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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모차르트와 베토벤 '아마데우스'와 '불멸의 연인'

'신동'과 '악성' 위대한 음악가들의 작품과 처절한 인생 다룬 수작들

2018.07.27(Fri) 18:25:04

[비즈한국] “저는 저속합니다. 그러나 제 음악은 그렇지 않습니다.”(‘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대사) “나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대변인이다. 세상의 모든 평범한 이들이여. 너희의 죄를 사하노라.”(‘아마데우스’ 중 살리에리의 마지막 대사)

 

“나의 천사이자 나의 전부이며 나의 분신인 그대. 내 불멸의 연인이여.”(‘불멸의 연인’에서 베토벤의 연서 가운데) “그런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사람을 도저히 증오할 수 없더군요.”(‘불멸의 연인’ 중 베토벤의 제수 요한나의 대사)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모차르트. 영화 ‘아마데우스’ 스틸 컷.


현대 문명사회에서 초등교육 이상을 받은 사람이라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더라도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설령 두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이들의 작품은 어느 순간 어디에서인가 들어봤을 것이다. 

 

괴팍하고 사교성 떨어지는 성격으로 불우한 인생을 살다 간 두 사람이지만, 이들이 서양음악사에 남긴 찬란한 족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모차르트가 음악 역사상 다시 나오기 어려운 ‘신동’이자 ‘불세출의 천재’라면, 베토벤은 음악가에게 생명과 같은 청각을 잃어버리고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며 걸작을 남긴 음악의 성인인 ‘악성’이었다. 

 

그랬기에 이들의 삶을 다룬 창작물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폭풍과 같은 감동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10년의 간격으로 제작된 모차르트의 일생을 다룬 ‘아마데우스’(1984)와 인간 베토벤을 얘기한 ‘불멸의 연인’(1994)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불과 35세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무려 626곡이나 되는 작품을 남겼다. 그는 오페라, 교향곡(심포니), 협주곡(콘체르토) 등 완주에 장시간이 걸리는 곡들은 물론 종교음악, 가곡, 소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내 머리에 다 들어 있어요. 긁적거리면 돼요.” 

 

그가 머릿속에 있는 악상을 ​오선지에 ​한 번에 적어넣으면 이후 전혀 수정할 필요조차 없는 완벽한 곡이 됐다고 한다. 그의 천재성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이다. 모차르트는 4세 때 한 번 들은 음악은 그대로 따라 연주했고 5세 때 작곡을 시작해 12세에 그 어렵다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30분이 넘는 대곡도 두세 번만 치면 그대로 외워서 연주했다고 한다. 현대의 학자들은 그의 지능지수(IQ)가 족히 200은 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모차르트는 6세 때부터 10여 년간 아버지 레오폴트와 누나 니넬과 함께 유럽 연주여행을 다녔고 이때 각 지역 음악가들과 교분을 쌓으면서 그들의 음악 기법을 흡수해 자신만의 것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흔히 모차르트를 신동 또는 천재의 이미지로 가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경험을 쌓아 노력을 했기에 역사에 길이 남을 작곡가가 될 수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지난 4월 타계한 체코 출신의 거장 감독 밀로스 포먼이 메가폰을 잡아 198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8개 부문을 석권하며 흥행과 작품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품이다.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살리에리. 영화 ‘아마데우스’ 스틸 컷.


“모차르트를 내가 살해했다”며 자살 시도 끝에 정신병원으로 이송된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자신을 찾아온 신부에게 모차르트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시골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살리에리는​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에 매료됐다. 모차르트처럼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라나지 못한 살리에리는 각고의 노력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의 궁정 음악장 자리까지 오른다. 

 

이런 살리에리의 눈에 어느 날 ​모차르트가 ​들어온다 ​후에 부인이 되는 애인 콘스탄체에 저속한 농담을 마구 던지는 모차르트는 한 음악이 흘러 나오자 “내 음악이다”라며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실내악단을 향해 뛰어간다. ​살리에리는  “저속한 언행을 하는 속물 청년이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살리에리의 이런 첫 인상과 달리 모차르트가 작곡해 지휘하는 곡은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었다. 모차르트가 연주를 마치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살리에리는 연주된 곡의 악보를 살펴 보는 순간 머리에서 울려 나오는 천상의 음악 소리에 넋을 잃고 만다. “저 경박한 청년이 이런 곡을 작곡하는 말로만 듣던 그 천재 모차르트란 말인가?“

 

살리에리가 궁정 음악장을 맡고 있는 빈의 궁에 모차르트가 찾아온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위한 환영곡을 작곡하고 요제프 2세에게 이 곡을 연습시키고 있었다. 마침 도착한 모차르트는 요제프 2세와 살리에리에게 인사한 후 “​이렇게 하면 더 좋죠?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며 즉석에서 천재적인 변주 능력으로 연주해 주변 사람들을 경악시킨다. 

