보훈보상대상자지원법 등이다. 즉 군인‧경찰 등은 법률이 정하는 보상을 받게 되면 국가에 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
겉으로만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결과적으로 보상이든 배상이든 구제만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법성이 전제되는 ‘배상’과 그렇지 않은 ‘보상’은 법적으로 전혀 다른 개념일 뿐만 아니라, 특별법에 의한 보상액이 국가배상법에 의한 손해배상액보다 적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특별법에 의한 보상액이 더 많다면 헌법에서 굳이 국가배상청구를 금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일반 국민과 군인‧경찰 등과 차별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까. 최고규범인 헌법 자체에 차별을 규정하고 있어 위헌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헌법에 이러한 차별적인 규정이 명문화 되었을까. 제3공화국 시절인 1967년 베트남 파병으로 인해 많은 국군의 희생이 예상되던 때 국가배상비용의 증대로 국가재정의 압박을 우려하여 국가배상법에 위 내용을 규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1971년 대법원이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등 이유로 헌법위반 결정을 했고, 이에 1972년 유신헌법에서 위헌시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헌법에 명문화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즉 위헌법률이 헌법조항에 명문화된 셈이다. 대법원은 이와 같은 연혁을 감안하여 비교적 관련 규정을 엄격히 해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2월에는 전투‧훈련 등과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공상을 입은 군인 등이 먼저 국가배상법에 따라 손해배상금을 받은 다음 보훈보상대상자지원법이 정한 보상금 등 보훈급여금의 지급을 청구하는 경우 국가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에 따르면 보훈급여금을 지급받은 후에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지만 국가배상을 지급받은 경우에는 보훈급여금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청구의 선후에 따라 청구의 가부가 달라지는 불평등이 발생하지만 법원이 군인 등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히 문리적인 해석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17일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2호기가 추락해 5명의 젊은 군인들이 생명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엄마의 무릎에 앉아 영결식에 참석한 한 아이는 추모 영상 속 아빠의 얼굴이 나오자, 아무것도 모른 채 반가움에 “아빠”를 외쳐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서는 사고기의 기체결함을 제기하고 있고 조사위원회는 사고기의 기본설계와 기체 결함 등 가능성을 우선 규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문제는 유족들은 헌법 제29조 제2항(이에 근거한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단서) 때문에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는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유족들의 남편, 아버지가 훈련 중 사고를 당한 군인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 국가배상청구를 통해 법원에 국가배상은 물론 진상규명도 구하고 있지만 마리온 참사는 자칫 그러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일상에 전념할 수 있고 가족들과 안정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군인‧경찰 덕분이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해 보다 나은 대우를 해주지는 못할망정 이미 대법원에서 위헌판단을 받은 내용을 헌법에 계속 두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다.
현 정부 들어 개헌이 공식화되고 있다. 반드시 최우선적으로 삭제되어야 하는 조항은 헌법 제29조 제2항이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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