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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이 다잡은 '키코' 은행권 아킬레스건 되나

재판거래 의혹에 재검토 논란…금감원 "불공정 거래 아닌 '불완전 판매'에 집중"

2018.07.27(Fri) 15:57:09

[비즈한국] ‘윤석헌호’ 금융감독원이 금융 전반의 과제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개혁 시동에 나선 가운데 은행권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10년 전 발생한 ‘키코(KIKO)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키코는 일종의 파생금융상품이다. 환율이 정해진 범위 안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다. 환율이 안정적일 땐 환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등락폭이 커져서 상한선, 하한선을 벗어나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국내 4대 시중은행을 비롯한 대부분의 은행들은 2007년 중순께부터 2008년까지 수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키코 상품을 판매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고 환율이 폭등하자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금감원의 2010년 키코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 규모는 3조 2274억 원이다. 919곳의 키코 상품 가입 중소·중견기업 가운데 738곳이 손실을 입고 이 가운데 일부는 폐업하거나 부도 처리됐다.

 

금감원이 키코 사건을 다시 검토하면서 금융권 안팎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후 140여 개 기업이 “은행들이 제한된 기대이익을 대가로 무제한의 위험에 처하게 하는 사기 상품을 판매했다” “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불완전판매였다”는 취지로 은행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에서 판결이 엇갈렸지만 2013년 9월 대법원은 은행 측의 손을 들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급변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정부 시절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해 정치적 거래를 하면서 키코 사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나오면서부터다.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의 보고서를 보면 16건의 재판 협력 사례 가운데 15건이 대법원 사건이다. 그 중 6건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참여했는데, 키코 사건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그동안 금융위와 금감원 등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재조사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재판 거래 의혹을 기점으로 기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금감원은 윤석헌 금감원장이 취임한 후 키코 사건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재판 거래’​가 아직까지 의혹에 머물러 있는 만큼 이와 관계없다고 선을 긋지만 윤 원장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윤 원장은 교수 재직 시절 금융위원회 민간자문단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며 키코 사건을 다뤘다. “키코는 사기 상품”이라는 것이 당시 윤 원장의 입장이었다.

 

금융행정혁신위는 재조사를 권고하지는 않았다. 다만 피해 규모가 컸던 중소기업 가운데 법원 판단을 받지 않은 700여 곳의 기업이 금융당국에 피해구제를 요청하면 재조사 등을 통해 필요한 조치와 재발방지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최근 금감원이 진행하는 키코 재검토가 금융행정혁신위의 권고와 비슷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키코에 가입했으나 사법 판단을 받지 않은 5개 기업이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가 피해 규모 등을 따져 우선 선정한 기업들이다. 

 

현재 금감원 분쟁조정2국과 검사국 등이 협조하는 등 전담반이 구성돼 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 중이다. 개별 방문을 통한 면담 조사, 은행들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대조 및 사실 확인 작업 등 현황 파악에 집중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키코 상품의 위험성 등을 기업에 제대로 설명했는지 등 ‘불완전 판매’ 여부를 주로 살펴본다. 이미 법원 판결이 내려진 ‘불공정 거래’와 다르다”라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키코 사건을 맡은 분쟁조정국은 금감원이 이번 금융감독 혁신과제에서 주요 현안으로 내세운 즉시연금, 암보험 등도 담당한다”라며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윤석헌호 금감원’의 핵심부서로 떠오른 만큼, 키코 사건도 어떤 형태로든 해법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소비자 보호를 중대 과제로 꼽았다. 사진=임준선 기자

 

다만 금감원이 어떤 결론을 내든 후폭풍은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분쟁조정을 신청한 기업들의 손을 들어준다면 금감원이 대법원의 결정을 뒤집는 셈이기 때문이다. 중재안을 내더라도 대법원의 판결을 앞세운 은행들이 수용할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조정을 신청한 기업들과 은행들의 수용 여부에 따라 분쟁조정 기간은 물론 결과도 달라진다.

 

금융감독 체계상 금감원보다 권한을 더 많이 가진 금융위와의 의견 차이도 넘어야 할 산이다. 그동안 금융위는 키코 전면 재조사는 어렵다며 선을 그어왔다. 대법원의 판결까지 내려진 사건을 재조사할 순 없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금융위는 피해기업에 재기나 회생 지원 등 우회 방안을 냈다. 금감원의 ‘원점 재검토’ 입장과 차이가 있다.

 

다만 금융권 관계자들은 금융위와 금감원이 그동안 키코 재조사, 삼성바이로직스 사태 등으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입장 정리는 이뤄진 것으로 본다. 실제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윤 원장은 “당시 법원에서 다루지 않았던 부분을 중심으로 분쟁조정을 통해서 필요 시 재조사한다는 것”이라며 “다시 한다는 게 아니다. 안 한 것을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과거 검찰 조사가 충분히 있었고 대법원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에 전면 재조사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면서도 “금감원이 전면 재조사를 하자는 게 아니고 분쟁이 완료되지 않은 5개 회사에 대해 진행된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금감원과 이견을 보인다는 정무위원회 위원들의 지적에 “금감원장이 되기 전부터 저와 생각이 달랐던 부분이다. 두 기관 견해가 다르게 나타난 것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금감원장도 평소 생각과 조금 다르게 금융위와 잘 맞춰주신 것처럼 두 기관이 다르기보다 같은 점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 원장 역시 “금융위에서 정책과 감독 모두 아울러야 한다는 것도 고려해 우려하는 바가 줄어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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