 

모차르트는 문 밖에서 황제가 곳곳에서 틀려가면서 치는 곡을 딱 한 번 들었을 뿐이다. 이때 모차르트가 변주해 연주하는 음악은 후에 그가 작곡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중 아리아(독창) ‘더 이상 날지 못하리(Non più andrai)’​다. 

 

 

음악을 사랑하고 신을 찬미하기 위해 음악가의 길을 걷는 살리에리에게 모차르트는 충격이었다. 모차르트의 작품을 보고 들을 때마다 위대한 그의 음악에 경배를 하면서도 살리에리는 “왜 신은 나에게 재능을 주지 않고 저속한 모차르트란 인간에게 줬다는 말인가”라고 한탄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살리에리가 평소 흠모하던 소프라노 성악가마저 모차르트에게 마음을 주자 결국 신을 저주하며 모차르트를 파멸시킬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 

 

마침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슬퍼하고 있었다. 살리에리는 이 당시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를 통해 아버지의 사망에 모차르트가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더욱이 모차르트는 방탕한 생활로 인해 폐렴과 각종 합병증으로 몸까지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생전에 썼던 가면을 쓰고 모차르트에게 진혼곡(레퀴엠) 작곡을 의뢰한다. 이것이 모차르트 본인을 위한 진혼곡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젊은 천재는 지병에 과로까지 겹치며 탈진한 상태에서 진혼곡을 쓰고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다. ‘아마데우스’에 그려진 살리에리는 지능적으로 ​모차르트가 세상을 등지게 하고 그 죄책감으로 정신병원에 갇히는 노인이다. 현실도 그랬을까. 사실 살리에리는 당대 빈에서 가장 명망 있는 음악가였으며 75세로 타계하기 1년 전까지 궁정 음악장으로 재직하면서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았다. 후진 양성에도 힘을 써 모차르트의 아들을 지도했고 심지어 베토벤까지 가르친 적이 있다.

 

모차르트 죽음의 결정적 원인은 지병인 폐렴과 오페라 2곡을 동시에 작곡하는 과정에서 레퀴엠까지 떠안은 결과 과로로 인한 사망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주장은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처음 거론했고, 피터 셰퍼의 희곡 ‘아마데우스’(1979)와 이 희곡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까지 히트하면서 대중에게 각인됐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아름다운 선율에다가 화성학적으로나 대위법적으로 완벽해 초보자들의 클래식 음악 입문용으로 꼽힌다. 임산부들에게는 최고의 태교 음악이다. 듣기에 좋지만 그의 작품을 완벽히 연주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악이든 성악이든 음표와 쉼표 하나라도 맞지 않게 연주하면 티가 확 나는 게 모차르트의 작품들이다. 따라서 연주자들은 청중 앞에서 ​모차르트 작품을 ​연주하기 전에 부단한 연습을 통해 완벽히 체화해야 한다.

 

교향곡 ‘합창’ 연주를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베토벤. 영화 ‘불멸의 연인’ 스틸 컷.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의 귀가 들리지 않던 때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의 후기작들에는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배어 나와 지금까지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베토벤은 20대 후반부터 청력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했고 40대 이후에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천장에 끝에 추를 달고 길이가 다른 여러 줄을 매달아 이를 통해 음높이를 참고했다고 하니 창작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영화 ‘불멸의 연인’​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된다. 베토벤의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는 베토벤의 유품 속에서 고인의 필체로 쓰인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익명의 여인을 향해 썼으나 발송하지 않은 채 숨겨두었던 세 통의 편지, 일명 ‘불멸의 연인’이 그 대상이었다. 

 

쉰들러는 베토벤의 절절한 사랑을 담은 편지에 등장하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여인의 존재를 찾아 나선다. 고도의 상상력을 동원한 이 영화는 쉰들러의 끈질긴 추적 끝에 ‘불멸의 연인’​이 베토벤의 동생 카스퍼의 부인 요한나라고 결론을 낸다. 베토벤이 생전에 그토록 광적인 집착을 보인 조카 카를은 그가 요한나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는 게 영화의 결말이다. 

 

 

 

영화에서 요한나는 카스퍼와 이미 사귀고 있었고 베토벤은 그녀와 몰래 만나고 있었다. 베토벤은 그녀로부터 슬쩍 임신했단 말을 들었으나 이미 청력에 문제가 있어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베토벤 역시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카스퍼와 맺어져 임신까지 한 것으로 오해하고 분노하면서 두 사람은 철천지원수가 된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서 음악이란 매개체를 통해 두 사람의 극적인 화해를 담아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다, 

 

베토벤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나 생전 많은 여인들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었다. 그는 작품 상당수를 연인들에게 헌정했다. 영화와 달리 베토벤에게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는 ​현재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베토벤이 동생 카스퍼가 죽자 그의 아들인 카를을 직접 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처럼 요한나가 ‘불멸의 연인’​​이었고 카를이 베토벤의 진짜 아들이었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없다. 

 

영화 ‘불멸의 연인’ 곳곳에 흐르는 베토벤의 음악은 거장 마에스트로 게오르그 솔티가 담당해 영화의 완성도를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있다. 헝가리 출신인 솔티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과 함께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로로 이 영화에서 최고의 음악을 들려준다. 

 

피아노 현의 울림을 듣고 연주하려는 베토벤. 영화 ‘불멸의 연인’ 스틸 컷.


‘불멸의 연인’에서 베토벤 역은 할리우드 연기파 게리 올드만이 맡았다. 올드만은 올해 ‘다키스트 아워’로 그간 학수고대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 쥐었으나 오래전부터 실력파 배우로 입지를 다져온 배우다. ‘불멸의 연인'에서도 그는 광기와 카리스마 넘치는 베토벤을 신들린 연기로 표현해냈다. 

 

​게리 올드만은 ​뤽 베송 감독의 ‘레옹’(1994)에서 마약중독자인 악당 형사로 나와 “너희들이 베토벤을 아느냐”는 대사를 하는데, 실제로 ‘불멸의 연인’에서 베토벤 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불멸의 연인’에서 게리 올드만의 최고의 명연기는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Piano Concderto No.5, ‘Emperor’)’​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베토벤이 갑자기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자 지휘석으로 뛰쳐나와 청중들의 조롱가운데 오케스트라를 향해 ‘클라리넷’, ‘호른’을 절규한다. 들리지 않는 베토벤의 고뇌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명장면이다. 

 

베토벤은 1822년부터 1824년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걸작으로 꼽히는 교향곡 제 9번 ‘합창(Symphony No. 9 op. 125 Choral)’​​을 작곡했다. 1824년 5월 7일 빈에서 이 곡이 초연됐을 때, 베토벤도 그 무대에 서 있었다. 이 역사적 감동은 ‘불멸의 연인’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마지막 4악장까지 끝난 후 베토벤은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듣지 못해 여전히 오케스트라 쪽을 향해 우두커니 서 있다. 실제 역사에선 베토벤에게 구박받던 알토 솔리스트 웅거가 베토벤을 부축해 돌려세웠고 청중의 압도적인 환호를 본 그는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 9번​ ​‘합창’​​​은 전 악작을 관통하는 관현악의 웅장함뿐만 아니라 4악장에서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4명의 솔리스트들과 대규모 합창단까지 참여하면서 관현악과 성악이 어우러지는 걸직이다. 영화에서 베토벤과 철천지원수였던 제수 요한나는 이 음악을 듣고 베토벤과 화해한다. 

 

베토벤의 차별화된 음악성은 다른 작곡가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곡 전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의 선율 자체는 모차르트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베토벤은 식별 가능한 최소의 음악적 단위인 모티브(동기) 몇 개로도 변화무쌍한 주제 변형, 악상 전개로 1시간 안팎의 교향곡, 협주곡을 듣는 이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게 만드는 독보적인 재능을 갖고 음악계를 호령한 거장이었다. 

 

베토벤의 음악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의 감미로운 가곡 ‘아델라이데(Adelaide)’​, ‘그대를 사랑하오(Ich liebe dich)’​나 ‘키스(der Kuss)’부터 듣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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